디즈니+ 시리즈 '하이퍼 나이프' 정세옥
천재 의사 하지만 수술에 환장한 사이코
"설경구와 함께하니 하이퍼 시너지 났다"
난타전 주고 받는 미친 사제 관계 표현
"설경구 선배와 많은 대화로 완성해갔다"
사랑스럽고 정의로운 이미지 벗어 던져
"도전? 매번 새로운 걸 하고 싶을 뿐이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설경구 선배님은 이제 저와 가장 친한 배우입니다. 그렇게 말해도 된다고 허락 받았답니다. 하하"
이런 걸 미친 관계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상대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증오한다. 그러면서도 내 모든 걸 내어줄 수 있을 정도로 사랑한다. 상대를 그 누구보다 존중하지만, 그 누구보다 혐오한다. 서로 욕을 주고 받고, 침을 뱉어대고, 때리기까지 한다. 하지만 다른 누가 그를 모욕하는 건 참아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런 두 사람이 연인도 친구도 아니라 사제(師弟)다. 세계 최고 뇌 신경외과 전문의 최덕희와 그의 모든 걸 흡수한 제자 정세옥. 이들은 도대체가 제정신이 아니고, 디즈니+ 시리즈 '하이퍼 나이프'는 이 미친 인간들과 이 미친 인간들의 관계를 보란 듯 그려간다. 미친 스승 최덕희는 설경구가, 미친 제자 정세옥은 박은빈이 연기했다. 이들은 에피소드 8회 내내 치고 박고 찌르고 찔린다.
설경구와 그렇게 주고 받은 뒤 배우 박은빈(33)은 그를 사실상 최고의 파트너로 꼽았다. "설경구 선배님이 이 작품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이 긴밀한 호흡과 유대를 선배님과 그려갈 수 있다면 걱정할 게 없을 것 같았어요. 촬영을 해보니 제가 생각했던대로였습니다. 선배님과 함께하니 하이퍼 시너지가 나더라고요."
'하이퍼 나이프'는 뇌에 문제가 생긴 최덕희가 정세옥에게 수술을 요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압도적인 실력을 가진 정세옥이 유일하게 존경하는 의사가 최덕희. 하지만 최덕희는 일련의 사건을 겪은 뒤 정세옥이 더는 수술할 수 없게 만들고,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의사 면허까지 잃게 한다. 이른바 쉐도우 닥터로 불리며 음지에서 몰래 수술을 하며 살아가던 정세옥은 최덕희에게 수술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최덕희를 향해 차라리 죽어버리라고 외치며 요구를 무시한다.
시종일관 악다구니를 써가며 난타전을 벌이는 최덕희와 정세옥이지만, 설경구와 박은빈은 그 어느 때보다 대화를 많이 했다고 했다. 그 대화를 주도한 게 박은빈이었다. "선배님은 제가 외향적인 사람인 줄 아셨대요." 박은빈은 '하이퍼 나이프' 완성도를 높이려면 출연 배우들이 한 배에 탔다는 걸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워낙에 평범하지 않은 관계와 이야기를 그려가는 시리즈이기에 이 작품 의도와 목표를 배우들이 공유하고 이해해야 어긋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설경구도 같은 생각이었다고 한다.
"서로 꾸준히 점검한 겁니다. 누구는 내부순환선을 타고 누구는 외부순환선을 타면 안 되니까요. 어찌 됐든 같은 장소에 도착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과정 역시 유사해야 하고 그걸 공유해야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만큼 너무 독특하니까요. 지금껏 했던 작품 중에 가장 많이 대화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연기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일상에 관해서도 선배님과 얘기를 참 많이 했습니다. 선배님도 받아주셨고요. 전 선배님께 의지해보려고 했는데, 선배님은 저를 동료로 봐주셨어요. 틈을 많이 안 주시더라고요.(웃음) 제 연기를 존중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 인품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최덕희와 정세옥은 각자 이상하게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이들이 함께 있을 때 '하이퍼 나이프'는 더 역동적이다. 박은빈은 "선배님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을 완주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며 "선배님 존재 자체가 위로였고, 상대 배우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연기한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선배님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확실해요. 저흰 같은 차를 탔었습니다." 박은빈은 또 한 번 설경구를 가장 친한 배우라고 얘기했다.
설경구와 호흡도 호흡인데, 박은빈 개인으로 봐도 '하이퍼 나이프'는 도전이었다. 시청자는 박은빈을 선하고 착하게 기억한다. 대표작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를 비롯해 최근에 내놓은 '무인도의 디바'(2023) '연모'(2021) '브람스를 좋아하세요?'(2020) '스토브리그'(2019) 등에서도 그는 대체로 사랑스럽고 정의로웠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서 박은빈에게 사랑과 정의는 찾아볼 수 없다. 정세옥은 불편한 인간이고,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이다. 그는 욕망을 드러내 보이는 데 거침이 없다.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닙니다. 새로운 걸 하는 게 좋을 뿐이에요. '하이퍼'라는 단어, 의사인데 사람을 살릴 뿐만 아니라 죽이기도 한다는 게 확 오더라고요. 게다가 이 작품을 기획하신 분들이 제가 세옥을 맡으면 이 이야기가 새로워질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정세옥은 말 그대로 사이코. 모든 게 자기 위주이고, 그래서 제 앞을 막는 사람이 있다면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 박은빈은 이 이상한 의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시청자가 캐릭터에 공감하고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매력을 느낄 수 있으면 된다고 봤다. "세옥이 저지르는 살인에 이유가 있을 필요가 없다고 봤습니다. 그냥 그런 인간인 거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됐어요. 이 작품은 메시지 같은 걸 전달하려고 하지 않아요. 새로운 감각을 전해줄 뿐입니다."
박은빈은 안 해 본 연기를 했지만, 그래서 특별히 고된 연기인 건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에둘러 답했다. "아역 때부터 치면 제가 어느덧 30년차가 됐거든요.(웃음)" 그는 스위치를 온·오프 하면서 때로는 에너지를 폭발시키고 때로는 저전력 모드로 들어가는 걸 반복할 줄 알게 됐다고 했다. 연기를 하면서도 정신과 신체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어떤 역할을 하든지 어려운 건 있기 마련이니까요. 연기하는 사람으로 산 그 시간을 제 나름 알차게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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