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시청에 멍드는 K-콘텐츠]
국민 5명 중 1명 불법복제물 이용
저작권 생태계에 천문학적인 피해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시급
[이데일리 김아름 기자] K-콘텐츠의 글로벌 흥행 이면에는 불법 복제물 유통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국내 콘텐츠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는 불법 사이트들은 대부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추적과 적발이 어려운 데다 적발되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쳐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이용자는 한국사람, 파라과이 서버로 법망 피해
9일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발표한 ‘저작권 보호 연차 보고서’에 따르면, 불법 복제물 이용률은 2020년 20.5%, 2021년 19.8%, 2022년 19.5%, 2023년 19.2%, 2024년 19.1%로 다소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국민 5명 중 1명꼴로 불법 콘텐츠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불법 사이트에 대한 접속 차단 조치를 취하더라도, 다음 날이면 새로운 사이트가 생성돼 단속을 무력화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누누티비, 티비위키, 티비몬 등 대표적인 불법 콘텐츠 유통 사이트들은 폐쇄 후에도 이름과 주소만 바꿔 계속해서 부활하고 있다. 이들 사이트는 대부분 해외 서버와 도메인을 활용해 추적과 단속에 한계를 안기고 있다.
백지연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이 싸움은 끝이 없는 싸움”이라며 “사이트가 폐쇄돼도 URL만 바꿔 다시 운영을 시작하는 방식으로 단속 효과를 무력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말 국제 공조를 통해 검거된 누누티비는 도미니카공화국, 파라과이 등 해외 서버를 이용하며 운영자의 신원을 은폐했고, 불투명한 운영 구조로 인해 2021년부터 3년 넘게 불법 운영을 지속해왔다. 그 결과 국내 콘텐츠 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끼쳤다. 영상저작권협의체에 따르면 누누티비로 인한 저작권 피해 추정액은 약 4조 9000억원에 달하며, 누누티비가 벌어들인 불법 광고 수익은 최소 333억원, 국내 OTT 업계의 2년간 영업 손실은 약 4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불법 사이트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현재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국내법 적용을 피해가고 있는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히 서버 위치나 법인 등록지가 아닌, 사이트의 운영 방식, 관리 주체, 수익 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인 운영 주체를 판단하는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한국인이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사이트라면 국내법 적용이 가능하도록 명확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법에 ‘역외적용’ 조항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자국 콘텐츠 보호를 위해 ‘온라인저작권침해금지법(SOPA)’을 통해 해외에서 운영되는 불법 사이트에 대해 접속 차단 및 처벌이 가능한 기반을 마련해왔다.
최광선 한국리서치 책임연구원은 “국내법이 원칙적으로 속지주의에 기반하고 있지만, 디지털 콘텐츠 유통의 국경 모호성으로 인해 역외적용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공정거래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처럼 저작권법에도 역외적용 조항을 도입해, 해외에서 발생하는 한류 콘텐츠 저작권 침해에 적극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국제 공조도 미비…‘누누티비’ 막을 제도는 여전히 미완성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로 ‘누누티비’ 운영 이력이 있는 ‘오케이툰’ 운영자는 저작권 침해 전과가 있음에도 1심에서 징역 2년과 7000만원 추징금 선고에 그쳤다.
이 같은 처벌 수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국회에서는 형량을 강화하는 입법이 추진 중이다. 조계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저작재산권 침해 범죄에 대한 형벌을 강화하는 ‘저작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상 저작재산권 침해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가능하지만, 실제 평균 징역 선고는 2023년 기준 10월에 불과했고, 집행유예 선고율은 76.7%에 달했다. 조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징역 상한을 7년으로, 벌금은 1억 원 이하로 각각 상향 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장겸 국민의힘 의원도 해외 불법 사이트 차단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화하기 위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일정 규모 이상의 트래픽을 발생시키는 해외 기업에게 국내 대리인 지정 의무를 부과하고, 청소년보호책임자·정보보호최고책임자(CPO) 지정 기준에도 트래픽 요소를 추가해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들 법안은 아직 국회 통과 및 시행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 당장의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콘텐츠 업계는 자체적으로 불법 유통에 대응하기 위한 ‘자경단’을 운영하고 있으나, 구조적·법적 한계를 넘기엔 역부족이다. 이에 따라 국제 공조 강화를 위한 ‘부다페스트 사이버범죄 협약’ 가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등 76개국이 해당 협약에 가입한 상태지만, 한국은 아직 미가입국이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저작권 침해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수위를 높이고,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며 “해외 불법 사이트에 대한 수사를 위해 부다페스트 협약 가입 등 국제 공조 체계를 구축하고, 정부가 권리자의 법적·기술적 대응 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아름 (autum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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