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한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게임문화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유병한 전 문화체육관광부 실장이 취임했다. 문화 정책 기획과 저작권, 콘텐츠 산업 전반에서 30여 년간 공직을 수행한 유 이사장은 게임산업의 초창기 제도 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게임백서, 이달의 우수게임, 대한민국 게임대상 등을 처음 기획했고 바다이야기 파동과 셧다운제 도입 등 굵직한 이슈의 최전선에서 정책을 조율했다. 이제 게임문화재단을 이끌며 다시 게임을 위한 균형 잡힌 성장을 도모한다는 포부다.
=게임문화재단 신임 이사장 취임을 축하한다. 앞으로 재단 운영 방향성은 어떻게 되는지.
취임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나면서 업계와 학계, 유관 기관 관계자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게임 산업은 글로벌 관세 전쟁과 같은 외부 변수 속에서도 여전히 확장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다. 그만큼 균형 잡힌 시각과 장기 비전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재단은 그 중심에서 민간과 정부, 이용자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고자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 등 다양한 기관에서의 경험이 재단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시는지.
1997년 게임산업발전 종합계획 수립에 참여하며 정책 기반을 마련했다. 1999년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전신인 게임종합지원센터를 처음 만들었다. 게임백서와 이달의 우수게임, 대한민국 게임대상 등 지금까지 이어져온 다양한 사업의 초석을 다지는데 함께했다. 특히 2006년 대통령 비서실에 있을 당시 '바다이야기' 이슈가 불거지며 사회적 논란이 컸다. 일본식 아케이드 게임이 사행성으로 변질되면서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퍼졌고 셧다운제 같은 강한 규제가 도입됐다. 동시에 그 즈음 세계 유일의 게임 육성법도 만들어졌다.
콘텐츠산업실장으로 일하던 2000년대말 게임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한편으로는 규제와 성장이 조화를 이루는 정책 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게임문화재단이 더 일찍 설립됐다면 지금보다 훨씬 조화로운 정책 환경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유병한 게임문화재단 이사장
=정부,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재단이 새롭게 추진하거나 강화하고자 하는 주요 사업이 있다면.
앞으로는 문화체육관광부뿐만 아니라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다양한 정부 부처와 협력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다. 게임이 단순한 여가나 오락의 수단을 넘어 교육, 치유, 사회 소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발맞춰 재단은 보다 융합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게임 과몰입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기반의 치유 프로그램이라든가, 합숙 캠프와 같은 정서 회복형 프로그램을 정부 예산과 연계해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또한 민간 자율규제 체계 안에서 운영되는 모범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정부와 공유해 정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와의 협력을 통해 게임이 우리 사회에서 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최근 WHO의 게임 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 결정에 대해 국내 논의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떤 대응 방안을 갖고 있는지.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질병코드 도입 결정은 단순히 의학적 기준으로만 접근할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임 이용장애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단일한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심리적 특성, 사회적 환경, 가족 관계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공존질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를 일률적으로 '게임이 원인'이라는 식으로 규정하고 질병코드로 관리하는 것은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를 놓칠 수 있다. 재단은 이런 복합적 관점을 바탕으로 다양한 전문가들과 함께 보다 정밀하고 다층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자 한다.
또한 게임을 단지 부정적 요소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치유와 교육, 문화 도구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본다. 질병으로서의 게임 이용장애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는 만큼 게임의 순기능과 사회적 가치를 조명하는 균형 잡힌 담론이 필요하다.
재단은 향후 정부와 학계, 의료계, 산업계 등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응 방안을 마련하고 필요하다면 정책적 대안도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
=청소년 게임 과몰입 문제를 예방하고 치유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소개 부탁한다.
현재 문체부와 함께 청소년 대상 찾아가는 게임문화 교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보호자 게임 리터러시 교육을 중점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아울러 전국 유관기관과 협력해 게임 이용지도법 교육과 게임 관련 진료 소개 교육, 게임 인식 개선 사업도 운영 중이다.
과몰입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기반의 심리치유 프로그램과 일정 기간 숙박을 하며 치유에 집중할 수 있는 합숙 캠프도 연간 4회 정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여기에 더해 역사 분야 콘텐츠를 활용한 새로운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찾아가는 게임문화교실 ⓒ게임문화재단
정부에서도 관련 예산을 점차 확대하는 만큼 더 많은 청소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규모도 키워나가고자 한다. 예를 들어 단기간에 1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교육도 준비하고 있다.
아울러 청소년 게임 과몰입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대응하기 위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실태 조사를 실시해 과몰입 수준을 수치화하고 이를 정책적 지표로 삼을 수 있는 기반도 함께 마련하고자 한다.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과몰입 예방 및 치유 사업이 보다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이 목표다.
=게임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키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캠페인도 구상 중인지.
게임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협업 능력 등을 기를 수 있는 훌륭한 도구다. 재단에서는 이런 게임의 순기능을 알리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캠페인을 구상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게임의 교육적·문화적 가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부모나 교사를 대상으로 한 인식 개선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자 한다.
또한 현재 민간 자율규제로 전환되고 있는 게임 시간 선택제와 연계해 자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사례를 모범 모델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한다. 이런 모델은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지역의 다른 국가에도 확산시켜 우리나라가 건강한 게임문화 정착을 선도하는 사례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겠다.
=게임 산업이 경기 침체와 소비심리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단이 산업 발전을 위해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현재 게임 산업이 여러 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위축된 상황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중소 개발사나 인디 게임 제작사들은 초기 시장 진입부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단은 이들에게 직접적인 자금 지원보다는 산업 전반의 인식 개선과 환경 조성에 집중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게임의 사회문화적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포럼이나 캠페인, 체험 행사 등을 통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고 긍정적이고 건강한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려고 한다. 또 정부, 지자체, 유관 기관과 협력해 중소 개발사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나 제도, 교육을 연결해주는 허브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다. 특히 청년 개발자들이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인재 양성 프로그램이나 창의적 시도를 장려하는 프로젝트도 고민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게임이 단순한 산업을 넘어서 문화와 교육, 기술 융합의 핵심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데 힘을 쏟겠다.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게임 산업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재단의 전략은.
AI는 게임 개발뿐 아니라 유통, 운영, 사용자 경험 전반에 걸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런 기술 변화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업계 전반의 인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단은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업계와 공동으로 AI 관련 포럼이나 세미나, 교육 프로그램 등을 새롭게 기획하고 운영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중소 개발사나 청년 창작자들도 최신 기술 흐름을 이해하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콘텐츠 IP, 소프트웨어 산업과 융합될 수 있는 지점이 많다. 이에 따라 관련 업계와 협력해 공동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과 콘텐츠가 조화를 이루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가 AI 기반 게임 산업에서도 선도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재단이 중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정책과 기술을 수출할 수 있는 기반도 함께 마련해보고자 한다.
박정은 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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