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탑승 때 보조배터리 비닐백에
국토부, 지난 3월부터 본격 시행 中
과학계 “시행 근거 의문...환경 문제도”
[사진=챗GPT]
“보조배터리는 모두 비닐백에 넣어 비행기에 반입해야 합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월 이 같은 내용의 리튬이온 보조배터리 안전관리 체계를 도입했다. 지난 1월 에어부산 기내 화재를 계기로 ‘강화’된 규정을 도입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를 놓고 과학계에선 강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보조배터리를 비닐백에 싼다고 화재 발생 위험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리튬이온 보조배터리와 전자담배 안전관리 체계 강화 표준안’에 따르면 승객들은 보조배터리를 비닐백이나 보호 파우치에 넣어야 한다. 혹은 노출된 보조배터리 단자를 덮개나 절연테이프로 가려도 된다. 이 방식들 모두 보조배터리 단자가 외부의 금속과 접촉하지 않도록 막아 ‘외부 합선’을 방지한다는 의도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요즘 사용하는 전자제품이나 보조배터리의 충전단자는 모두 틈새가 매우 좁은 함몰형·USB형”이라며 “전기가 통하는 금속성 물체에 의한 외부 합선을 걱정할 이유가 없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실제 보조배터리 충전 단자의 외부합성으로 발생한 화재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 1월 발생한 에어부산 기내 화재도 발생 원인으로 ‘내부 합선’이 꼽힌다.
리튬이온배터리 구조. [사진=한국전기연구원]
리튬이온 배터리는 방전 과정에서 리튬 이온이 음극에서 양극으로 이동하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원리로 작동한다. 양극과 음극에 더해 분리막 등으로 구성되는데,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이 닿지 않도록 막아주는 벽이자 리튬이온이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
분리막이 손상되면 심각한 내부 합선이 발생한다. 이는 곧 걷잡을 수 없는 열 폭주로 이어진다. 분리막 손상에는 외부 압력이나 열 등의 요인이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 혹은 배터리가 내장된 전자기기를 떨어뜨려 손상이 발생하는 경우도 다수다.
이 명예교수는 “비닐백에 보조배터리를 넣어 화재를 막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비닐백에 드는 연간 예산만 12억원에, 환경 문제 유발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국토부의 이번 조치는 어디에 근거하고 있을까. 이 명예교수는 과거 휴대전화 배터리를 지목했다. 탈착식으로 단자가 바깥으로 노출된 과거 휴대전화 배터리 시절,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등에서 비닐백에 배터리를 넣어 비행기에 탑승하라 권고한 바 있다. 이 명예교수는 “최근의 USB C타입은 기존 UBS형보다 더 안전성이 좋다”며 “비닐백에 배터리를 넣어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것은 과거의 얘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한 비행기 화재사고는 연일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로 인해 발생한 항공기 화재 사고는 2015년과 비교해 지난해 약 388% 증가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발생하는 꼴로 이는 미국 내 항공편만 집계한 것이다.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국내 항공사의 기내에서 리튬 이온 배터리 때문에 발생한 화재가 13건으로 알려졌다. 비행 중 화재가 발생하면 그 피해가 막대하기 때문에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사고 방지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사진=픽사베이]
보조배터리 포함 리튬이온 배터리 관련 규정을 강화해야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비행기 탑승 때 소유할 수 있는 리튬이온 배터리 숫자를 현재보다 더 제한하고, 용량 제한 역시 강화해야한다는 조언이다.
또 비행기에 많이 비치돼 있지만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진화에 취약한 ‘할론 소화기’를 대체하는 ‘물 소화기’ 구비하도록 해야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8년 괌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기내에서 휴대전화가 좌석 사이에 끼면서 연기가 발생한 바 있다. 할론 소화기 여러 개로 진화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물 소화기 외에도 리튬이온 배터리 화재 사고에 특화된 ‘열 폭주 차단백’ 등도 구비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정책적으로 안전성이 낮은 저품질의 리튬이온 보조배터리 유통도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노트북이나 휴대전화도 모두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하지만 화재 사고율은 낮다. 자체 합선 방지 장치가 내장되어 있어서다. 보조배터리도 이 같은 장치가 구비된 제품을 유통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승객 입장에서는 리튬이온 배터리의 충전율을 낮춰야 한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2016년부터 화물 전용기에 ‘30% 이하 충전율’ 규정을 적용 중이다.
미국 항공안전자문기업인 ‘세이프티 오퍼레이팅 시스템즈’의 존 콕스 설립자는 “휴대전화 화면이 깨진 채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며 “이는 기기와 배터리가 충격에 노출됐다는 명확한 증거로 화재 사고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품 충전기와 케이블을 쓰는 것도 화재 사고 발생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며 “잠재적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승객들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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