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방송·문화]
계속 악을 선택한 이들의 끝 보여줘
등장인물 이해해줄 감정적 서사 없어
“자멸하는 게 다른 범죄물 다른 재미”
‘악연’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두고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이야기다. 박해수는 “김범준은 잘못된 선택을 한 인간의 마지막 단계”라고 설명했다. 신민아는 “유일한 피해자인 이주연은 스스로 트라우마를 끊어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넷플릭스 제공
사채를 갚기 위해 아버지의 살인을 의뢰하고, 돈을 위해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며, 그 죽음을 은폐하고, 타인을 위험으로 몰아넣기 위해 현혹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인들의 악한 선택은 서로를 파멸의 길로 이끈다. 죄는 또 다른 죄를 낳고, 그 죄는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장 파괴적인 방식으로.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드라마 ‘악연’은 온갖 악인들의 향연이다. 하지만 이들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죽게 만들며 자멸한다. ‘악연’의 영어 제목 ‘카르마’(업보)에서 알 수 있듯 ‘나쁜 짓을 하면 벌 받는다’는 단순하지만 자명한 명제를 그리며 국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악연’의 박해수와 신민아를 만났다. ‘악연’은 하나의 살인사건을 가운데 두고 악연으로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이야기다. 두 사람은 이 질기고 끔찍한 악연의 피해자인 이주연(신민아)과 이 악연의 시작점을 만든 김범준(박해수)을 맡았다. 주연은 과거의 끔찍한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은 채 일상을 살아가는 의사고, 범준은 남의 잘못을 이용해 금전적 이득을 취하며 사는 남자다.
박해수는 “김범준은 대본을 읽으면서도 어떤 정체성을 가진 건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감독님과 대화하며 힌트를 얻은 건 ‘껍데기 같은 존재’라는 거였다”며 “남의 몸을 타고 다니며 사는, 악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엔 악의 형상으로 변했는데, 이런 모습이 사이코패스 같다기보단 선택을 잘못하면서 살아온 인간의 마지막 단계 같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는 성경 구절이 자주 떠올랐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악연’은 악한 선택들이 벌인 여러 악행이 하나로 이어지며, 그 악연에 묶인 이들이 모두 응당한 죗값을 받는 과정을 차례차례 그린다. 이때 각각의 등장인물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보여주긴 하지만, 이들의 선택을 이해해줄 만한 감정적 서사는 부여하지 않는다.
박해수는 ‘악연’의 이런 이야기 구조가 다른 범죄스릴러 작품들과 차별화된다고 봤다. 그는 “‘악연’은 범죄 오락 스릴러물임에도 등장인물들이 하나 같이 어리석어 보인다는 게 특징이다. 멀리서 보면 진짜 웃기는데 가까이서 보면 너무나 비극인, 그 간극에서 오는 코미디가 재밌다”며 “이 멍청한 인간들은, 공권력에 의한 게 아니라 자기들끼리 싸우고 다투고 죽이면서 스스로 자멸한다는 점에서 다른 범죄물과는 다른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악인들 사이에서 주연은 유일하게 선한 인물이다. 학창 시절 겪은 일에 대한 트라우마로 잠을 편히 자지 못하고, 늘 가해자에게 복수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주연은 이 악연의 고리를 스스로 끊어내고 악인들과 한 발짝 거리를 둔다.
신민아는 “주연은 (이 악연의) 피해자다. 그래서 ‘악연’이 가진 오락성과 카타르시스를 피해자인 주연에게는 주지 말자는 게 만든 이들의 공통 의견이었다”며 “정민(김남길)에 의해서 칼을 놓지만, 그가 아니었더라도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본인 스스로 그 트라우마를 끊어내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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