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과학자에게 묻다] [6] 光의학 분야 세계적 석학, 윤석현 하버드 의대 교수
윤석현 하버드 의대 교수가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학교 내 연구실에서 현미경으로 연구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그는 세포에 초소형(나노 크기) 레이저 또는 광학 센서를 부착하고, 세포가 움직이거나 상태가 바뀔 때 나오는 빛의 변화를 분석하는 광의학 분야 석학으로 꼽힌다. /윤석현 교수 연구실
미국 하버드 의대 윤석현(56) 교수는 광(光)의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다. 광의학은 레이저나 광섬유 등 빛을 활용해 생체 조직을 들여다보고, 질병을 진단하거나 치료하는 첨단 의학 기술이다. 윤 교수는 광섬유 내시경으로 혈관 벽을 보는 기술을 개발해 내시경 기술을 100배 향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지난달 31일 미국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 연구실에서 만났다.
-외부에서 한국을 보면 어떤가?
“지금까지 한국은 잘해 왔다. 100년 전에 한국엔 과학이 없었다. 모든 과학은 서양에서 시작됐다. 물리학책을 봐도 한국 사람은 없다. 경제 규모와 과학기술은 비슷한 수준으로 간다. 한국은 경제 규모가 10위권이다. 과학은 좋은 학술지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발표하는지로 평가할 수 있다. 세계적 과학 저널 네이처가 발표하는 ‘네이처 인덱스’를 보면 한국은 한 7~8위다. 한국의 논문은 전체의 2.2% 정도 차지한다. 한국에 노벨상 수상자가 왜 없느냐고 지적하는데, 1년에 노벨상에서 과학 분야는 3개밖에 없다. 한국 논문 비율이 2%쯤 되니까, 통계적으로 15년에 하나 받으면 잘 받는 것이다. 지금 경제 규모를 유지한다면, 20년 후에 노벨 과학상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요즘 한국을 보면 아쉽고, 우려스러운 것도 많다.”
-어떤 점이 우려스러운가?
“한국 내 연구 분위기나 풍토 같은 것이다. 한국 뉴스를 보면, 인재들은 모두 의대로 몰린다. 미국도 의대 경쟁률이 높고 합격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은 의대 외에 금융이나 연구직, 빅테크, 창업 등등 인재들이 고르게 진출한다. 의대에 진학하는 동기도 다른 것 같다. 미국도 고소득이 의대 진학의 중요한 동기이지만, 입학생의 대략 25% 정도는 돈보다 사람 살리는 일에서 보람을 찾는다. 순수하게 연구에 매력을 느끼는 학생도 많다. 한국은 다르다고 한다.”
-미국의 연구 환경은 어떤가.
“정말로 뭔가를 이뤄내려고 학문을 파고드는 학생이 많다. 요즘에 나는 중국 학생들의 눈빛에서 어떤 결기를 본다. 30년 전 나의 모습을 그들이 갖고 있다. 돈보다는 학문적 성과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중국 학생이 많다. 내가 보려고 한 게 아니라 많은 중국 학생에게는 그런 눈빛이 보인다.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미국이 1등이지만 네이처 인덱스는 중국이 1등이다. 순위가 바뀐 지 2~3년쯤 된다. 20년 전에는 학술 분야에서 한국이 중국보다 우월했다. 당시 중국은 양은 많은데 질이 떨어진다고 했다. 10년 전엔 ‘중국이 이제 한국을 앞섰네’라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은 질과 양에서 한국과 중국은 10배 이상 차이 난다. 한국이 더 올라가려면 순수하게 연구에 매진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
-토종 학자로 하버드대 교수 임용된 지 20년이 흘렀다.
“덜컥 하버드대 교수가 된 것은 아니다. 1997년 박사를 마치고 카이스트에서 병역 특례를 하며, 스타트업에서 일을 했다. 2000년 특례가 끝난 뒤 지도 교수와 함께 스타트업 창업이 활발했던 캘리포니아 새너제이로 와서 옵틱스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광섬유를 통해 디지털 신호를 보내는 것을 광통신이라고 하는데, 옵틱스는 신호의 품질을 최종 도달 때까지 유지해 주는 기술을 발명했다. 당시로선 큰돈인 6700만달러를 유치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나중에 이 회사는 다른 대기업에 매각됐다. 이 경력을 토대로 2003년 하버드 의대 전임 강사로 근무했고, 2005년 조교수로 임용됐다. 그 모든 과정이 쌓인 결과다.”
◇“새롭게 시작되는 분야 도전하기 좋아하는데 한국선 그러기 어려워”
-그동안 어떤 연구를 해왔나.
“2018년에 빛을 이용해 각막의 건강도를 측정하는 기술을 발표했고 그 분야에 대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지금 가장 공을 들이는 연구는 레이저를 아주 작게 만들어 세포에 붙여서 세포를 추적하는 방법이다. 세포를 추적하면 어떤 병에 걸렸을 때 우리 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자세히 알 수 있게 되고, 그 병을 정복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지금 기술이 많이 발달했고 더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단계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과 다른 모습일까?
“인생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달랐을 거라고 확신한다. 나는 물리학을 전공하다 의대 교수가 됐다. 전혀 다른 분야에 첨벙 들어온 셈이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는 융합 과학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서 나처럼 꼭 의대 출신이 아니더라도 받아주고 나의 전문성을 오히려 높이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한 우물만 파라’는 분위기가 강했다. 나는 새롭게 시작되는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하기 어려웠다.”
-한국 토종 출신으로 미국에서 연구할 때 어려웠던 일은?
“역시 영어였다.(웃음) 말은 틀리더라도 할 수는 있다. 그런데 영어로 쓰는 게 힘들었다. 연구 제안서 작성 등 글쓰기가 제일 어려웠다. 영어 실력도 그렇지만, 한국에서 공부할 때 논리적 사고나 논쟁이 없었던 것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글쓰기는 논리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공부할 때는 경직된 연구 문화 때문에 논쟁을 하며 자신의 사고를 기를 기회가 없었다. 당연히 글쓰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연구를 하다 어려우면 어떻게 하나.
“(책꽂이를 가리키며) 저기 책들 보이나. 1년에 3~4권 정도 대학원 때나 박사 과정 하면서 봤던 원서들을 다시 본다. 미처 보지 못했던 물리학 관련 책이나 화학 관련 책도 있다. 왜냐하면 한 번 보고 평생 보지 않으면 잊어버린다. 야구 선수도 매일 수백 번씩 방망이를 휘두르지 않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도 무대에 오르기 전에 하루에 10시간씩 연습한다. 과학자라고 다르지 않다.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윤석현 교수는
1987년 카이스트 전기전산학부에 수석 입학 후, 중도에 과를 바꿔 물리학 전공으로 학사(1991년), 석사(1993년), 박사(1997년) 학위를 모두 카이스트에서 받았다. 2005년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 공개 채용에 지원해 100대1 이상의 경쟁률을 뚫고 조교수로 임용됐다. 최근엔 레이저를 인간의 몸속에 있는 세포에 붙여 추적하는 등 광의학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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