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빈의 과학 읽다]바깥에서 초미세먼지 다 걸러내도…알고 보면 실내 오염도도 만만찮은 ‘무한 먼지 궤도’
서울 세종로에서 미세먼지가 심각한 날, 시민들이 마스크를 끼고 걷고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겨울이 끝났다. 봄은 왔는지 안 왔는지도 모르게 가버리고 폭염이 찾아올 것이다. 계절이 바뀌어도 반가운 손님은 없고, 미세먼지라는 불청객만 뺀질거리며 방문할 뿐이다. 요즘엔 벚꽃의 꽃말이 미세먼지라는 우스갯소리가 돈다. “맑고 깨끗한”이라는 말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을 비유할 때 더 많이 쓰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코로나19가 사실상 종식됐음에도 마스크는 여전히 우리와 떨어질 수 없는 친구로 남았다. 오늘은 그 친구와의 우정을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하늘이 매운 회색으로 물든 날 당신은 일반 마스크 대신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멋들어진 천 마스크는 당신의 호흡기를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건용 마스크와 일반 마스크는 먼지를 차단하는 원리가 다르다. 일반 마스크는 보통 면이나 천으로 만든다. 날실과 씨실이 촘촘히 얽혀 먼지를 걸러주는 것이 일반 마스크의 원리다. 말하자면 거름망이나 체와 같다. 일반 마스크는 크고 거친 먼지 입자는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지만,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까지 막기에는 너무 엉성하다. 더 촘촘하게 짜면 되지 않냐고? 그럼 아마 착용자는 미세먼지보다 더 큰 문제, 그러니까 호흡곤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일반 마스크와 달리 보건용 마스크는 정전기 필터 방식을 활용한다. 거창해 보이지만 쉽게 말하자면 천과 면 대신 부직포 같은 재질의 특수 필터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해당 필터는 불규칙한 구조 덕분에 정전기를 잘 저장한다. 대기 중 미세먼지는 대부분 미세한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을 가진 극성 입자다. 마치 쇳가루가 자석에 붙듯, 미세먼지는 정전기를 띠는 필터에 이끌려 마스크에 달라붙는다. 일반 마스크가 수동적으로 먼지를 거른다면 보건용 마스크는 적극적으로 먼지를 사냥하는 셈이다. 우리가 숨이 막힐 정도로 촘촘하게 짜이지 않은 마스크를 착용하고도 미세먼지의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미세먼지와 황사로 대기질이 좋지 않은 날에는 케이에프(KF)80 이상의 보건용 마스크를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여기서 등급을 나타내는 KF는 코리아 필터(Korea Filter)의 약자로,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막을 수 있다고 식약처에서 인증한 마스크에 부여된다. KF80은 평균 지름 0.6㎛ 크기의 미세입자를 80% 이상, KF94와 KF99는 평균 지름 0.4㎛ 크기의 입자를 각각 94%, 99% 이상 걸러낼 수 있다. 국내에선 통상 지름 10㎛ 이하의 대기오염물질을 미세먼지(PM10)라고, 지름 2.5㎛ 이하의 미세먼지를 초미세먼지(PM2.5)라고 부른다. 즉, 초미세먼지가 아주 심하지만 않다면 보건용 마스크는 제법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뜻이다.
이제 보건용 마스크와 친하게 지내시라고 말하고 끝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 우정에는 좀더 복잡하고 철학적인 측면이 있다. 보건용 마스크는 진심을 보여야만 미세먼지를 막아준다. 아무리 좋은 마스크라 할지라도 마스크와 얼굴 사이에 틈이 있으면 미세먼지를 제대로 차단하지 못한다. 공기는 가능한 한 흐르기 편한 경로로 흐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높은 KF 등급의 마스크를 가능한 한 힘껏 밀착하면서 숨 쉬기 어려운 감각에 도취되는 것도 곤란하다. 환경부는 호흡기계 혹은 심혈관계 질환이 있거나 노약자일 경우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하기 전에 의사와 상담하기를 권고하고 있다. 혈압은 의외로 호흡에 작은 방해 요소만 있어도 크게 상승한다. 마스크 안에서 내뱉는 수분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의 온상이 되기도 하고, 날숨이 마스크 안에 고였다가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알레르기나 천식 등으로 호흡기가 민감한 사람에게 이는 미세먼지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다소 우악스러운 생김새를 견딜 수만 있다면 , 호흡기가 안 좋은 분들께는 차라리 산업용 방진 마스크 제품 사용을 추천한다 . 해당 마스크는 배기 밸브가 달려 들숨과 날숨을 구분하므로 숨 쉬기 훨씬 편하다 . 또한 분진 차단 검사와 함께 피부 밀착도 검사도 통과해야 하므로 앞선 밀착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이렇듯 절묘한 우정을 지켜야 하건만, 어떤 경우에도 마스크와의 우정은 딱 하루 동안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해가 지면 우정은 끝이다. 에어컨을 청소하지 않고 오래 쓰면 탁한 바람이 나오듯이 미세먼지가 흡착돼 있을수록 마스크 필터는 기능을 잃기 때문이다. 에어컨 필터와는 달리 세척해서 쓸 수도 없기에 아무리 정들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정전기 필터는 물에 젖으면 저장하고 있던 정전기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마음이 여린 사람은 차라리 마스크를 쓰지 않고 집에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는 국제적으로 더 권장되는 바이기도 하다. 한데 마스크는 짓궂게도 이런 질문을 던질지도 모른다. 당신의 집은 안전한가?
2016년 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발표했다. ‘집에서 고등어 구울 때 미세먼지, 실외 ‘나쁨’ 농도의 30배.’ 이는 환경부가 발표한 ‘실내 미세먼지 조사’를 인용한 것으로 한국일보뿐만 아니라 다양한 언론사에서 유사한 기사를 냈다. 하필이면 중국발 황사와 미세먼지가 한창 이슈가 되던 무렵 발표돼 반발을 사기는 했으나, 중국 눈치를 본다는 비판과 달리 비슷한 시기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건강한 환경, 건강한 인류’ 보고서에서도 가정 내 초미세먼지에 관한 우려를 발견할 수 있다. 도시에서 사람들은 집 밖을 나가더라도 학교나 직장 등 실내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실내공간은 대기 환경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 실내 공기 오염으로 320만 명이, 실외 공기 오염으로 35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했다.
실내 공기에는 실외 공기 못지않게 다양한 오염물질이 포함돼 있다. 식재료를 구울 때는 (고등어가 아니더라도!) 많은 양의 분진이 나온다. 카펫 같은 가정용품과 건축 자재는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을 뿜어낸다. 건물 아래 암반에서는 방사성 물질 라돈이 나온다. 실외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의 양이다. 그러나 실내에서는 지속적인 축적이 일어난다. 환경부에서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도 하루 3번 환기하기를 권장한다.
믿기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대기 중 먼지 농도는 우리가 환경 문제에 관해 희망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통계에 따르면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미세먼지 농도는 꾸준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국내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뿐만 아니라 중국발 미세먼지도 포함한 결과다. 스모그로 유명했던 영국 런던 역시 경제가 발전할수록 대기오염이 개선되고 있다. 그래도 코가 맵고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정 걱정된다면? 마스크를 쓰고 환기하는 수밖에.
결국 마스크와의 우정은 뻔하고 보편적인 교훈을 남긴다.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 없이도 건강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맑고 깨끗하다”는 말을 세상에 쓸 수 있어야 마스크와 허물없는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서윤빈 소설가
*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에 한 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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