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한 ‘꿈의 에너지’ 상용화 연구 어디까지 왔나
원자핵 충돌해 합쳐지는 현상
태양 등 항성에서 계속 일어나
1g의 수소가 핵융합 일으키면
21.5억㎉ 에너지로 바뀌게 돼
30만가구 1년간 쓸수 있는 양
인공태양 핵융합 기준점 1억도
韓, 48초간 플라스마 운전 성공
슈퍼컴·AI 활용 등 향후 과제
“저는 별이 빛나는 이유를 알고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남자입니다.”
1939년 어느 날 미국의 젊은 물리학자였던 한스 베테(1906∼2005)는 밤하늘의 바닷가를 걸으며 별이 예쁘게 빛나는 모습을 즐기던 약혼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항성에서의 에너지 생성(Energy Production in Stars)’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는 무한한 에너지를 꿈꾸는 ‘핵융합’ 연구의 시초였으며 한국 등 주요국들은 지금도 이를 바탕으로 핵융합 에너지 기술 연구가 한창이다.
◇별이 빛나는 원리 ‘핵융합’ = 핵융합은 두 개의 원자핵이 충돌해 하나의 핵으로 합쳐지는 현상이다. 기존 원자력발전의 핵분열과는 반대 원리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가운데서도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인 항성에서는 이런 핵융합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바로 지구를 비추는 태양이다. 베테의 연구 이전, 과학자들은 태양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소가 산소와 결합해 연소하면서 에너지를 방출하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나 사실 수소가 구성 성분의 90%를 차지하는 태양은 높은 중력과 온도로 인해 수소 원자핵이 조금 더 무거운 헬륨 원자핵으로 융합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때 헬륨 원자핵으로 융합되지 못한 채 감소하는 수소 원자핵의 결손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며 무한한 열과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태양에서는 1초 동안 6억5700만t의 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6억5300만t의 헬륨이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의 너무도 유명한 공식 ‘E=mc²’(에너지=질량×광속의 제곱)를 통해 베테의 핵융합 원리는 보다 수학적으로 규명된다. 에너지와 질량이 서로 바뀔 수 있는 등가관계라는 것을 의미하는 이 공식에 따르면 아무리 작은 질량(m)이라도 광속(c)의 제곱 값을 곱한 만큼 에너지(E)가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수소 원자핵이 헬륨 원자핵으로 융합될 때 줄어드는 아주 작은 질량이라도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픽=하안송 기자
◇왜 ‘수소’인가 = 핵융합은 가벼운 원자핵들이 보다 무거운 원자핵으로 융합될 때의 질량 손실을 에너지로 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질량이 가장 가벼운 수소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쉬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에 따르면 1g의 수소가 헬륨으로 바뀔 때 약 0.007g의 질량이 줄어드는데 이것을 ‘E=mc²’ 공식에 대입해 질량과 에너지의 관계를 계산할 경우 이론상 1g의 질량 결손이 무려 21억5000만㎉로 바뀐다. 즉, 1g의 수소 원자핵이 핵융합으로 모두 사라지면 30만 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수소 중에서도 중수소와 삼중수소가 일정 조건하에서 확률적으로 가장 핵융합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조합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수소·삼중수소를 뛰어넘는 차세대 핵융합으로는 헬륨-3와 중수소의 핵융합이 기대된다. 헬륨의 동위원소인 헬륨-3는 지구상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 원소이지만 달 표면에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헬륨-3는 삼중수소를 사용하는 핵융합 반응과는 달리 중성자를 생성하지 않아 중성자에 의한 추가적인 방사성 폐기물의 발생이 없는 만큼 이상적인 핵융합 연료로 꼽히기도 한다.
◇인공 핵융합 조건…‘1억 도’ = 핵융합 그 자체인 태양은 중심부 온도가 1500만 도 정도이며 바깥으로 갈수록 온도가 낮아져 표면 온도는 6000도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인공태양’을 추구하는 핵융합 반응을 위해 요구되는 온도는 태양 중심부의 약 7배에 달하는 1억 도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다.
태양은 그 자체로 높은 온도와 압력으로 내부의 수소를 원자핵과 전자가 분리된 플라스마 상태로 만들고 이런 플라스마가 태양 외부로 도망가지 못하고 꽉 잡아주면서 원자핵 간의 충돌 가능성을 높여준다. 여기서 핵융합에 의한 ‘인공태양’과의 중요한 차이가 바로 ‘압력’이다. 태양의 중력은 지구의 약 33배다. 이렇게 강한 중력 덕분에 ‘인공태양’보다 낮은 온도에서도 핵융합 반응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지구상에서는 이렇게 높은 중력을 구현할 수 없기 때문에 ‘인공태양’은 압력 대신 온도를 올리는 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 기준점이 바로 1억 도인 것이다.
그래픽=하안송 기자
◇핵융합 핵심 장비 ‘토카막’ = 핵융합을 이용한 ‘인공태양’ 생성 방식 중 국제적으로 가장 실용화에 근접한 방식이 토카막(Tokamak)이다. 토카막은 태양처럼 핵융합반응이 일어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자기장을 이용해 가두는 핵융합장치다. 플라스마를 잡아두는 D자 모양의 초전도 자석으로 자기장을 만들어 플라스마가 도넛 모양의 토카막 진공용기 내에서 안정적 상태를 유지하도록 제어한다. 이런 토카막 안에서 수소 원자핵 질량결손에 따른 핵융합에너지가 중성자의 운동에너지로 나타나고 이 에너지가 블랭킷을 통해 열에너지로 변환돼 증기를 가열하면 발전기의 터빈을 돌릴 수 있다. 이를 통해 대용량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예로,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를 영화화한 ‘아이언맨’의 강철 슈트는 가슴에 부착된 ‘아크 리액터’(원형 원자로)를 동력원으로 한다. 이 아크 리액터가 토카막과 같이 일종의 소형 핵융합원자로다. 다만 아이언맨을 개발한 토니 스타크는 1억 도가 아니라 ‘상온에서 핵융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가정하에 아크 리액터를 개발·작동시키지만 과학계에서는 상온핵융합 기술을 실제로 구현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핵융합’ 선도하는 한국 = ‘인공태양’ 시도는 이미 몇몇 국가에서 추진돼 왔으며 한국도 뒤지지 않는 선도국이다. 핵융합에너지연구원의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 ‘KSTAR’가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내왔기 때문이다. KSTAR는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도록 1억 도 이상의 초고온 플라스마를 만들고 강력한 자기장을 이용해 토카막에 가둬두는 자기밀폐형 핵융합 장치다. 지난 2007년 9월 완공, 종합 시운전을 거쳐 2008년 7월 최초 플라스마 발생을 선언하고 본격적인 운영단계에 들어섰다. 연구원 측은 “KSTAR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전 세계 토카막 장치 중 가장 진보된 장치”라며 “KSTAR의 성공적인 건설과 운영 덕분에 한국은 선진국과 나란히 핵융합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핵융합에너지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선도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가장 최근 진행된 실험은 지난 2023년 12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진행된 실험으로 1억 도의 초고온 플라스마 운전시간을 48초로 연장하고 고성능 플라스마(H-mode) 운전 시간을 102초간 운전하는 데 성공했다. 향후 2026년까지 1억 도 플라스마를 300초까지 장시간 운전하는 성능을 검증할 계획이다. 연구원 측은 “운전시간 300초는 플라스마와 내벽 상호작용을 성공적으로 제어함으로써 24시간 정상상태 운전이 가능한 기술을 확보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향후 도전 과제 = 핵융합 시 발생하는 플라스마는 약 1000억 개가 넘는 입자들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초고온의 플라스마를 장시간 운전하기 위해선 플라스마 입자들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는 규칙성을 찾아야 한다. 이런 규칙성 발견을 위해 핵융합에는 슈퍼컴퓨터 활용이 필수적이다. 연구원은 지난 2020년 핵융합 전용 슈퍼컴퓨터인 ‘카이로스’를 도입했다.
또 지난 1일 개최된 ‘민관협력 핵융합에너지 실현 가속화 전략 포럼’에서는 이보다 더욱 진보된 기술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최원호 카이스트 교수는 혁신형 핵융합로의 개념 및 도입 필요성 주제발표에서 “기존 핵융합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온초전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도입한 혁신형 핵융합로 개발이 필요하다”며 “이를 통해 핵융합 에너지의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밝혔다.
박준희 기자 vinke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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