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블랙웰을 도입한 이후가 더 문제다. 데이터센터에서 블랙웰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킬 냉각 설비를 구축해본 경험과 노하우가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사석에서 만난 해외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고위 임원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의 국내 도입을 앞두고 걱정이 든다고 했다. 기존 GPU보다 많은 열을 발산하는 블랙웰 같은 제품들이 올해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지만, 국내 데이터센터의 냉각 기술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는 데다 데이터센터 관리에 대한 법안도 체계적이지 않다.
GPU 도입에 실과 바늘처럼 뒤를 따라와야 하는 건 수천, 수만장의 GPU가 들어가는 데이터센터를 무사히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이다. 열을 효과적으로 식히지 못하면 칩 자체가 타버리고 최악의 상황에는 데이터센터가 멈춰설 수 있다.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려면 무엇보다 법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 디지털 재난을 막기 위한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다. ‘디지털 재난·장애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안’(최형두 의원 발의)은 주요 사업자가 관리 계획을 매년 세우고, 책임자를 지정하고, 재난 발생 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조사를 실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예방-대비-대응’까지 디지털 재난 전 주기에 걸친 관리 방안을 담아낸 셈이다.
하지만 법안 처리는 지지부진하다. ‘디지털 사고 발생 시 의무와 처벌 조항에 과도하다’며 기업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웰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려면 냉각수를 활용하는 액체 냉각 장치가 필수라는 건 테크 업계에서 잘 알고 있다. 다만 액체 냉각 장비가 공랭식에 비해 설치 비용이 40~60%까지 늘어난다는 점이 부담이다.
디지털 안전 관리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사후 처벌보다는 사전 예방에 초점을 두는 방식으로 법안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 데이터센터 성능에 따른 냉각 기술과 단계별 관리 방안 같은 실질적인 사고 예방책도 법에 담겨야 한다.
AI 기술을 안전하게 운영하지 않으면 기업의 경영뿐만 아니라 국민 일상 생활도 직접적인 피해를 입게 된다는 건 2022년 SK C&C 데이터센터 화재로 발생했던 ‘카카오 먹통 사태’에서 이미 증명됐다. 당시 카카오톡 메신저는 물론 카카오T와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까지 전부 마비되며 혼란에 빠졌다. 자영업자들도 고객상담이나 결제가 안 돼 불편을 겪었다. 내로라하는 빅테크가 온갖 고객 정보를 처리하는 AI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하는 현시점에서 안전은 최우선 해야 할 가치다. 한 장에 수천만 원씩 하는 GPU도 위험 없이 운영해야 제값을 할 수 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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