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소각으로 인한 화재 현장.[증평소방서 제공]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차라리 서울 공기가 낫다”
#.최근 경기도 양평으로 이사한 이모(35) 씨. 한적한 전원생활에 여유를 느끼던 것도 잠시, 눈과 목에 따가운 통증을 느끼고 잠에서 깨는 경우가 많아졌다. 미세먼지가 심한 탓이라 치부했지만, 어느 날은 독한 냄새까지 창문을 통해 들어왔다. 이에 원인을 찾으러 나선 이 씨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이웃 농민들이 논밭에서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던 것.
본격적인 영농철이 다가오며, 농촌 지역의 폐기물·부산물 불법소각으로 인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앞두고, 1년간 쌓인 쓰레기를 태우는 사례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농민들은 논·밭 소각을 통해 해충을 박멸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는 검증되지 않은 속설. 되레 유해가스를 배출해 대기·토양 오염을 유발하고, 농사 환경에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경기 양평군에서 적발된 불법 소각 현장.[한강유역환경청 제공]
최근 전국의 지방자치단체들이 봄철을 맞아 농촌 불법소각 집중단속에 나서고 있다.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기 전에, 한 해 동안 나온 폐기물을 소각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폐기물 처리의 수고를 줄이고,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논밭에서 소각을 진행한다.
문제는 이로 인한 환경오염. 농업 폐기물에는 검은 비닐 등 소각 시 유해가스가 배출되는 쓰레기가 다량 포함돼 있다. 불법소각만으로 온실가스뿐만 아니라 일산화탄소, 질소산화물 등 오염물질이 대기 중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순천시의 한 논밭이 불에 타고 있다.[순천시 제공]
특히 봄철은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대기질이 악화하는 시기다. 이 가운데 불법소각이 진행될 경우 주변 대기질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이 경우 지역 주민들의 건강에까지 악영향을 줄 위험이 크다.
일부에서 일어나는 드문 사례라고 치부하기도 힘들다. 환경부 국가 미세먼지 정보센터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에서 배출된 초미세먼지의 8.2% 수준인 7194톤이 영농폐비닐 등 농업잔재물을 소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질 악화에 상당한 요인을 차지하고 있다는 거다.
불법 소각 현장에 검은 재만 남아 있다.[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도 다수다. 하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지자체 단속이 어려운 새벽 시간이나 공휴일 등을 이용해 불법소각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일부 농민들은 농업 폐기물과 함께 생활쓰레기를 태우기도 한다.
주로 건조한 봄철에 소각을 하는 탓에, 산불 발생 위험도 적지 않다. 산림청에 따르면 2022년까지 최근 10년간 총 60.2%의 산불이 봄철인 3~6월에 발생한다. 그중에서도 논·밭 소각으로 인해 산불이 발생한 경우는 12.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불법소각으로 인한 연기가 사방으로 퍼지고 있다.[네이버 블로그 갈무리]
심지어 농촌에서의 불법소각은 일종의 농사 문화로 여겨지고 있다. 논·밭을 태워 농사를 망치는 해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가 없다. 되레 농사에 도움을 주는 익충이 제거될 수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농촌진흥청이 2020년부터 2021년까지 농업기술원과 공동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논두렁에서 월동하는 애멸구류·응애류 등 해충이 서식하는 비율은 5~17%로 낮았지만, 거미류·기생벌류 등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익충 비율은 8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아울러 5월 하순부터 10월 중하순 기간 해충밀도를 점검한 결과, 소각을 진행한 논과 그렇지 않은 논의 해충 피해 발생 차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각을 통해 익충이 없어지지 않을뿐더러, 되레 도움이 되는 익충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강원 정선군 정선읍 여탄리 일원에서 정선군과 정선국유림관리소가 함께 소각산불 방지를 위해 영농부산물 수거·파쇄 합동 캠페인을 하고 있다. [정선군 제공]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림축산식품부는 농기계 임대사업을 통해 지자체 파쇄기 구매를 지원하고 있다. 영농부산물 등을 직접 수거해 파쇄하고, 불법소각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시도다. 폐기물 회수에 대한 보상책도 나온다. 광주시는 올해 농사 후 발생하는 폐비닐, 폐농약 용기 등에 대해 수거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불법소각 관련 처벌을 더 엄격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현진 한국농촌경제연구소 연구원은 “현재 농업부산물 임의 소각은 과태료 부과 대상이지만 고령화된 농민 실정을 고려해 계도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며 “수거·처리 능력 향상을 고려하면서도, 위반 시 처벌 이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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