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ize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사진=SM클래식스
음악에 경계를 짓고 계급을 매기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주로 클래식이나 재즈 같은 마니아 장르 쪽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종사하거나 감상하는 장르가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음악적 형식미 또는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기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저명한 클래식 저널리스트 클레먼시 버턴힐의 생각은 조금 달라 보인다. 그녀는 자신의 책에 '음악은 음악'이라고 썼다. 버턴힐은 "과거에 만들어진 음악이나 앞으로 작곡될 음악 작품 모두 동일한 DNA를 지니고 있다"라고 했다. 클래식을 특별한 무엇으로 생각할 필요 없이, 음악은 결국 다 같은 곳에서 왔다는 얘기였다. 지금 우리가 듣는 힙합, 록, 댄스 일렉트로닉이 바흐의 그늘 아래 있다고 말한 그의 주장 정도가 클래식의 지위를 살짝 올려다본 정도일까, 버턴힐에게 음악의 본질은 위아래가 없다.
SM클래식스라는 회사가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SM엔터테인먼트(SM) 산하 클래식과 재즈를 전문으로 다루는 레이블이다. 이곳에서 얼마 전 흥미로운 앨범이 나왔다. 제목은 'Across the New World'. SM이 발매한 기존 케이팝 곡들을 클래식으로 편곡한 모음집이다. 작품 타이틀에서 가로지르겠다는 '새 세상'은 다름 아닌 클래식이었던 것이다. 케이팝 팬들에겐 클래식을, 클래식 팬들에겐 케이팝을 들려주기 위한 크로스오버 프로젝트. 얼마 전 본 매체에 쓴, 국악의 미래를 현대 대중음악 속에서 찾고 있는 송소희와 비슷한 경우다.
일각에선 (케이)팝과 클래식을 '물과 기름'으로도 본다. 하지만 클래식과 팝의 만남은 SM클래식스의 시도 이전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가령 세계적인 밴드 메탈리카의 'S&M(심포니와 메탈리카)' 프로젝트처럼, 어쩌면 진정한 물과 기름일 헤비메탈, 오케스트라의 협연 및 앨범 발매가 성사된 지도 벌써 사반세기가 훌쩍 지났다. 따라서 SM클래식스의 시도가 갖는 의미는 혁신이기보단, 자사가 제작한 음악을 계열사에서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혀 케이팝의 저변 확대에 기여하는 시스템 정도에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14일과 15일 열리는 'SM 클래식스 라이브 2025' 포스터.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보통 이런 프로젝트에선 편곡이 생명이다. 클래식 편곡을 거치면 언뜻 원곡은 베일에 가려지는 듯 보이지만, 실상 협주를 이끄는 메인 테마는 늘 원곡의 것이다. 이때 클래식은 그저 특별한 날 입는 드레스 같은 것일 뿐, 드레스를 걸칠 '몸'은 어디까지나 케이팝 원곡이다. 수록곡은 모두 열네 곡. 그 안엔 4년여 전 SM클래식스 사업의 출발을 알린 레드 벨벳의 '빨간 맛 (Red Flavor)' 오케스트라 버전을 비롯한 기존 발표 곡들과 더블 타이틀곡으로 지정된 동방신기의 'Rising Sun (순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Into The New World)' 오케스트라 버전 등이 함께 있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판타지 영화 배경음악처럼 바흐와 드뷔시, 비발디와 엘가,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가 케이팝 아이돌과 만나는 진풍경이 한 시간 가까이 펼쳐진다. 개인 취향으론 기존 곡들 중엔 엑소의 '으르렁 (Growl)'이, 신곡에선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좋았다. 또 크로스오버의 성취 면에선 일렉트릭 베이스 슬래핑을 오케스트라 한가운데 퉁겨 넣은 라이즈의 'Boom Boom Bass'도 권할 만하다.
아울러 곡들은 저마나 양질의 뮤직비디오도 가지고 있다. 이는 피아니스트 겸 SM클래식스 대표인 문정재의 말대로 "(SM은) 미디어와 친숙한 회사인 만큼 젊은 층을 끌어들일만한 시각적 표현력을 갖춘" 곳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른한 관현악과 함께 보아의 활동 역사를 반추한 '나무 (Tree)'의 것이 대표하는 영상들은, 음악을 떠나 그 자체 독립된 예술 작품으로서 별도의 몰입감과 감동을 이끌어낸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다음 앨범에선 오케스트라 외에도 독주나 실내악 등 더 다양한 편성으로 케이팝의 속살을 들여다봐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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