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보증업체
스포츠중계
스포츠분석
먹튀사이트
지식/노하우
판매의뢰
업체홍보/구인
뉴스
커뮤니티
포토
포인트
보증카지노
보증토토
보증홀덤
스포츠 중계
기타
축구
야구
농구
배구
하키
미식축구
카지노 먹튀
토토 먹튀
먹튀제보
카지노 노하우
토토 노하우
홀덤 노하우
기타 지식/노하우
유용한 사이트
제작판매
제작의뢰
게임
구인
구직
총판
제작업체홍보
실시간뉴스
스포츠뉴스
연예뉴스
IT뉴스
자유게시판
유머★이슈
동영상
연예인
섹시bj
안구정화
출석하기
포인트 랭킹
포인트 마켓
로그인
자동로그인
회원가입
정보찾기
뉴스
더보기
[연예뉴스]
'오징어 게임2', 21일 연속 전 세계 정상…33개국 1위
N
[연예뉴스]
‘7인의 탈출’ 윤종훈 새둥지 찾았다, 송창의 유인영과 한솥밥 [공식]
N
[연예뉴스]
'펜트하우스' 윤종훈 소속사 새 둥지..신인 때 인연 다시 잇는다[공식]
N
[연예뉴스]
'모텔캘리' 이세영♥나인우, 호텔방 입맞춤 직전…설렘 폭발 눈빛
N
[연예뉴스]
서정우·박한·제이엘 '유니버스리그' 트레이드 결과에 눈물
N
커뮤니티
더보기
[자유게시판]
퇴근셔틀 탑승!!
N
[자유게시판]
퇴근준비합니다
N
[자유게시판]
득근하러왔어요
N
[자유게시판]
롤 50분 남았네요
N
[자유게시판]
뜨커시켰습니다
N
제휴문의 @spostar
목록
글쓰기
[스포츠뉴스]청룡기 고교야구 50년 관전평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34
2024-07-07 07:00:00
<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4/07/07/0000044577_001_20240707070009990.gif" alt="" /><em class="img_desc">1977년 우승한 대구상고 이만수.</em></span></div><br><br>올해로 79회째를 맞는 '청룡기 쟁탈 전국고교야구선수권(選手權·Championship)대회(7월 2~16일)'를 처음 알았던 때는 초등학교 시절인 1971년 6월 9일이었다. 당시 지방에서는 지역 고등학교가 결승전에 진출하면 19인치 흑백 TV 앞에 동네 사람들이 다 모였다. 어른들이 소리치면 어린이들은 덩달아 신이 났고 선수들 이름도 귀동냥했다. 그날 열린 제26회 청룡기 결승전에서 경북고가 경남고를 1 대 0으로 꺾고 우승했다. 경북고에는 남우식이란 괴물 투수가 있었다. 한국 야구사에 기라성 같은 스타가 많지만, 고교야구만 놓고 보면 단연 남우식이 넘버원이다. 시속 150㎞ 강속구에 완벽한 컨트롤과 견제능력을 지닌 남우식은 중앙 4개 대회(청룡기·황금사자기·대통령배·봉황대기)와 지방 2개 대회(화랑대기·문교부장관기)를 혼자 던져 모조리 우승했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기록이다. 연말 일본원정 때는 6전 전승(全勝)을 기록, 한국야구를 우습게 보던 일본을 뒤집어 놓았다. 얼마나 위대한 기록이었으면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를 할 때 당시 경북고 멤버였던 남우식·정현발·천보성·배대웅 등 4명을 그라운드에 직접 초대했을까.<br><br>당시 남우식은 상상을 초월하는 혹사로 고교 졸업 이후 어깨가 망가졌고, 1980년 실업팀 롯데에서 은퇴할 때까지 고교 시절 기량은 나오지 않았다. 할 수 없이 회사원으로 방향을 튼 그는 불굴의 노력으로 대기업(푸르밀)의 CEO까지 오르는 또 다른 기적을 낳았다. 올해 72세의 남우식은 "청룡기는 선수권 대회로 가장 역사가 길고 권위가 있어 꼭 우승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실 경북고는 1967년(제22회)과 1968년(제23회)에 임신근·조창수·강문길의 활약으로 청룡기를 2년 연속 우승했는데, 남우식이 3년 만에 다시 가져간 셈이다. <br><br>요즘 MZ세대는 상상하지 못하겠지만, 프로야구 출범 직전인 1981년까지의 고교야구 인기는 광적이었다. 동대문운동장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와 비슷한 열기가 매일 이어졌다. 애교심(愛校心)과 애향심(愛鄕心)은 불타올랐다. 특히 청룡기는 종종 패자부활전을 도입하면서, 자칫 1패만 하면 허무하게 탈락하는 토너먼트의 단점을 보완하는 재미가 있었다. <br><br>하지만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고교야구의 인기는 시들어갔다. 특히 2011년 주말리그, 2014년 투구 수 제한 등이 속속 도입되면서 고교야구의 재미는 사라졌다. 장소는 목동야구장으로 옮겨졌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야간경기는 힘들게 되었다. 결승전이 열려도 학교 관계자나 학부형만 참석했다. 지금의 고교야구는 그저 프로팀의 지명을 받기 위한 테스트장으로 변질되었다. 대략 2000년 정도까지는 에이스가 일상적으로 완투나 완봉을 했는데, 지금은 완투 한 번 못 해본 나약한 투수들이 프로로 진출한다. 그러니 한국 프로야구의 인기는 높은데도 일본과의 수준 격차는 갈수록 벌어진다. 일본 고교야구인 고시엔(甲子園)대회가 프로야구 못지않은 인기를 계속 누리는 비결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4/07/07/0000044577_002_20240707070010021.png" alt="" /><em class="img_desc">(왼쪽부터)1971년 우승한 경북고 남우식, 1976년 당시 방우영 조선일보 사장이 경남고 최동원 선수에게 청룡기를 건네고 있다, 1978년 우승한 부산고 양상문</em></span></div><br><br><strong>고무팔 투수' 이광은의 엽기 투구 </strong><br><br>그래도 50년 넘게 청룡기대회를 지켜보면서 기억에 남는 선수와 경기가 많다. 1973년(제28회)에 배재고 이광은은 전설의 투구를 했다. 6월 14일 광주상고를 맞아 에이스 하기룡이 역투하다가 갑자기 학적 위반 시비가 불거져 마운드를 내려오자, 이광은이 대신 올라가 남은 3이닝을 던져 이겼다. 15일 대건고 경기에서 9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0대 0무승부를 기록, 16일 오전 열린 서스펜디드 게임에서 3이닝을 더 던져 총 12이닝 완봉승을 엮어 냈다. 이광은의 '엽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후에 곧바로 열린 승자준결승전 중앙고와 대결에서 연장 13회를 무실점으로 버텼지만 0대 0을 기록했고, 17일 오전 재개된 경기에서 연장 20회에 4점을 내주면서 0대 4 패배를 당했다. 이광은은 같은 날 오후에 치른 대건고와 패자준준결승전에서 9이닝 완투로 1 대 0승리를 끌어냈다. 18일 군산상고와의 패자준결승전에서는 연장 15회 동안 2점만 내줬으나 완투패를 당했다. 이광은은 5일 동안 5경기에서 59이닝 223명의 타자를 상대해 공 697개를 던졌고 32안타를 맞아 7점을 내줬다. 방어율은 1.07. 이광은은 '고무팔 투수'라는 별명을 얻으며, 청룡기 역사에서 가장 값진 감투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투수가 완봉을 진행 중인데도 굳이 9회말 투아웃에 투수를 교체하는 요즘 프로야구 감독들이 보았으면 하는 장면이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4/07/07/0000044577_003_20240707070010543.jpg" alt="" /><em class="img_desc">1981년 청룡기 결승전에서 역투하는 경북고 성준 투수</em></span></div><br><br><strong>최동원의 원맨쇼… 한 경기서 탈삼진 20개 </strong><br><br>1976년(제31회)에는 경남고 최동원의 원맨쇼가 펼쳐졌다. 4번의 완투승을 기록했는데, 그중 2번은 완봉승이었다. 특히 군산상고와 승자결승전에서는 탈삼진 20개를 기록하면서 청룡기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패자부활전에서 올라온 군산상고와 다시 맞붙은 최동원은 12개의 삼진을 뽑고 단 2개의 안타만 내주며 5 대 0으로 승리했다. 당시 군산상고 2학년으로 훗날 해태 감독을 지낸 김성한은 "최동원은 난생처음 보는 공을 던졌는데, 공의 끝부분이 확 떠오르는가 하면 커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폭포수 같았다"고 회고했다. <br><br>이듬해 1977년(제32회)의 스타는 대구상고의 '헐크' 포수 이만수였다. 그는 1975년 1학년 때 청룡기대회 1호 홈런을 치면서 일찍부터 거포로 명성을 떨쳤다. 대구상고는 승자준결승전에서 동산고에 1 대 2로 석패하면서 패자부활전으로 내려갔다. 패자결승전에서 광주일고를 11 대 3으로 대파하고 결승전에 올라갔다. 정상에서 기다리며 한 번만 이기면 우승하는 동산고를 상대로 1차전에서 3 대 1로 승리하고, 여세를 몰아 최종결승전인 2차전은 7 대 2로 대파했다. 대구상고 박영진 투수는 5일 연속 등판하며 우수투수상을 받았고, 이만수는 최우수선수상·타격상·최다안타상·타점상 등 4관왕에 올랐다. 요즘 동남아 야구선교와 야구 관련 사회봉사에 헌신하고 있는 이만수는 지난 6월 10일 제2회 이만수배 발달장애인 티볼야구대회에서 66세의 나이에 직접 홈런 시타를 보여주기도 했다. <br><br>최동원이 졸업한 뒤 흡사한 외모와 실력을 지닌 양상문이란 초고교급 투수가 부산고에 등장했다. 별명이 '왼팔 최동원'인 양상문은 3학년인 1978년(제33회)에 이상윤의 광주일고와 승자결승전을 벌였는데, 3 대 2로 승리하면서 1년 전의 패배를 되갚았다. 부산고는 경북고와 결승전에서 7 대 0으로 앞서 나가자, 8회에는 투수를 양상문에서 1루수 안창완으로 바꾸는 여유도 보였다. 경북고는 김동재 외에는 양상문의 컴퓨터 강속구를 배트에 맞히는 타자가 없었다. 양상문은 청룡기 5경기에서 41이닝 2실점으로 방어율 0.44의 괴력을 과시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53/2024/07/07/0000044577_004_20240707070010668.png" alt="" /><em class="img_desc">(왼쪽부터) 2000년 1회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한 경남고 이대호, 2005년 우승한 동산고 류현진, 2014년 우승한 덕수고 엄상백, 2015년 우승한 대구상원고 전상현</em></span></div><br><br><strong>'오빠부대'를 앞세운 선린상고 </strong><br><br>박노준과 김건우 등 2학년 '오빠부대'를 앞세운 선린상고는 1980년(제35회) 대회에서 마산상고를 5 대 0으로 꺾고 우승했다. 당시 광주일고 3학년 선동열은 청룡기대회 준비를 하다가 5월 18일부터 벌어진 광주민주화운동 때문에 불참한 점을 지금도 아쉬워하고 있다. 선린상고는 이듬해인 1981년(제36회)에도 결승전에 올랐다. 하지만 악몽의 시작이었다. 누구나 선린상고의 우승을 예측했으나 실책으로 무너진 반면, 경북고는 탄탄한 수비력으로 선린상고를 압박했다. 조선일보 분석 결과, 청룡기 경기당 평균 실책은 3.3개였으나 경북고는 0.7개에 불과했다. 당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행된 결승전은 연장 11회초 경북고 3번 홍순호가 박노준에게 좌전 안타를 때리면서 1점을 올린 반면, 선린상고는 8회부터 등판한 경북고 좌완 에이스 성준에게 꼼짝 못하면서 결국 경북고가 6 대 5로 승리했다. 충격이었다. 이어 8월의 봉황대기 결승전에서 경북고와 선린상고가 다시 만났는데, 역시 6 대 4로 경북고가 이겼고 박노준은 홈인하다가 발목을 접지르는 중상을 입었다. <br><br>역전의 명수 군산상고는 청룡기에서 1982년(제37회)과 1984년(제39회)에 우승했다. 1982년에는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싸움닭' 조계현 투수와 장호익 포수의 찰떡 콤비를 앞세워 강속구 투수 안성수가 버틴 천안북일고와 결승전에서 맞붙었다. 연장 12회까지 피를 말렸지만 1 대 1이 되어 다음 날 사상 초유의 재경기를 벌였다. 조계현은 이를 악물고 계속 던졌고 결국 9 대 5로 이겼다.<br><br>1987년(제42회)에는 모처럼 대전고가 우승했다. 대전고는 결승전에서 경남고의 맹추격에 혼나면서도 6 대 5로 이겼다. 국가대표 좌완투수였고 지금은 야구 해설을 맡고 있는 구대성은 저서 '구대성은 지지 않는다'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날 우리가 일궈낸 우승은 대전고 야구부 창단 42년 만에 거둔 사상 첫 전국대회 우승이었다. 나는 5승으로 다승 1위를 기록했고, 삼진도 43개나 잡아내며 우수투수상을 차지했다. 고1 때부터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지만, 청룡기를 통해 구대성이라는 이름 석 자가 전국의 프로·대학야구 관계자에게 확실하게 각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br><br>광주일고는 광주서중 시절이던 1949년(제4회) 김양중 투수를 앞세워 천하무적이던 장태영 투수의 경남중을 2 대 1로 꺾고 우승한 뒤 오랜 침묵을 지키다가, 1988년(제43회)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광주일고는 결승전에서 군산상고가 먼저 2점을 내자 솔로홈런 등으로 3 대 2로 뒤집었다. 하지만 8회에 다시 홈런을 맞아 3 대 3이 되었다. 연장 11회초 군산상고가 광주일고 우익수의 실책으로 1점을 얻자, '바람의 아들'이자 '이정후의 아버지'인 이종범은 "청룡이 날아가버린 줄 알았다"고 실망했다. 하지만 11회말 연속 안타로 투아웃 1·3루가 된 뒤 1번 이종범 차례가 되었다. 바깥쪽으로 흐르는 슬라이더를 끌어당겨 좌익선상을 흐르는 2루타를 쳤고, 주자 둘이 모두 홈인해 3시간45분에 걸친 혈투는 5 대 4로 끝이 났다.<br><br><strong>'돌직구' 노장진의 노히트노런 </strong><br><br>박찬호의 공주고 1년 후배들은 1992년(제47회) 청룡기를 품에 안았다. 공주고는 6월 10일 열린 결승전에서 선린상고를 4 대 0으로 이겼는데, 특히 노장진 투수가 노히트노런(안타와 점수를 허용하지 않고 승리)이란 대기록을 수립했다. 돌직구를 던지는 노장진의 다이내믹한 투구 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br><br>현재 두산 감독을 맡고 있는 이승엽은 2학년이던 1993년(제48회)에 경북고를 정상에 올려 놓았다. 당시 투수였던 이승엽은 결승전에서 8⅓이닝을 4안타 무실점으로 막는 등 대회 3승을 홀로 챙겼고, 1.74의 방어율로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경북고는 3학년 김수관이 동점 3점 홈런을 친 데 이어 이승엽이 역전 홈런을 때리면서 군산상고를 7 대 3으로 꺾었다. 이승엽은 "당시 대통령배에서 대구상원고에 예선에서 떨어져 좌절했는데, 청룡기 우승 경험이 프로 생활 내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br><br>서울의 휘문고는 팀 창단 이후 87년 만인 1994년(제49회)에 강속구의 김선우를 앞세워 장충고를 5 대 2로 누르고 처음 청룡기를 안았다. 휘문고는 2년 뒤인 1996년(제51회)에도 경동고를 9 대 7로 꺾고 우승하는 등 1990년대 강호로 자리매김했으며, 샌프란시스코로 진출한 이정후도 배출했다. <br><br><strong>메이저리그 스타들이 활약한 광주일고</strong><br><br>1995년(제50회)은 광주일고 메이저리그 스타들의 독무대였다. 3학년 서재응(뉴욕메츠), 2학년 김병현(애리조나다이아몬드백스), 1학년 최희섭(시카고컵스) 등 훗날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트리오를 앞세워 무적함대를 연출했다. 당시 김병현은 23이닝 연속 무실점(방어율 0.035)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남겼다. 6월 9일 열린 결승전에서도 덕수상고를 상대로 8이닝 18탈삼진이라는 원맨쇼를 보여주었다. <br><br>1997년(제52회)에 서울 신일고는 배명고를 8 대 6으로 꺾고 우승했다. 주인공은 투타에서 괴력을 발휘한 신장 190㎝의 2학년 봉중근으로,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신일고는 당시 초대감독이던 한동화를 다시 부르고 프로야구 선배들의 지도까지 곁들여 막강 전력을 구축했다. 청룡기를 필두로 봉황대기·황금사자기도 우승하면서 3관왕을 달성했다. 봉중근은 1997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MVP(최우수선수)를 차지한 뒤 미국 애틀랜타브레이브스와 10월에 계약을 맺고 떠나, 1998년에는 국내 기록이 없다. <br><br>2000년(제55회)에는 우승후보였던 경남고의 이대호 투수가 1회전에서 동산고를 상대로 3 대 0완봉승을 거둔 경기가 떠오른다. 타자 이대호에 비해 투수 이대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결승전에선 성남고와 대구상고가 맞붙었는데, 성남고 투수 김주철은 당시 고교 최고 투수라는 이정호의 대구상고에 단 3안타만 허용하면서 8 대 1로 대승했다. <br><br>현재 삼성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인 임창민은 광주동성고 3학년 때인 2003년(제58회) 우승을 이끌면서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결승전에서 순천효천고를 만나 2 대 9로 패색이 짙었으나 연투로 지친 김수화를 서서히 무너뜨리며 결국 10 대 9로 역전승했다. 당시 빠른 볼로 유명한 한기주, 다부진 타격의 최주환(현 키움) 등이 모두 동성고 1학년으로 활약했다. <br><br>2005년(제60회)에는 인천 동산고의 '괴물투수' 류현진(현 한화)이 정체를 드러냈다. 류현진은 2학년 초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존 수술을 받아 1년간 재활에 매진했는데, 피나는 노력 끝에 3학년이 되어 마운드에 올랐다. 성남고와 8강전에서는 9이닝 동안 삼진 17개를 솎아 내며 완봉승을 거뒀다. 류현진은 4번 타자로 타격에도 재능을 보여, 청룡기에서 타율 3할8푼9리를 기록했다. 류현진은 대구고와 결승전에서 투수로는 2이닝 5실점하며 부진했지만, 8회에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 등으로 10 대 8 승리에 기여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보여준 류현진의 타격 실력은 우연이 아니었다.<br><br>2007년 12월 18일 동대문야구장이 공식적으로 폐장했다. 청룡기의 목동야구장 시대를 연 2008년(제63회)에는 대구고가 정인욱 투수의 역투로 2 대 1로 경남고를 제치고 우승했다. 2009년(제64회)에는 신일고가 북일고에 5 대 3으로 역전승하면서 12년 만에 청룡기를 가져갔다. 신일고 1루수 하주석(현 한화)은 16타수 11안타(0.688)로 타격상을, 북일고 외야수 김동엽(현 삼성)은 2개의 홈런으로 홈런상을 각각 받았다.<br><br><strong>청룡기 최다 우승 경남고 </strong><br><br>청룡기 최다(9번) 우승학교인 경남고는 9번째 우승을 2010년(제65회)에 달성했다. 5월 27일 열린 결승전에서 제물포고를 3 대 0으로 눌렀다. 사이드암 투수인 심창민(현 NC)은 5회까지 노히트노런 경기를 펼치는 등 7⅔이닝 동안 2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심창민은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 <br><br>2011년(제66회)에는 대구상원고가 준결승전에서 초고교급 투수 한현희(현 롯데)가 버틴 경남고를 3 대 0으로 물리친 데 이어, 결승전에서 천안북일고를 2 대 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대구상원고 좌완투수 김성민(현 키움)이 최우수선수상, 충암고 류지혁(현 삼성)이 타격상을 각각 받았다.<br><br>2014년(제69회) 대회는 덕수고의 3연패(連覇)로 막을 내렸다. 결승전에서 투수 엄상백(현 KT)은 9이닝 무실점 완봉승으로 최우수선수상을 차지했다. 187㎝ 큰 키의 사이드암 강속구 투수인 엄상백은 5경기에 등판해 5승 무패, 평균자책점 0.77이라는 괴력을 과시했다. 최우수선수상과 우수투수상을 함께 받았다.<br><br>고척돔구장에서 열린 2015년(제70회) 대회. 서울고 1학년 강백호(현 KT)가 11월 12일 '고척돔구장 개장 공식경기 첫 홈런'을 기록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는 투수로, 포수로, 타자로 모두 탁월한 재능을 선보였다. <br><br>하지만 2015년 청룡기는 대구상원고의 품으로 돌아갔다. 주인공은 투수 전상현(현 기아)이었다. 전상현은 하준영(현 NC)이 던진 성남고와 결승전에서 2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7피안타와 11탈삼진으로 12 대 2 승리를 거두었다. 팔꿈치 수술 경력이 있음에도 역투한 전상현은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다.<br><br>2016년(제71회)에는 덕수고 2학년 양창섭(현 삼성) 투수가 이름을 날렸다. 7월 15일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서울고를 7 대 4로 제압하고 우수투수상을 받았다.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덕수고 1루수 강준혁은 훗날 강인규로 개명(改名)하고 자신의 야구 인생을 담은 '스트라이크 아웃 낫 아웃'이란 소설을 펴내기도 했다. <br><br>2017년(제72회)은 배명고가 서울고를 2 대 1로 누르고 청룡기 첫 우승을 했다. 승리투수는 곽빈(현 두산), 패전투수는 주승우(현 키움)였다. 곽빈은 185㎝의 키에 고교 시절 이미 시속 153㎞의 공을 던졌다. 결승전에서는 6회 구원투수로 등판해 4피안타와 5탈삼진으로 강백호가 있는 서울고 타선을 잠재웠다. 팔꿈치 수술 이력이 있는 곽빈은 김명섭 감독의 배려로 무리하지 않은 가운데 비교적 싱싱한 어깨로 프로에 진출했다고 한다.<br><br>2019년(제74회)에는 수원 유신고가 강릉고를 7 대 0으로 꺾고 사상 처음 우승을 차지했다. 좌완 허윤동(현 상무)은 7이닝 동안 2안타에 6탈삼진, 우완 소형준(현 KT)은 2이닝을 1안타로 틀어막았다. 허윤동은 최우수선수상과 우수투수상을 모두 받았다.<br><br>2020년(제75회)에는 장충고가 광주동성고를 9 대 7로 누르고 우승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광주동성고 김도영(현 기아)에게 모아졌다. 올해 한국프로야구에서 '20(홈런)-20(도루)' 대기록을 이미 달성한 김도영은 당시 2학년 톱타자로 최다안타상·최다도루상·최다득점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br><br><strong>승리보다 값진 '배움의 야구' 산실</strong><br><br>2022년(제77회)에는 유신고가 3년 만에 다시 청룡 여의주를 찾아왔다. 맞수는 전년도 우승팀인 충암고였다. 충암은 좌완 두뇌파 윤영철(현 기아) 투수가 호투했지만 결국 유신고가 3 대 1로 이겼다. 지난해(제78회)는 경북고가 전미르(현 롯데)의 맹활약으로 30년 만에 우승했다. 준우승을 한 양산 물금고는 2015년 창단한 신생팀으로, 별도 기숙사가 없어 임대아파트 3채를 빌려 학년별로 합숙 생활을 하고, 사회인야구를 위해 조성한 임시 야구장에서 훈련하면서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br><br>이렇게 청룡기 고교야구의 빛나는 역사는 곧 한국야구 발전의 역사다. 특히 청룡기는 '배움의 야구'를 이어온 대회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 예절을 갖추고 서로에게 인사한다. 청룡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승리보다 더 중요한 스포츠맨십을 배웠다"고 말한다. '청룡의 해'를 맞아 모두 57개팀이 참가한 가운데 7월 초부터 목동야구장에서 열리고 있는 제79회 대회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기대한다. <br><br>
댓글등록
댓글 총
0
개
맨위로
이번주
포인트
랭킹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
1
4,000
상품권
2
3,000
상품권
3
2,000
상품권
1
사나존예보스
1800
2
구마이노베이션
1700
3
미국거주펨붕
1500
4
지평막걸리
1400
업체홍보/구인
더보기
[구인]
유투브 BJ 구인중이자나!완전 럭키비키자나!
[구인]
에카벳에서 최대 조건으로 부본사 및 회원님들 모집합니다
[구인]
카지노 1번 총판 코드 내립니다.
[구인]
어느날 부본사 총판 파트너 모집합니다.
[구인]
고액전용 카지노 / 헬렌카지노 파트너 개인 팀 단위 모집중 최고우대
지식/노하우
더보기
[카지노 노하우]
혜택 트렌드 변화 위험성 다시 가늠해 보기
[카지노 노하우]
호기심이 부른 화 종목 선택의 중요성
[카지노 노하우]
카지노 블랙잭 카드 조합으로 히트와 스탠드를 결정하는 방법
[카지노 노하우]
흥부가 놀부될때까지 7
[카지노 노하우]
5월 마틴하면서 느낀점
판매의뢰
더보기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제작판매]
html5웹미니게임제작 해시게임제작 카드포커게임제작 스포츠토토 카지노 슬롯 에볼루션 토지노 솔루션분양임대재작
포토
더보기
N
N
N
N
N
N
채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