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디찬 겨울 이겨낸 희고 푸른 종소리
이 풀과 처음 마주했을 때 든 생각! “참 어이없는 녀석이네. 한겨울 눈 속에서 저 홀로 푸르러 어쩌겠다는 거야. 동물의 먹잇감밖에 더 되겠어. 바보네”
이 느낌과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4계절 내내 푸른(진초록) 잎사귀를 뽐내지만 먹이가 부족한 겨울철, 노루와 사슴의 요긴한 양식이 됩니다. 녹제초(鹿蹄草), 녹수초(鹿壽草)로 불리는 이유이지요. 이 풀의 우리 말 이름은 노루발풀! 햇볕이 잘 드는 양지쪽 산지 어디에서나 잘 자라며 대개의 식물이 피하는 소나무 군락지에서도 거뜬하게 살아갑니다.
노루발풀의 매력은 늘푸른 ‘상록’과 더불어 5∼6월경 피는 꽃의 자태! 식물이 간직한 약성 또한 무시할 수 없지요. 꽃은 더위가 시작될 무렵 피기 시작하는데 마치 5∼12개의 은종을 수직으로 매달아 놓은 듯합니다. 이즈음 꽃을 마주하면 넋을 잃게 됩니다. 시기를 앞당겨 피는 은방울꽃과 때죽나무, 둥굴레와는 차원이 다른 감동을 주지요. 작아서 더 매력적인 꽃!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희고 푸른 종소리가 숲을 가득 채우는 느낌! 그 몽환적 매력에 더해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인다는 점에 이르면 신성한 느낌마저 듭니다.
작은 몸뚱이로 세찬 눈보라를 이겨내는 노루발풀은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뿌리와 줄기 꽃 등 식물 전체(전초)를 그늘에 말려 쓰는데 항균 진통 지혈 작용이 뛰어납니다. 민간에서는 이런 특성을 활용, 염증성 질환에 처방하거나 뱀과 독충에 물렸을 때 짓찧어 생약으로 썼지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한방에서는 근육과 뼈를 튼튼히 하거나 기력을 돋우는 자양강장제로 이 식물을 활용한 기록이 보입니다. 동의보감은 “몸을 튼튼하게 하는 강장 작용, 신장을 이롭게 하는 보신 작용, 통증을 멎게 하는 진통 작용, 혈액을 정화하는 보혈 작용, 독성을 풀어주는 해독 작용”이 뛰어나다고 강조합니다.
음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잘 말린 전초를 유리 용기 또는 약탕기에 끓여 냉장 보관 후 물처럼 마시지요. 식물 자체에 독성이 없어 어린 순과 꽃은 차로 우려 마실 수 있습니다. 바람을 맞으며 마시는 노루발풀 꽃차는 은구슬이 또르르 굴러 계곡에 퐁당 빠지는 느낌이지요. 세속의 잡다한 소음에서 벗어나고 싶은 계절. 내달리는 시간이 너무 빨라 늘 지각 인생이지만 몸은 점점 더 굼뜹니다. 이런 불편함, 노루발풀이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지 않을는지. 삶이 힘들 땐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이 풀의 꽃말처럼.
▲ 전략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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