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심한 균열이 생긴 도로 위에서 행인들이 지진 피해 상황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과학자들이 폭설이나 폭우 등 이상기후가 지진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비록 일부 지역에서의 실증 연구지만 기후 재난이 지진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을 주고 있다.
윌리엄 프랭크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지구·대기 및 행성과학부(EAPS) 조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일본 노토반도의 지진 활동이 계절별 강설량 및 강수량 패턴의 영향을 받는 지하 압력의 변화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밝힌 연구를 8일(현지시간)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했다.
일본 본섬에서 동해 방향으로 굽어 나온 노토반도에서는 2020년 말부터 크고 작은 규모의 지진 수백 건이 발생했다. 본진으로 시작해 여러 여진으로 이어는 일반적인 지진과 달리 노토반도의 지진은 명확한 본진이나 지진 유발 요인 없이 여러 차례 소규모의 지진이 지속되는 '군발 지진' 형태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노토반도에서 군발 지진이 발생한 이유를 찾기 위해 먼저 일본 기상청의 지진 데이터를 바탕으로 일본 전역의 지진 활동에 대한 시간대별 데이터를 조사했다. 연구팀은 2012년부터 2023년까지 11년 동안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지진에 초점을 맞췄다.
노토반도에서 발생한 지진 발생 횟수를 시간대별로 세어본 결과 2020년 이전의 지진 발생 시기는 산발적이고 서로 관련이 없었다. 하지만 2020년 말부터 지진의 강도가 세지고 시간적으로 밀집돼 발생하며 군발 지진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2012년부터 2023년까지 11년 동안 관측소에서 측정한 지진 데이터를 분석했다. 각 관측소는 해당 지역에서 발생하는 흔들림을 지속적으로 기록한다. 과학자들은 한 관측소에서 다른 관측소로 전달되는 흔들림을 통해 지진파가 관측소 간 얼마나 빨리 이동하는지를 확인하고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를 계산할 수 있다. 연구의 수석저자인 왕칭유 전 MIT 연구원은 관측소 측정값을 사용해 노토반도와 그 주변의 모든 관측소 사이의 지진파가 전달된 속도를 계산했다.
노토반도 아래에서 발생하는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에 대한 시간대별 그림을 만들고 패턴을 관찰한 결과 군발 지진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2020년 무렵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의 변화가 계절 변화에 따라 같이 바뀌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계절에 따른 강수량이 지층의 균열 사이를 채우고 있는 물에 작용하는 압력을 뜻하는 '공극 수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봤다. 프랭크 교수는 "비나 눈이 내리면 무게가 증가하면서 공극 수압도 증가해 지진파가 더 느리게 통과할 수 있다"며 "물이 증발하거나 빠져나가면서 무게가 제거되면 갑자기 공극 수압이 감소하고 지진파가 더 빨라진다"고 설명했다.
또 노토반도의 계절별 강수량 변화에 따른 지난 11년간의 공극 수압 변화에 대한 모의 실험을 진행하기 위한 모델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일일 적설량, 강우량, 해수면 변화 측정값 등 기상 데이터를 모델에 입력해 군발 지진 발생 전후 노토반도 지하에 발생한 큰 공극 수압 변화를 추적했다. 이후 공극 수압의 변화를 나타낸 표를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에 대한 시간대별 그림과 비교도 했다.
지진파가 전달되는 속도 관측 데이터와 계절별 강수량에 따른 공극 수압 모델을 겹쳐서 살펴본 결과 강우량과 다른 기후 조건만 고려했을 때보다 강설량 데이터, 특히 폭설이 있을 때 모델과 관측치 간 적합도가 더 높았다. 노토반도 주민들이 겪고 있는 군발 지진은 부분적으로 계절적 강수량, 특히 폭설로 설명될 수 있다는 말이다. 프랭크 교수는 "지진 발생 시기가 폭설이 많이 내린 시기와 매우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랭크 교수는 "지각판 구조가 지진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극한기후 현상도 분명 지진과 관련된 요소 중 하나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로 밝혀진 지진과 극한기후 사이의 연관성은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다른 지역에도 적용될 수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극한기후 현상이 지진에 미치는 영향이 더 뚜렷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프랭크 교수는 "더 극단적인 강수 현상이 발생하는 등 기후가 변화하고 대기, 해양, 대륙의 물의 양이 바뀌면서 지각이 하중을 받는 방식도 바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하은 인턴기자 har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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