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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이덕환의 과학세상] 약탈적 학술지 퇴출시키려면

온카뱅크관리자

2024-04-11 1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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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픈세미나에서 발언하는 스테판 토체프 MDPI CEO. 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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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위스의 대규모 학술지 출판기업인 MDPI의 최고경영자가 지난 3월 말 서울을 방문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MDPI 학술지에 대한 부실 의혹에 대해서 "의사 결정 담당자들이 검증된 기준을 통해 의사 결정을 내렸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MDPI는 자사 학술지의 전반적인 부실 의혹을 인정하는 대신 자신들이 학술 논문의 출판 속도를 높이고 오픈액세스(OA) 방식을 통해 지식 민주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소식이다.
 ● MDPI의 해묵은 부실 의혹
 MDPI에 대한 부실 의혹이 우리에게 처음 제기된 것은 2021년이었다. 익명의 외국인 수학자가 대한수학회에 "한국의 연구자들이 약탈적 학술지로 의심되는 2종의 학술지에 수백 편의 논문을 발표해서 교수 채용·승진·연구비 심사 등에서 부당한 혜택을 누렸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구체적으로는 보통 한두 달 안에 동료심사·게재승인·출판까지 해주고 빠르면 10일 이내에 논문을 내주기도 하는 MDPI의 '매스매틱(Mathematics)'와 '시메트리(Symmetry)'를 지적했다. 편집자가 논문 게재의 조건으로 MDPI 학술지의 논문을 인용하도록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클래리베이트 에널리틱스에 따르면 당시 매스매틱스에는 한국 국적의 연구자 549명이 논문을 실었고 시메트리에는 872명이 논문을 발표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대한수학회는 2021년 3월에 "약탈적 학술지로 의심받거나 평판이 나쁜 학술지에 출판된 논문은 임용·승진·연구비 심사에서 인정하지 말고 만에 하나 인정해야 한다면 외부 학자에게 따로 논문 심사를 받기를 권고한다"는 강력한 성명을 발표했다. 
 MDPI의 부실 의혹은 수학 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한국연구재단이 작년 11월 '한국경제포럼'을 통해 공개한 분석에서는 논문 실적이 절실하게 필요한 교수들이 MDPI의 학술지에 논문을 더 많이 발표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 
 2018년부터 2020년까지 KRI(한국연구자정보)에 등록된 과학기술 분야 논문에서 조교수와 BK 참여 교수가 MDPI에 상대적으로 논문을 더 많이 발표하는 경향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4대 과학기술원처럼 연구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인 대학에서는 오히려 MDPI에 논문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 세계 최대 오픈액세스 출판기업의 빛과 그림자
 1996년 스위스 바젤에서 'Molecular Diversity Preservation Internation'라는 화학물질시료아카이브를 관리하는 비영리기관으로 문을 연 MDPI는 2010년 'Multidisciplinary Digital Publishing Institute'라는 오픈액세스 학술지 출판기업으로 변신했다. 
 2024년 1월 현재 MDPI는 92종의 SCI 등재지와 7종의 SSCI 등재지를 포함해서 433종의 학술지를 발간하는 세계 최대의 학술지 출판기업으로 성장했다. 138종의 학술지는 SciFinder에 등재되고 270종은 Scopus에 등재된다. MDPI는 오픈액세스 형식의 단행본도 출판한다.
 MDPI의 성장세는 놀랍다. 2017년 3만1000편이었던 MDPI의 논문 발간 편수가 2022년에는 28만8000편으로 늘어났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바이러스와 관련된 연구 결과가 MDPI를 통해 연구자들에게 바로바로 공유되면서 빠른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됐다"는 것이 MDPI의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DPI를 비롯한 오픈액세스 출판기업들이 '논문공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오늘날 MDPI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오픈액세스 출판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다. 
 MDPI의 상업적 성공도 놀라운 수준이다. MDPI의 주된 수입원은 500스위스프랑(약 74만원)에서 2400스위스프랑(약 365만원)에 이르는 소위 '논문 게재료'일 수밖에 없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 MDPI가 전 세계 연구자로부터 징수한 게재료가 8477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MDPI의 성공 요인은 40일 정도 소요되는 짧은 동료심사다. 6000명에 이르는 MDPI의 보조편집자(Assistant Editor)를 활용해서 투고자·편집자·평가자 사이에서 지체되는 시간을 줄이도록 노력한다는 MDPI의 해명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현실이다.
 넘쳐나는 '특별호'(special issue)도 MDPI의 상업적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MDPI는 2013년 388편의 특별호를 발간했다. 학술지당 평균 5편의 특별호를 발간한 것이었다. 
 2021년에는 그 수가 거의 4편 종으로 늘어나서 학술지당 500편의 특별호를 발간했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커졌다는 뜻이다. MDPI의 학계의 관행을 완전히 뒤집어서 기업이 직접 특별호를 기획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별호의 발간에 편집위원회가 과연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하루에 평균 9편의 특별호를 발간한 경우도 있었다.
 '창고형 학술지'(warehouse journal)로 알려진 MDPI에 대한 국제 학계의 평가는 긍정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MDPI는 2014년 제프리 비올(J. Beall)의 '약탈적 오픈액세스 학술지 목록'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MDPI의 거센 항의로 2015년에는 목록에서 삭제되었다. 비올은 2017년 콜로라도대학교의 권유로 '비올 목록'의 발간을 포기해야만 했다. 제프리 비올에 따르면 MDPI를 비롯한 오픈액세스 출판사들이 대학에 반복적으로 항의 이메일을 보낸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 디지털과 정량평가가 만들어낸 약탈적 학술지
 학술 활동을 핑계로 상업적 이익을 챙기는 '가짜 학회(학술회의)'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다. 과학·공학·인문사회 분야의 학술대회 개최를 전문으로 하는 '유령학술단체'로 알려진 '와셋'(WASET)과 '오믹스'(OMICS)에 참여하는 우리나라 학자의 수가 세계 5위라는 독일 언론의 보도 때문이었다. 
 2015년부터 3년 동안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두 기관의 엉터리 학술대회에 참가한 연구자가 256명이나 되고 이들이 지급받은 출장비가 무려 5억 원이 넘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가짜 학회와 약탈적 부실 학술지의 폐해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연구비를 해외 관광에 낭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연구 성과를 부풀리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국가 연구개발 사업의 관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약탈적 학술지에 실린 엉터리 논문이 소비자를 현혹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가짜 학술지에 실린 엉터리 논문이 게르마늄 팔찌의 마케팅에 활용되기도 했다.
 약탈적 부실 학술지의 등장은 디지털 기술과 논문 편수에만 의존하는 획일적인 정량평가가 만들어 낸 과학기술계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면서 등장한 논문 비싼 '구독료' 때문에 시작된 '오픈액세스'(Open Access)가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학술 정보의 공공성과 개방성이라는 차원에서 누구나 논문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오픈액세스가 긍정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오픈액세스는 학술지를 발간하는 출판사에게 엄청난 규모의 불로소득을 안겨준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다. 약탈적 학술지는 오픈액세스의 불로소득을 때문에 등장하는 사회악이다.
 약탈적 학술지를 가려내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이 절대 아니다. 정상적인 학술지와 약탈적 학술지를 분명하게 가려내는 기준을 설정하는 일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일탈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와셋이나 오믹스의 경우에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MDPI처럼 막강한 재력(財力)을 갖춘 경우에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입장을 가진 정부·대학·연구기관을 상대로 거세게 항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MDPI 최고경영자의 서울 방문도 최근 대한수학회와 연구재단, 그리고 일부 대학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거부감을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욱이 MDPI가 발간하는 모든 학술지가 약탈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국제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부실 학술지의 목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콜로라도 대학교의 제프리 비올 교수가 발표하던 '약탈적 학술지 목록'도 사라져버렸다. 부실 학술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22년 기준으로 부실이 의심되는 학술지의 수는 세계적으로 무려 1만5500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실 학회와 약탈적 학술지에 의한 폐해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강조하는 '정량평가'와 주관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정성평가'의 적절한 조화를 찾아내기 위한 과학계의 노력이 절실하다. 어쩌면 과학자의 윤리를 좀먹고 성장하는 약탈적 학술지의 퇴출을 위해 객관적인 공정성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는 형편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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