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없는 세상]
색상 포장지와 비슷하거나 흐리게
벌칙 규정 없어 규제·개선 어려워
KT&G(위 사진)와 외국계 담배 회사의 궐련 제품들. 법령상 담뱃갑 경고 문구의 색상은 포장지 색상과 보색 대비로 선명하게 표기돼야 하나, 동일한 색상이 쓰였다.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 제공
담배 회사들이 건강 위해성을 표시하는 ‘담뱃갑 경고 문구’에 꼼수를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 법령에 벌칙 조항이 없는 점을 교묘히 악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일 보건복지부와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에 따르면 KT&G와 필립 모리스 등 국내외 담배 회사들이 출시한 일부 궐련(일반 담배) 제품에서 담뱃갑 경고 문구의 바탕색이 담배 포장지와 동일하거나 경고 문구가 잘 보이지 않는 색상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블로그 등 주로 온라인에서 판촉 되는 KT&G의 레종 제품(프렌치 사비냑 에디션)의 경우 검은 테두리 안 담뱃갑 경고 문구의 바탕색이 각각 핑크 주황 녹색 노랑으로, 포장지에도 같은 색상들이 사용됐다. 또 다른 레종 제품(오텀 에디션)에서도 비슷한 편법이 발견됐다. ‘당신의 흡연, 병드는 아이!’ ‘흡연하면 발기부전 유발!’ 같은 경고 문구가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외국계인 필립 모리스와 BAT코리아, JTI코리아의 궐련 제품에서도 비슷한 꼼수가 확인됐다(사진 참조).
2016년 6월 신설된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의 ‘담배 광고에 대한 경고 문구 등 표기 방법’에 따르면 경고 문구는 사각형 테두리(2㎜ 굵기의 검정색 선) 안에 소비자가 명확히 볼 수 있는 크기의 고딕체로, 색상은 담배 광고의 도안 색상과 보색(반대색) 대비로 선명하게 표기하게 돼 있다.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인 이성규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말 국내 궐련과 전자담배 사용 현황을 모니터링하다 편법적인 경고 문구 표시 담뱃갑을 다수 발견했다”면서 “담배 회사들이 언제부터 이런 꼼수를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질병 유발 등 경고 문구를 어떻게든 눈에 잘 안 들어오게 하려는 목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표기 방법의 위반이 있어도 별도의 벌칙 규정이 없어 규제나 개선이 어렵다는 점이다. 복지부는 최근에야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내부적으로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담뱃갑 경고 문구 표기는 시행령으로 규정돼 있어 벌칙 조항을 새로 넣으려면 모법인 국민건강증진법의 개정이 필요하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체계상 상위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했다.
담뱃갑 경고 그림과 문구는 국민건강증진법(9조 2항)과 시행령(16조)에 따라 2016년 12월 처음 도입됐으며 흡연의 건강 경고를 담은 그림·문구(궐련 10종, 전자담배 2종)가 표기됐다. 2년마다 건강 경고의 효과성을 평가해 필요할 때 일부 그림과 문구가 교체되기도 한다. 올해 12월 제4기 경고 그림·문구의 표기 종료를 앞두고 현재 정부가 새로 적용할 5기 그림·문구 후보안을 마련 중이다. 최종 확정되면 6월에 고시된다.
이성규 센터장은 “담배 회사들의 꼼수 마케팅은 담뱃갑 경고 그림과 문구 도입 취지와 2년마다 교체하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행위”라며 “보건당국의 상시적인 모니터링과 함께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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