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원 백지화 전제조건 없인
그 어떤 대화도 전면 거부
의협 "정부, 전혀 후퇴 안해
대화협의체 참여 안할 것"
◆ 의사 파업 ◆
동네병원도 진료 단축 대한의사협회가 동네 병·의원도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주 40시간' 진료 단축에 돌입하기로 한 가운데 1일 서울의 한 동네 의원에서 진료 시간을 바꿔 게시해놓고 있다. 이충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의대 2000명 증원과 관련해 의료계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통일된 숫자를 가져오면 증원 규모를 조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의료계 반응은 여전히 냉담하다. '증원 백지화'가 전제 조건으로 깔리지 않는 이상 어떤 대화 테이블도 만들어질 수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의료대란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까지 나섰지만 의정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진 형국이다.
1일 대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이날 의료계는 정부가 제안한 대화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김성근 의협 비상대책위원회 언론홍보위원장(여의도성모병원 외과 교수)은 "2000명이라는 숫자가 맞는지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꾸준히 얘기했지만 오늘 대통령 담화문을 보면 그 숫자에 대한 후퇴는 없다"며 "정부가 국민·의료계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협의체를 만들 것을 제안했지만 2000명을 정해놓은 상태로 여러 단체가 모여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의료계에 단일화된 증원 규모를 가져오라고 한 것도 정말 그 숫자를 요구하는 게 맞는지 의문"이라며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건강지표 등을 근거로 대한민국의 의료가 최상 수준임을 여러 차례 설명했기 때문에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정부 태도에는 추가로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의료대란 사태를 중재하기 위해 나선 다른 의료단체들도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방재승 전국 의대교수 비대위원장(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이번 정부는 현 의료 사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담화문이었다"면서 "한국 의료의 미래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와 대화가 안 되니 기존 방침을 이어간다"고 전했다. 서울대·연세대 등 20개 의대가 속해 있는 전국 의대교수 비대위는 이번 의대 증원 논의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을 제외할 것과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것을 정부에 요구한 바 있다.
김성근 의사협회 비대위 언론홍보위원장이 1일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은 대국민 담화에 대한 의사협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39개 의대가 참여하는 전국의대교수협의회 비대위는 이날 별도 총회를 열고 대응 방안을 모색했다. 조윤정 전의교협 비대위 홍보위원장(고대안암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은 "전의교협의 공식적인 생각은 총회를 거친 뒤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직 당사자인 전공의들로 구성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날 대통령 발표로 의정 갈등은 봉합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수도권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 교수는 "최근 의학한림원에서 2000명 규모에 대해 정부가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정부의 태도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며 "어차피 정부는 의료계가 그 어떤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숫자를 가져와도 받아들이지 않을 텐데 이게 나라인가"라고 말했다.
전공의들에 대한 면허정지와 관련해 다시 강공으로 전환할 가능성을 내비친 점도 의사들의 반발을 샀다.
윤 대통령은 이날 전공의들의 행정 처분에 대해서 "모든 절차는 법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며 "전공의 여러분들은 통지서 송달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의료 현장으로 돌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료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복귀) 명령을 내린 뒤 돌아오지 않은 대부분 전공의에게 의사면허를 3개월간 취소하겠다는 내용의 사전통지서를 다양한 방법으로 발송했다. 의견진술 기간이 끝나면 면허정지에 대한 본 통지가 가능한데, 대상 전공의 중에서는 지난주부터 의견진술 기간이 끝난 사례가 나와 본 통지 대상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는 쪽으로 다시 선회하면 수십 명 혹은 수백 명에 대한 면허정지가 한꺼번에 내려질 수 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공의에 대한 유연한 대처를 주문했던 게 결국은 시간 벌기용 임시방편이었을 뿐임을 오늘 담화로 분명히 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서울지역 수련병원 노동자들은 이날 전공의 즉각 복귀와 의과대학 교수 사직 철회를 촉구하고 환자와 병원 노동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 등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소속 16개 병원 지부와 세브란스병원노동조합 등 대표자들은 이날 오전 세브란스병원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사들이)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일방적 단체행동을 지속한다면 병원 노동자는 물론 환자와 국민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심희진 기자 / 강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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