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브리핑 일방 취소 뒤 직원들 ‘바람막이’
출근 여부도 확인 못해…대사관 업무 ‘마비’
정재호(오른쪽) 주중 한국대사가 2022년 7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장을 받은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답변할 수 없다.”, “파악 못 했다.”, “확인해 드릴 게 없다.”
1일 오전 베이징 주 중국 한국 대사관에서 열린 정기 브리핑에 나온 대사관 관계자들은 46분 동안 이어진 기자들의 질문에 이런 답변만 반복했다.
이날 브리핑은 정재호 주중 대사가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정기 브리핑으로, 계획대로라면 정 대사가 직접 주최해야 했다. 하지만 정 대사는 본인의 ‘갑질 의혹’이 불거진 지 하루 만인 지난달 29일 오후 늦게 “일신상의 사유로 공사참사관 브리핑으로 대체한다”고 밝히고, 본인 브리핑을 취소했다. 부하 직원에게 갑질 신고를 당한 정 대사가 곤란한 상황에 몰리자 본인은 뒤에 빠지고 다시 부하 직원을 ‘바람막이’ 삼은 것이다.
이날 기자들은 대사의 갑질 의혹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갑질 의혹에 대한 대사 입장이 무엇인가’, ‘대사가 브리핑을 취소하며 밝힌 일신상의 사유가 무엇인가’, ‘브리핑을 취소했는데, 향후 대사의 다른 일정도 취소하나’, ‘외교부의 갑질 조사는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등의 질문이었다. 예정에 없이 갑작스럽게 브리핑에 불려 나온 대사관 관계자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답변할 수 없다”, “기존 설명 외에 더 드릴 말씀이 없다”는 취지의 답만 내놨다.
이들은 정 대사가 이날 출근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이날 대사관 쪽은 오후 늦게서야 정 대사가 “오전에 반가를 냈다”고 밝혔다. 대사관 쪽은 정 대사가 왜 반가를 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 대사가 이날 오전 출근하지 않으면서 매주 월요일 오전 열리는 직원 전체회의도 하루 뒤로 연기됐다. 갑질 의혹이 보도된 뒤, 정 대사의 브리핑 취소 등 석연치 않은 행동으로 대사관 전체 업무 시스템이 상당한 부담을 받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서울 충암고 동기 동창으로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출신인 정 대사는, 취임 직후 베이징 주재 특파원들과 갈등을 빚은 뒤 현장 질문을 받지 않는 기형적인 방식의 브리핑을 1년 넘게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정 대사는 취임 이후 10개월 동안 현지 주요 인사를 만나는데 쓰는 ‘네트워크 구축비’를 활용해 중국 외교부와 접촉한 횟수가 1건에 불과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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