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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싹 다 죽여” 국가의 광기…평범한 경찰관은 조용히 명령을 어겼다[셸터: 서로를 구하다②]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6
2026-10-09 07:37:43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strong class="summary_view" data-translation="true">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 광풍 속에서도<br>낙인·연좌제 각오하고 이웃을 살린 이들<br>시대에 묻힐 뻔한 ‘평범한 의인’들의 용기</strong>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2lG6c6WIC7">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bf2c1f70f385b2ae27d1a7968916e938f378a9ea6a7d6deb5b2ff21f95fc3c30" dmcf-pid="VSHPkPYCyu"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1951년 4월쯤 대구 인근 지역에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구덩이에 넣고 총을 겨누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3384nqnc.jpg" data-org-width="1200" dmcf-mid="pFEwZw2uS4"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3384nqnc.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1951년 4월쯤 대구 인근 지역에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구덩이에 넣고 총을 겨누고 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1a99ba12e1bf37ac79bb71fa6deac678f1c8f72d05ff03cda40abb2089e2dd3b" dmcf-pid="fvXQEQGhTU" dmcf-ptype="general">보도(保導):</p> <p contents-hash="ffbfa801a6646db402b2ea79d08b6d5acbf1a5e3e64a23208c2a7b6c8e15ef04" dmcf-pid="4TZxDxHlTp" dmcf-ptype="general">‘보호(保)’하고 ‘지도(導)’한다.</p> <p contents-hash="919060e2ae49ab79848a93e6bee21d40ac7696172d6c2c616ea5fc45172b94f3" dmcf-pid="8y5MwMXSC0" dmcf-ptype="general">국가의 거짓말이 온 국토를 죄 없는 피로 물들였다.</p> <p contents-hash="18daaaa50c3fd81b61ecb87d4fb118740f282ec3ffe688ce8c3228116346dd39" dmcf-pid="6W1RrRZvh3" dmcf-ptype="general">1945년 해방 이후 한반도는 극심한 이념 갈등에 휘말렸다. 결국 1948년 남북한은 38선을 경계로 각자 다른 정부를 세우며 갈라섰다. 남한 정부는 좌익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을 한 단체에 모아 관리하려고 했다. 1949년 4월 정부에 의해 ‘국민보도연맹’이 탄생했다. 좌익에 몸담은 이들을 ‘바른길로 보호하고 이끈다’는 의미가 담긴 이름이었다.</p> <p contents-hash="f1a61c4cabe124347b92ceef40adc5ef6ff0c11b5b1ecd026da4ad14c0b700de" dmcf-pid="PTZxDxHlyF" dmcf-ptype="general">문제는 정부가 지역마다 가입 할당량을 부과하면서부터였다. 일선 경찰과 공무원들은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사람들을 무리하게 가입시켰다. 많은 이들은 해방 후 혼란기에 영문도 모르고 좌익 계열 단체에 덜컥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이었다. 좌익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본인도 모르게 보도연맹에 가입되거나, 비료나 보리쌀을 주면서 가입을 받은 사례도 많았다. 전국 보도연맹원은 30만명까지 늘어났다.</p> <p contents-hash="414160459b959a671d8aefcfeb735ea8e1e93da58b6474a87fb901be26c0b43c" dmcf-pid="Qy5MwMXSlt" dmcf-ptype="general">이듬해인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이 일제히 남침하면서 보도연맹원들의 비극도 시작됐다. 3일 만에 서울을 내준 남한은 북한의 공세에 남쪽으로 후퇴를 거듭했다. 불안에 빠진 정부는 보도연맹원들이 북한에 동조할 수 있다며 학살을 지시했다. ‘보호하고 이끌어준다’던 국가의 배신이었다. 육군 방첩대(CIC)와 헌병, 경찰, 우익 단체 청년들이 민간인을 잡아다가 청소하듯 학살했다. 목숨을 잃은 이들만 최소 6만명에서 최대 20만명으로 추산된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2b2aa07207905363f65f0edca2af9e16ac905abbb2ba24f51e4b71f23e90597a" dmcf-pid="xW1RrRZvT1"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방공호에서 발견된 민간인 학살 유해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4702mbqj.jpg" data-org-width="611" dmcf-mid="U11F6FAiSf"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4702mbqj.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충남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방공호에서 발견된 민간인 학살 유해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제공 </figcaption> </figure>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659ab8f18f369b95c0073061c224a1285324a23cb08a06546d8051ed5dbb6154" dmcf-pid="yMLYbYiPC5"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1951)>"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6133rcbb.jpg" data-org-width="858" dmcf-mid="u76QEQGhSV"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6133rcbb.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파블로 피카소의 그림 <한국에서의 학살(1951)>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d195ccacf035c3e92ea1fca50000c7831ec9bdfa2608f0ad876313de1a591aef" dmcf-pid="WRoGKGnQWZ" dmcf-ptype="general">1950년 7월의 어느 날, 경남 김해군 이북면(현 김해시 한림면)에 살던 13살 소년 최윤규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도 그 야만의 한 단면이었다. 삼거리 점방 앞에 군용트럭이 멈춰 섰다. 짐칸 위에는 민간인들이 다닥다닥 붙어 타고 있었다. 옆 마을 진영읍 등에서 끌려온 보도연맹원들이었다. 트럭을 세운 경찰들은 점방(가게)에서 소주를 가져다 마셔대기 시작했다.</p> <p contents-hash="f69dc8d656444c501cd4de6b365d12e5ebbcde0f7936083a2d8cde21b9b835e3" dmcf-pid="YegH9HLxhX" dmcf-ptype="general">“가마 있어!” 사람들이 꿈틀거리면 짐칸 옆을 지키던 경찰이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소주를 들이마신 경찰들은 다시 트럭에 시동을 걸었다. 최윤규는 몰래 트럭 뒤를 따라갔다. 경찰은 어느 골짜기에 도착한 뒤 제방 위에 민간인들을 세워 놓고 총을 쐈다. 골짜기로 떨어진 시신들을 “묻은 둥 만 둥 하고” 경찰은 떠났다. 그해 여름, 그런 학살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565468b6f3b74cd94fad89531394e7e9c6d6561aba4f4a76ab0ad075c187ab58" dmcf-pid="GdaX2XoMTH"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한국전쟁 당시 학살 위기에 처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구해 준 최대성 면장의 조카 최윤규씨(89)가 지난 6월5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7495hodc.jpg" data-org-width="1200" dmcf-mid="7zpZVZgRy2"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7495hodc.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한국전쟁 당시 학살 위기에 처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구해 준 최대성 면장의 조카 최윤규씨(89)가 지난 6월5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div contents-hash="93e63fe6e1cffb0e8776445101a40f58e003791111f3c69c2170437a8d78dc62" dmcf-pid="HJNZVZgRvG" dmcf-ptype="general"> ◆ ◆ ◆ </div> <p contents-hash="95f89e633e84dea449ee2c8f343c5517b6b3590cf9a6a88a22dc9ff013162cd4" dmcf-pid="Xij5f5aeyY" dmcf-ptype="general">최윤규의 가족은 마을 유지였다. 큰아버지인 최대성은 면장이었고, 아버지 최대홍은 정부가 조직한 우익 청년단체 대한청년단의 지역 단장을 지내고 있었다. 이북면 면서기로 시작해 해방 이후 쭉 면장을 맡아 오던 최대성은 말 그대로 “누구 집에 숟가락도 몇 개인지 다 아는” 사람이었다.</p> <p contents-hash="eeae217b0dee6bc3c34fb50369791a91aea79e7e4f667cea1705ee9d7625a110" dmcf-pid="ZnA141NdSW" dmcf-ptype="general">전쟁이 터지고 낙동강 방어선 안쪽 최후방인 김해군에서도 학살이 시작됐다. 김해군 전체에서 1200여명이 붙잡혀 약 75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 말부터 9월 중순까지는 2~3일마다 학살이 벌어졌다. 이북면에서도 100여명의 보도연맹원이 끌려갔다. 대부분은 해방 직후 ‘특별배급을 준다’는 말에 이런저런 단체에 가입했던 이들이었다. 마을 사람들 집안 사정까지 꿰고 있는 최대성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았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07ae60570299e7c2ff0a14cb5761ada3a873da7196d1d6022a11918619b4163a" dmcf-pid="5NwpxpEoyy"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최대성 면장. 유족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8850hzht.jpg" data-org-width="350" dmcf-mid="zwrjyjztv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38850hzht.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최대성 면장. 유족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6f38b85e21405a0b2cd515fa7258496e43e257dd1ac7b4c8f496aaa85486c72f" dmcf-pid="1jrUMUDgyT" dmcf-ptype="general">평소 배급품을 쌓아두던 마을 창고에 갇힌 주민들이 죽음을 기다리던 그 시간, 최대성은 집에서 동생 최대홍과 머리를 맞대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천자문을 배우러 큰아버지 집을 오가곤 했던 어린 최윤규도 두 어른이 두런거리는 소리를 들었다.</p> <p contents-hash="c517bc3b2d188f00ccfe7439d7f4d28cedc6aaf2ed5282f3102e046384681418" dmcf-pid="tAmuRuwavv" dmcf-ptype="general">다음날 최대홍은 갇힌 주민들 가운데 비교적 젊은 사람들을 대한청년단에 위장 가입시켰다. 최대홍은 그들을 학교 운동장으로 끌고 간 뒤, 군경이 들으란 듯 크게 외쳤다.</p> <p contents-hash="38705677156818e8b36f0ad28c2f0989bec49e4ee97bbc41602f2af5c8ceee56" dmcf-pid="Fcs7e7rNhS" dmcf-ptype="general">“앞으로 갓! 뒤로 갓!”</p> <p contents-hash="618c8b8dbc2ad12768f39caaf84284143a0fa8b42fc0918b7f11007a3c84462c" dmcf-pid="3kOzdzmjSl" dmcf-ptype="general">얼떨떨하게 제식훈련을 따라 하면서 젊은이들은 군경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전국적인 우익 단체 대한청년단은 다른 많은 지역에서는 민간인 학살을 벌이기도 했지만, 이북면에서는 군경의 눈을 속이고 사람을 구하는 피난처가 됐다. 애초에 김해군의 평범한 농민들에게 보도연맹과 대한청년단의 경계는 그렇게 엄격한 경계선이 아니었다. 김해군 보도연맹원 중엔 대한청년단원도 50여명이나 됐다. 어쩌다 서게 된 흐릿한 줄을 사선(死線)으로 만든 건 국가였다.</p> <p contents-hash="be73b6d1692e5c5f746976e46d4d9d486dc28f92f392a062dab0dfbc1e8ada6f" dmcf-pid="0EIqJqsASh" dmcf-ptype="general">대한청년단 행세를 하지 못한 중장년 보도연맹원들은 창고에 계속 갇혀 있었다. 이들은 어느 한밤 창고 문이 열리면서 탈출할 수 있었다. 최대성 면장과 당시 경찰지서 주임이 짜고 한 일이었다. 그렇게 이북면에서는 CIC가 직접 연행해 죽인 4명을 제외하면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p> <p contents-hash="c00668889f1e0c97ef3252bc080260f920da28ab237edc2f7c332c81f79a2fd9" dmcf-pid="pDCBiBOcTC" dmcf-ptype="general">“대단한 일이었죠. 요새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 다른 데는 전부 다 돌아가시는데.” 조카인 최윤규가 기억하는 최대성 면장은 학식이 깊고, 마을 사람들을 마음 깊이 아끼던 이였다. 주민들의 지지 속에 1958년까지 면장을 지냈고, 중학교가 없던 마을에 학교(현 한림중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1978년 별세했다. 후손과 마을 주민들은 2024년부터 추모비 건립을 추진 중이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7ff7d8a902633df88021d4a73f707ad018123cb4486f9a2676415cd83f45af2d" dmcf-pid="UwhbnbIkTI"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지난 6월5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한 공터에 건설 자재들이 놓여 있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구금된 배급창고가 있던 곳이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0262bfwo.jpg" data-org-width="1200" dmcf-mid="qvgeme5TWK"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0262bfwo.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지난 6월5일 경남 김해시 한림면 한 공터에 건설 자재들이 놓여 있다.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구금된 배급창고가 있던 곳이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div contents-hash="6926b7a2555e1f2bff0ec842a40ec5578c6b80929dbda3e5132eeb4673168818" dmcf-pid="urlKLKCEhO" dmcf-ptype="general"> ◆ ◆ ◆ </div> <p contents-hash="cd0d2d09c3fcc18afe31f9e7c5ee40c892d83584097060fb1004f71a9a2e3f48" dmcf-pid="7mS9o9hDhs" dmcf-ptype="general">전국 구석구석 배치된 경찰은 국가의 명령 한 마디에 보도연맹원들을 잡아들이는 그물망이 됐다. 그물에도 구멍이 있었다. 경찰 대다수가 명령에 따라 학살에 앞장서는 와중에도, 어떤 경찰들은 항명을 각오하고 무의미한 학살을 막았다. 상부의 지시를 무시하고 보도연맹원 480여명을 풀어 준 안종삼 당시 전남 구례경찰서장, 4·3사건의 피바람이 여전하던 제주에서 민간인 학살 명령을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며 거부한 문형순 성산포경찰서장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p> <p contents-hash="4464957bda467f7fbe89ed79629076075e4c1050dcfaf98c2346d857ed50215d" dmcf-pid="zsv2g2lwSm" dmcf-ptype="general">비교적 직책이 높은 그들과 달리, 윗선의 명령을 거부하기 어려운 일선 경찰이 상부 몰래 사람들을 살려준 일도 종종 있었다. 충북 청원군(현 청주시 편입) 출신 안만근 남이지서장이 그런 경찰이었다.</p> <p contents-hash="f17ac40b576fae6c1f0adb811a0e6b7f64c1fbc227db6c52c31efe016d643496" dmcf-pid="q6dv7vRfyr" dmcf-ptype="general">젊은 시절 안만근은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장난꾸러기 청년이었다. 가족 몰래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큰 수확 없이 돌아오고, 친척과 삿갓 장사를 했다가 망해도 봤다. 안정적인 공직을 꿈꾸게 된 그는 경찰 시험에 응시했지만 몸이 약해 두 번 낙방했다. 교도관으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경찰로 전직할 수 있었다. 청원군 남이지서장에 부임한 그는 일기와 시 쓰기를 좋아하고, 출장길에 짬을 내 문경새재를 관광하는 여유도 부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be8cabec2576c194759b70225eb2f12fcf174e5f854908397d4ba60d74e32382" dmcf-pid="BPJTzTe4hw"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1950년 10월2일 국군의 충북 수복 이후 남이지서로 돌아온 경찰들이 찍은 기념사진. 앞줄 가운데가 안만근 남이지서장. 안희찬씨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1735ivss.jpg" data-org-width="1200" dmcf-mid="B9cI3I6by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1735ivss.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1950년 10월2일 국군의 충북 수복 이후 남이지서로 돌아온 경찰들이 찍은 기념사진. 앞줄 가운데가 안만근 남이지서장. 안희찬씨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23cc68e4c8d9bfbb2cfbbf8183bd3faa88cd390e4347f63d25fbd83fc531bc8e" dmcf-pid="bQiyqyd8vD" dmcf-ptype="general">평온한 세월은 전쟁과 함께 금이 갔다. 서울과 경기도를 점령한 인민군은 충청도로 빠르게 남하했다. 7월 초 청원·청주 경찰들에게도 보도연맹원들을 죽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붙잡힌 보도연맹원 170여명 중 70여명은 청주경찰서에 끌려가 학살당했고, 남은 100여명은 남이면 양곡창고에 갇혔다.</p> <p contents-hash="92e47f4a98eee06b25175e6f79799d0b98093a403764887f9025c048ec38aa2c" dmcf-pid="KxnWBWJ6TE" dmcf-ptype="general">안만근은 창고에 구금된 이들이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란 걸 알고 있었다. 퇴각을 앞둔 어느 늦은 밤 안만근은 남들 몰래 창고 문을 열었다. 도망치는 사람들에게 양곡창고에 쌓여 있던 쌀도 나눠 줬다. 보도연맹원 탈출의 내막을 따지기엔 전황이 너무 급박했다. 청원 주민들과 경찰들은 7월12일 피난했고, 북한은 곧 충청도 전역을 점령했다.</p> <p contents-hash="a8b8649f5808701760f8d335be0e0704b4d41384af3f495cbba1d67ee77a4280" dmcf-pid="9MLYbYiPSk" dmcf-ptype="general">안만근은 다른 경찰들과 함께 전투원으로 소집됐다. 낙동강 전선에서도 전투가 가장 격렬했던 대구 달성군·칠곡군 일대에서 싸웠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고 북상하는 국군을 따라 고향에 돌아온 그를 비극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피난을 떠나지 않고 고향에 머물렀던 장남이 인민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였다. 예전에 안만근이 훈방해 준 한 잡범이 인민군에게 장남을 고발했다고 했다. 안만근은 일기에 “가슴이 답답하고 무엇이라고 말할 여지가 없다. 안타깝기 한이 없다”고 썼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fe9d7b375807dbe74c5aaa1e5b5831066b239bb072a422496ecc86c35310ca83" dmcf-pid="2RoGKGnQSc"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학살에서 구해 준 안만근 충북 청원군(현 충주시 서원구) 남이지서장의 아들인 안희찬씨(81)가 지난 8월27일 대전광역시 대덕구 자신의 사업체 앞에 서 있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3181gfzr.jpg" data-org-width="1200" dmcf-mid="b4yt8tjJTB"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3181gfzr.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한국전쟁 당시 국민보도연맹원들을 학살에서 구해 준 안만근 충북 청원군(현 충주시 서원구) 남이지서장의 아들인 안희찬씨(81)가 지난 8월27일 대전광역시 대덕구 자신의 사업체 앞에 서 있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3669cdaff9703ab5c835a19a4090b182085fd7529c7767525d824045751e691b" dmcf-pid="VegH9HLxCA" dmcf-ptype="general">하지만 선행의 보답도 그조차 모르게 돌아와 있었다. 퇴각하기 전 안만근이 양곡창고에서 구해 준 사람 중 윤용원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남이면을 점령한 인민군은 마을 치안대원으로 차출된 윤용원에게 “안만근과 그의 가족을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명령에 따라 안만근의 집을 찾아간 윤용원은 먼발치에서 안만근의 동생을 봤지만 모른 체 했다.</p> <p contents-hash="7cd7009b9843c8c515e205c1ddf4b90ea20230d2addde1e1ef0cbe4f9472957a" dmcf-pid="fdaX2XoMCj" dmcf-ptype="general">전쟁 이후 안만근은 경찰을 그만두고 시청에서 일하다가 퇴직 후 소일하며 살았다. 네 살 때부터 설거지할 줄 알았다는 손녀를 특히 아꼈다. 1996년 만 84세를 일기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p> <div contents-hash="85479229d7b7a8ad3f6f2fae8b93c54bcea23572f1aa199bbe305706698445da" dmcf-pid="4JNZVZgRhN" dmcf-ptype="general"> ◆ ◆ ◆ </div> <p contents-hash="34397f67a9c37d57f3c8f8f0ed16c60e8af26c936b59c48ee9c074bd68d75607" dmcf-pid="8ij5f5aeha" dmcf-ptype="general">보도연맹원들을 구한 이들의 이야기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짓누른 반공주의와 연좌제 때문이었다. 20년 넘게 충북에서 보도연맹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활동을 해 온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는 그 주홍글씨의 존재감을 피부로 느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막 출범했을 때 그는 지역 구석구석을 돌며 학살 피해자들을 만나 진상규명 신청서 작성을 도왔다. 800여명의 신청서를 모으면서 늘 마주치는 벽이 있었다.</p> <p contents-hash="ac090fd664ee8af9957e16efdd32166acb4b40e27339cb04406c7bb79df4e8de" dmcf-pid="672EHEKpvg" dmcf-ptype="general">“할아버지를 기껏 설득해 신청서를 쓰는데 할머니가 와서 딱 손을 막아요. 당신은 살았지만 당신 자식이나 손주들은 신원조회나 연좌제로 직장생활에 불이익을 받으면 어떡하냐고. 지금 그런 거 다 없어졌다고 아무리 설득을 해도 10명 중 5명밖에 설득이 안 돼요.”</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dc41d62adc2489798a9b98ae4874ecb27d99daf08ac74ae41d1ef9b8e9da892d" dmcf-pid="PzVDXD9Uyo"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지난 8월27일 충북 청주시 한 도서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대표는 20년 이상 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국민보도연맹 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해 왔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4629atlr.jpg" data-org-width="1200" dmcf-mid="KWyt8tjJT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4629atlr.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지난 8월27일 충북 청주시 한 도서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박 대표는 20년 이상 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국민보도연맹 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해 왔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95a2951504d9a39187d33255f879905dbb73c3719669a28d34622d8806cb7d11" dmcf-pid="QqfwZw2ulL" dmcf-ptype="general">시간은 흐른다. 연좌제의 그림자는 옅어졌지만, 그때를 증언해 줄 사람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뜬다. 박 대표가 보도연맹 학살 당사자들의 구술을 모으게 된 이유다.</p> <p contents-hash="12c5ce06ecee66b7659bf85609cdbf0fa7aef9880fb1ce1ae934bf25e84b7474" dmcf-pid="xB4r5rV7hn" dmcf-ptype="general">박 대표가 듣는 이야기 대부분은 억울하고 가슴 아픈 죽음들이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을 살려 준 의인의 흔적도 만난다. 충북 영동에서 죽음을 앞둔 40여명의 보도연맹원을 풀어 준 이섭진 용화지서장, 군경에게 술을 대접해 만취하게 한 뒤 창고에 갇힌 보도연맹원들을 도주시킨 양조장 사장 김노헌 등을 세상에 알렸다.</p> <p contents-hash="1281929824f341df2f399cecc1215102827847bb3cbd11db7147582158fdbd00" dmcf-pid="ywhbnbIkli" dmcf-ptype="general">“그때 다른 사람을 살려 준 사람들도 결국은 평범한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렇다면 아무리 전쟁이라도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은 없다’라는 게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이고 상식이었다는 말이잖아요? 그러니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이 얼마나 큰 전쟁 범죄인지도 생각할 수 있죠.”</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ec65d01cbb0702b0d25942b4d2371d3d626d6cc5ac20a50ae937711ef20006d5" dmcf-pid="WrlKLKCEWJ"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안만근 남이지서장과 아내 송도령씨. 안희찬씨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6055xugf.jpg" data-org-width="1200" dmcf-mid="9HIqJqsAWz"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9/khan/20261009070246055xugf.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안만근 남이지서장과 아내 송도령씨. 안희찬씨 제공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d50ea45fe3ca8c2cd0cf6d59320351a7cbe2a3b9aa0e13fd866bf45b2905788b" dmcf-pid="YmS9o9hDTd" dmcf-ptype="general">오늘날 한국 시민들에게도 그리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고 박 대표는 생각한다. 12·3 불법계엄 때 정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한 많은 이들에게서, 그는 1950년대 국가의 잘못된 명령을 거부한 이들의 얼굴을 겹쳐 본다. 물론 세상에는 의인만 있지는 않다.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탄압하는 폭력은 오늘날에도 반복된다.</p> <p contents-hash="c3ffb503254959ed0f471feabf004de4007fb8bd812578f11483a5946310d550" dmcf-pid="Gsv2g2lwhe" dmcf-ptype="general">“1950년대에 공권력의 낙인과 배제가 오늘날에는 사회적 차별과 혐오로 나타나고 있어요.” 박 대표가 말했다. “생각이 다르고 국적이 달라도, 결국 같이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관용으로 타인을 품어 안으면 민주주의가 발전할 텐데…. 보도연맹원들을 살려 준 사람들의 얼굴을 오늘날의 많은 시민들이 닮았으면 좋겠어요.”</p> <div contents-hash="2cdbe36a23c96d687dbdebe4e74c4bd33a251cba7eb67f23eb0f545c9ea79290" dmcf-pid="HOTVaVSrCR" dmcf-ptype="general"> <div></div> </div> <p contents-hash="5c14384ba3d20740c26b96f0bb139a1142204d488932b46f6ab23813f656f8d7" dmcf-pid="XIyfNfvmhM" dmcf-ptype="general">[셸터: 서로를 구하다]는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폭력으로부터 타인을 지켜 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시리즈 전체 기사는 링크(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436)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p> <hr class="line_divider" contents-hash="277b829ba1da702a192a8988146a2665c8f8ebcf2bf53bc4078a245ba5d695c7" dmcf-pid="Zb8m1mfzhx" dmcf-ptype="line"> <div contents-hash="2372d55243297542ff4fbb0432438943c9091e42513f2a9c4fcf0878f9c4c3f2" dmcf-pid="5K6sts4qTQ" dmcf-ptype="general"> <strong>☞ 기획·연재 | 셸터: 서로를 구하다</strong> <br>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436 </div> <hr class="line_divider" contents-hash="568e1e4e4e5031adcfc8174e73136934d6e1e7ab5e8efa75a32884a5f1cf8ab8" dmcf-pid="19POFO8ByP" dmcf-ptype="line"> <p contents-hash="c65d66d1682e84f1e833a78603f7cb96bfa44f3e8b18da68a039dcfc748ae7d6" dmcf-pid="t2QI3I6bW6" dmcf-ptype="general">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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