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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사실대로 말해!” 총 들이대도 “몰라”…아버지의 거짓말이 마을을 살렸다[쉘터: 서로를 구하다①]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3
2026-10-05 07:17:33
<div id="layerTranslateNotice" style="display:none;"></div> <div class="article_view" data-translation-body="true" data-tiara-layer="article_body" data-tiara-action-name="본문이미지확대_클릭"> <section dmcf-sid="VjTFa4TsSK"> <blockquote class="pretip_frm" contents-hash="c0adb5c40e830f3d49717dc3c06c7c3509f5905857acaab0fffa6c50cf44a084" dmcf-pid="fAy3N8yOCb" dmcf-ptype="pre"> “내가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을까?” <br> <br>한국 현대사에서 국가는 자주 괴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세계대전 이후 거대한 이념 대결의 한복판에 내던져진 작은 나라는 시대의 바람에 유독 크게 비틀거렸다. 불안한 체제는 폭력으로 사람들을 통제하려 했다. 전국을 뒤덮은 양민학살, 총칼을 동원한 강경 진압, 숱한 감금과 고문, 의문사들…. 권력은 무고한 목숨을 집어삼키며 폭주했다. <br> <br>국가의 또 다른 무기는 연좌제(連坐制)였다. 불똥은 불똥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빨갱이’를 도와주면 같은 ‘빨갱이’라고 죽였다. 쫓기는 시위대를 숨겨주면 함께 연행됐다. 수배된 선배를 숨겨줬다가 들통나면 같이 끌려가 고문당하고 수감됐다. 사람들의 사이를 끊어내야 통치가 편해진다는 것을 권력은 잘 알았다. <br> <br>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돕는 연대의 힘은 쇠심줄보다 질겼다. 어떤 이들은 부당한 국가폭력에 위협받는 타인을 조건 없이 도와줬다. 영웅도 위인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도망친 아무개 어디 갔느냐’고 총구를 들이미는 군인 앞에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백골단에 쫓기는 청년들이 가게에 뛰어 들어오면 셔터를 내려버렸다. 범인은닉죄를 무릎쓰고 수배자를 집에 들였다. 그렇게 골목길에서, 한적한 산골 마을에서, 굳게 닫힌 대문 앞에서, 국가는 연달아 패배했다. <br> <br>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은 오늘날 그들의 용기는 우리에게 어떤 희망의 실마리를 줄 수 있을까. 경향신문은 제주 4·3사건부터 보도연맹 학살, 4·19와 부마항쟁과 5·18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주요 굴곡마다 다른 사람의 피난처가 되어 준 이들을 만났다. 연대와 상생의 가치가 흔들리는 오늘, ‘인지상정(누구나 가지는 보통의 마음)’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1948년 제주 4·3사건 이야기다. </blockquote>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fbeddf1e5ebbc0f95262574f648f8e81578fd0630be3b812195cc8b992850082" dmcf-pid="4cW0j6WIlB"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제주4·3사건 당시 토벌대의 취조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몰라 구장’ 김성홍 구장의 딸 김복순씨(9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2001mckz.jpg" data-org-width="1200" dmcf-mid="UfPqwe5TWR"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2001mckz.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제주4·3사건 당시 토벌대의 취조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몰라 구장’ 김성홍 구장의 딸 김복순씨(9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3ff4a3ffa6ef71d6283cc6a96d3df11506587159f163a93ff287d5cca0034451" dmcf-pid="8kYpAPYClq" dmcf-ptype="general">눈이 팡팡 내리던 1948년의 어느 겨울날, 열세 살 소녀 김복순은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불려 나왔다. 그해 겨울에는 종종 있는 일이었다.</p> <p contents-hash="3b8b35f2e5f4404dd429aa39278ad11f01e527e8104148e97867970f54ac3133" dmcf-pid="6EGUcQGhTz" dmcf-ptype="general">졸린 눈을 천천히 뜨면 집안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을 구장(이장)인 아버지가 순경 너다섯 명과 마주앉아 있었다. 순찰 돌다 배고프다며 다짜고짜 찾아온 순경들이었다. 아버지 김성홍 구장은 김복순에게 밥상을 내오라고 시켰다. 언니들은 시집가고 오빠는 공부하러 나가서, 집안 잡일은 여섯째 김복순의 몫이었다.</p> <p contents-hash="8f394bfad8685ac1da419d8ed8400ce3c3934a29c7c1bc5fee9598f5c4408065" dmcf-pid="PdmWRzmjh7" dmcf-ptype="general">자정이 가까운 겨울밤이었다. 김복순은 한밤의 눈바람을 맞으며 텃밭으로 걸어갔다. 박토(薄土)인 제주에서도 그가 사는 신흥1구(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는 특히 척박한 편이었다. 텃밭에 쪼그려 앉아 컴컴한 흙을 손가락으로 박박 긁으면 곱대산이(풋마늘) 같은 채소 몇 개가 겨우 걸려 나왔다. 흙을 탁탁 털어 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이고, 자리젓 몇 점 올려 내놓은 밥상을 순경들은 허겁지겁 먹어치웠다.</p> <p contents-hash="fca2e32e0ea61d6abce9f1b1d2ec8bd4b867b9fd41e7a274319c85e4569226f2" dmcf-pid="QJsYeqsAWu" dmcf-ptype="general">“아이고, 밥 먹으난 살아지켜”</p> <p contents-hash="2be41fedf7fd1cb4e0f063323538b8d8b43a9fb0239e3cbcc06661306c3b8bd3" dmcf-pid="xiOGdBOcCU" dmcf-ptype="general">“고맙수다!”</p> <p contents-hash="979c18185a751f97929d2198ee653de5407b410c955ef995e353155fd346c1f2" dmcf-pid="yZ2eHw2uSp" dmcf-ptype="general">눈이 뜨인 순경들은 다시 순찰을 나갔다. 김복순은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느 때고 세 명이 와도 밥해주고, 둘이 와도 밥해주고” 했지만, 순경들은 아무리 봐도 두렵기만 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2d011145833e25af369628765a1203c3fd50dc82442818711c0d32a929a53544" dmcf-pid="W5VdXrV7l0"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제주 4·3사건 73주년을 하루 앞둔 2021년 4월2일 오전 희생자 유가족들이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3423iwrp.jpg" data-org-width="1200" dmcf-mid="77fUcQGhl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3423iwrp.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제주 4·3사건 73주년을 하루 앞둔 2021년 4월2일 오전 희생자 유가족들이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 내 행방불명인 표석을 찾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585d09e1d60249b54851d509bd29bbcd26251b4b6f7f2042c6e60c80b1632172" dmcf-pid="Y1fJZmfzy3" dmcf-ptype="general">무서운 겨울이었다. 섬 곳곳에서 사람들이 허구한 날 죽어나갔다. 해방 이후 좌우익의 이념 갈등이 폭발해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한 4·3사건의 한복판이었다. 그때를 직접 겪은 제주 노인들은 그 일을 ‘시국’이라고 부른다. 그들에게 시국이라면 그 사건뿐이다. 잊을 수도, 다른 일과 비교할 수도 없는.</p> <p contents-hash="113ea1a92f1e79392e5875aa64ac6ee61c446750616539d04b8aea879632f58f" dmcf-pid="Gt4i5s4qSF" dmcf-ptype="general">김복순이 곱대산이를 줍던 그 겨울은 시국이 가장 포악하게 폭주하던 때였다. 그해 10월17일 제주 주둔 국방경비대 9연대가 내린 소개령(疏開令: 주민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명령) 때문이었다.</p> <blockquote class="talkquote_frm" contents-hash="d0fc833f76ebdb07bc7ec9729c1906035000696e78eba3fa5e1c626e571309c1" dmcf-pid="HF8n1O8Blt" dmcf-ptype="blockquote2"> “…10월20일 이후 군 행동 종료기간 중 전도 해안선으로부터 5㎞ 이외의 지점 및 산악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를 포고함. 만일 차 포고에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그 이유여하를 불구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임.” <br> <div> - 송요찬 국방경비대 9연대장이 1948년 10월17일 발표한 포고령 </div> </blockquote> <p contents-hash="b3a19ca6a5af453096cd1f62c2f0406f478945aa5e065b3c5a6a8903b188dca7" dmcf-pid="X36LtI6bS1" dmcf-ptype="general">이듬해 봄까지 이어진 ‘초토화작전’의 시작이었다. 학살의 고삐가 풀렸다. 군경과 서북청년단 같은 우익 청년단체들이 중산간 마을을 들쑤시며 집들을 태우고 민간인을 죽였다. 똑똑해 보여서, 대답을 제대로 못 해서, 젊어서, 늙어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잘 걷지 못해서, 사라진 가족 대신에, 마구 죽였다.</p> <p contents-hash="73236da566ca21f4f36ea4f1e04c8a0b401f675938b9e2e4324331c5c1222749" dmcf-pid="Z0PoFCPKh5" dmcf-ptype="general">토벌대의 주축인 9연대 군인들이 학살에 특히 앞장섰다. 당시 미군 비밀보고서는 대전의 2연대와 임무 교대를 앞둔 9연대가 “수준 높은 작전을 펼치려는 욕망과 (여순사건을 진압한) 제2연대의 업적에 부응하려는 욕망”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떠나기 전 최대한 전과를 올리기 위해 학살에 열중했다는 의미다. 제주4·3평화재단은 추가진상조사 결과 4·3사건 희생자 1만4442명(2020년 인정 기준)의 67.2%가 초토화작전 때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사망자의 78.7%는 토벌대에게 목숨을 잃었다. 토벌대가 지나간 밤에 내려오는 ‘산 사람(남조선노동당 무장대)’도 공포의 대상이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51d704826423b7e5ea55d845751637ddefcecc0dfe1653f218d852ab0c9989e4" dmcf-pid="5uMNpSMVvZ"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제주 4·3 연구소 현장 조사반이 4·3 사건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 11구가 발견된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남서쪽 6㎞ 지점 다랑쉬굴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4759chuw.jpg" data-org-width="500" dmcf-mid="0m6dXrV7h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4759chuw.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제주 4·3 연구소 현장 조사반이 4·3 사건 희생자로 추정되는 유골 11구가 발견된 북제주군 구좌읍 세화리 남서쪽 6㎞ 지점 다랑쉬굴 내부를 조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c3ceab1d9f1fcbc8c2449b1fbc17b0e6d5ab00d7391dff274ce9613bee62faaf" dmcf-pid="17RjUvRflX" dmcf-ptype="general">김복순은 토벌대가 소에 짐을 싣는 두꺼운 끈으로 청년들의 손목을 묶어 연행해가는 모습을 봤다. 토벌대는 서귀포 천지연 근처까지 청년들을 끌고 가 차례대로 해안 절벽에 세웠다. 탕 소리가 나고, 풍덩 소리가 났다. 다시 탕 소리가 나고 풍덩 소리가 났다. 끌려간 청년들이 다 죽었다. 토벌대는 ‘쌀 한 되라도 무장대에 준 적 있는 사람은 자수하면 살려주겠다’고 속여서 30여명을 데려가기도 했다.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p> <p contents-hash="f9dac38e97b9c3e85d2e708413d38d7375ed796c6f05d7ac2c2bac8973870616" dmcf-pid="tzeAuTe4lH" dmcf-ptype="general">김복순은 윗마을 수망리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모습도 봤다. 쫓겨난 사람들은 도로변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사람들이 칼을 단 죽창으로 다른 사람을 찔러 죽였다. 밤이 되면 시커먼 한라산 어둠 속에서 무장대가 나타날까 두려웠다. 아버지의 전임 구장을 죽인 게 그들이었다. 김복순과 주민들은 돌을 주워다 성담(담벼락)을 쌓고 돌아가며 보초를 섰다. 겨울밤 추위에 이가 덜덜 떨렸다. 무서운 순경들은 오늘 밤도 밥을 얻어먹으러 올 것이었다.</p> <div contents-hash="f6a3ea7d857fed69c96e42e9406ec6e3551335cdde881ca90d24cbb97d3f37a4" dmcf-pid="Fqdc7yd8WG" dmcf-ptype="general"> ◆ ◆ ◆ </div> <p contents-hash="7104a9c84dd62c411da248e8e796bfe93b0c7a629310b583c723b98d14bb6a60" dmcf-pid="3BJkzWJ6SY" dmcf-ptype="general">김복순이 밭일을 하고 밥을 지을 때, 아버지 김성홍 구장은 밤낮으로 남원읍 경찰지서(지역 경찰 관서, 현재의 파출소)에 불려 다녔다.</p> <p contents-hash="713177e2accd699be8db02243af90f5f27d034388732250bf540431324557de2" dmcf-pid="0biEqYiPhW" dmcf-ptype="general">신흥1구 150여가구를 대표하는 구장의 가슴팍에 경찰은 총부리를 들이댔다. 경찰은 마을 사람들의 성향은 무엇인지, 도망친 사람들은 어디로 가 숨어 있는지 물었다. 아버지는 입을 열었다.</p> <p contents-hash="7817ae30b0f867f07c6a110b7389d654ca809cd5edbd742b4c43e0a11cea48cd" dmcf-pid="pKnDBGnQTy" dmcf-ptype="general">“모르쿠다.” 경찰이 무엇을 물어도 아버지는 똑같이 대답했다. 때리고 고문해도, 살살 구슬려도,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 협박해도 마찬가지였다. 실수로 뱉은 말 한마디에도 사람이 죽고 마을이 불타 없어지던 시절이었다. 마을 사람들을 지킬 수 있다면 얼마든지 일자무식 촌로가 되겠다고 아버지는 생각했을까. 그는 처리해야 할 공문도 ‘아무것도 모른다’며 내버려두곤 했다.</p> <p contents-hash="b31b9cb9393ec99893aefca2f2ddef5aa7a84a5e13c2d9c191bb0b550b3c2e51" dmcf-pid="U9LwbHLxWT" dmcf-ptype="general">초토화작전이 끝난 뒤에도 시국은 몇 년 동안 이어졌다. 아버지도 몇 번이고 경찰에 불려갔다. 그때도 아버지는 “모르켜” “모르쿠다”만 반복했다. 아버지에게는 어느새 ‘몰라 구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복순은 경찰이 그 별명을 붙였다고 기억한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f9efc5d8f6f38e72183db5ef533360f3344bbc3d7bf32ea6ddb818f15b32ea78" dmcf-pid="u2orKXoMlv"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에 ‘몰라 구장’ 김성홍 구장을 기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6109mitd.jpg" data-org-width="1200" dmcf-mid="phzVCopXC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6109mitd.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에 ‘몰라 구장’ 김성홍 구장을 기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d3474c7b991fc865eeb6d6a738e576a82cdd3c400929dbd8973dd642e462aa28" dmcf-pid="7Vgm9ZgRhS" dmcf-ptype="general">“이 하르방은 암만 죽이켄 해도 말을 안 하난, 모르켜만 하난, 몰라 구장이라고 해불자.” (이 할아버지는 아무리 죽인다고 해도 말을 안 하고 모르겠다고만 하니까, 몰라 구장이라고 해버리자.)</p> <p contents-hash="1ceb07437262851b8c372ea1a22afef1280ce7c4599c9a0accf87c55bc50b89f" dmcf-pid="zfas25aell" dmcf-ptype="general">경찰이 홧김에 붙인 그 별명을 마을 사람들은 존경을 담아 불렀다. 학식이 깊기로 유명했던 그가 정말 아무것도 모를 리 없다는 걸 마을 사람들은 알았다. 몰라 구장이 매질과 협박을 견디며 몰라 몰라, 잡아뗄 때마다 죽을 뻔했던 마을 사람의 목숨이 살았다.</p> <p contents-hash="347444cd8b7bf98c36aa6881631c05c03ffd8c5b926de4d576950998d99b15dc" dmcf-pid="qT78SN71Th" dmcf-ptype="general">학살의 광풍으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한 유지와 공직자의 이야기가 제주에서는 종종 전해 내려온다. 문형순 전 성산포경찰서장이 가장 유명하다. 4·3사건 당시 서북청년단의 위협으로부터 마을 주민 100여명을 보호하고, 한국전쟁 때는 국민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하라는 상부 지시를 ‘부당하므로 불이행’한다며 거부했다. 1949년 몰라 구장네 마을에 경찰 파견대장으로 부임한 장성순 경사도 “지난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며 많은 이들을 살렸다.</p> <p contents-hash="acf62b25baa40abbf9809a62024abb42a3d30835192033843c74f84b8676fe45" dmcf-pid="Byz6vjztlC" dmcf-ptype="general">한림면(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 살던 임씨도 그런 유지였다. 1948년 11월, 토벌대의 소개령으로 중산간 금악리 사람들이 해안가 옹포리에 내려오던 때였다. 아버지와 함께 온 23살 청년 홍병익은 유독 불안해하고 있었다. 동네 청년들과 야학 공부를 했던 그의 형은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행방불명됐다. 경찰은 형이 남로당을 따라 ‘입산’했다고 의심하며 홍병익을 압박했다. 형을 데려오지 않으면 대신 죽이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자 그는 바다 건너 작은 섬 비양도로 숨었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82bff740dfa4f4378b56209e00fd6d3b297e32eee20eca70862c64bf43ec2510" dmcf-pid="bWqPTAqFhI"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홍창부씨(6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해안가에서 4·3사건 당시 아버지 홍병익씨가 학살을 피해 숨어 지내던 비양도를 바라보고 있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7505zwpe.jpg" data-org-width="1200" dmcf-mid="uRAm9ZgRSy"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7505zwpe.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홍창부씨(6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 해안가에서 4·3사건 당시 아버지 홍병익씨가 학살을 피해 숨어 지내던 비양도를 바라보고 있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ea40bf6811980edfc50a42bcf76f61b903a65d38ab0cf86b692a751bba866b5e" dmcf-pid="KYBQycB3vO" dmcf-ptype="general">토벌대가 잠드는 밤마다 쪽배를 타고 몰래 바다를 건너와 보리밥을 얻어가던 홍병익을 임씨는 걱정했다. 난폭한 겨울 바다가 청년을 삼키기 전에 임씨는 그를 살려주겠다며 머슴으로 들여 보호했다. 경찰이 세 번이나 찾아왔지만, 임씨는 그때마다 닭을 잡아 술상을 내주며 순경을 구슬려 돌려보냈다.</p> <p contents-hash="621e0d8e4254d231d7d9c07be5381bcc2c81e93873880be00233f22f17633b31" dmcf-pid="9GbxWkb0vs" dmcf-ptype="general">임씨 같은 옹포리 유지들은 적극적으로 마을 사람들을 보호했다. 토벌대도 무장대도 마을을 쉽게 휘젓고 다니지 못했다. 척박한 바위투성이 땅에 조상 대대로 흙을 부어 기어코 밭을 만든 옹포 사람들다웠다. 옹포리는 4·3사건 희생자가 거의 없는 몇 안 되는 마을이다.</p> <div contents-hash="67b887c87a39dd59b39529d2c1ae01b1a379e752126895aff131ae14ecf76047" dmcf-pid="2HKMYEKpSm" dmcf-ptype="general"> ◆ ◆ ◆ </div> <p contents-hash="6c6e88a7d013a485f52a9b719523952e9cbc687ae5696e80efbdcca2ccc35faf" dmcf-pid="VX9RGD9Ulr" dmcf-ptype="general">마을 유지쯤 돼야만 사람을 살릴 수 있던 건 아니었다. 평범한 촌사람들이 연좌제의 공포 속에서도 다른 이들을 품는 일도 종종 일어났다.</p> <p contents-hash="5aba5193d9e7bc8d3a914c2a04443e6a4692b832b5c7c32ce73d90f48cac674f" dmcf-pid="fZ2eHw2uTw" dmcf-ptype="general">예로부터 선비가 많아 ‘예촌’이라 불리던 조용한 중산간 마을 신례1구(현 남원읍 신례1리), 자치기를 좋아하던 10살 산골 소년 정수현에게도 시국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 봄날, 학교 가는 길에 하얗게 핀 때죽나무꽃 아래를 지나며 아이들은 집에서 들은 소문을 수군거렸다. 어느 마을에 습격이 들어 난리가 났고, 누가 죽었다고….</p> <p contents-hash="557778e7fe2bff3dcf91716a4b48ef0be6d64d44b39dc33b78c19224bc2e27ed" dmcf-pid="45VdXrV7lD" dmcf-ptype="general">학교 교장 관사에 경찰관이 경비를 서러 왔다. ‘튀라’는 선생님들의 명령에 수업을 듣다가도 학교 과수원으로 도망쳐 숨었다. 어느 가을날엔 군인들이 목장에서 목초를 베던 남자 어른들을 전부 경찰서로 끌고 가 3일 동안 붙잡아두기도 했다. 그리고 겨울, 신례1구에서도 비극이 시작됐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0de7b913997f432217204ce355e7924be5a123723d782a700df421f7dd3a3031" dmcf-pid="81fJZmfzhE"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지난달 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1리사무소에서 정수현씨(왼쪽·88)와 양완호씨(97)가 4·3사건 당시 신례2리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피난처를 마련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8868dwwn.jpg" data-org-width="1200" dmcf-mid="yqIIftjJvA"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48868dwwn.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지난달 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례1리사무소에서 정수현씨(왼쪽·88)와 양완호씨(97)가 4·3사건 당시 신례2리 마을 주민들의 도움으로 피난처를 마련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c191c7be5af3db60e6b3d5ae5318c787d61ee97028b8dcc0ad54c2e64af02999" dmcf-pid="6Uxa0lx2Tk" dmcf-ptype="general">다른 마을보다 조금 늦은 1948년 12월12일 신례1구에도 소개령이 내려졌다. 사람들은 가지고 있던 보리를 전부 갈아 챙기고, 무장대가 집을 쓸 수 없게 하라는 토벌대의 명령에 초가지붕도 전부 들어냈다. 이삿짐을 꾸리는 주민들에게 죽창을 든 우익 학생단체 중학생들이 다가왔다. 학생들은 주민들 중 몇을 콕 집어 끌고 갔다. 정수현의 숙부도 대상 중 하나였는데 자리에 없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숙모를 대신 끌고 갔다.</p> <p contents-hash="2fed9e3256caf63afb3549ff8c88ceefb91aaab61965a7961fceaa574f10e9c8" dmcf-pid="PuMNpSMVyc" dmcf-ptype="general">“뭣도 모르고 덜덜 떨면서” 정수현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해안가를 향해 걸었다. 고향을 등진 길은 걸어도 걸어도 멀었다. 내려오다가 밤이 깊어져 길 옆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어느 잔디밭에서 주민들을 기다리던 토벌대는 청년들을 따로 모아 앉혔다. 토벌대는 어떤 명단을 읽어내려갔다. 불려 나온 10여명의 마을 사람들을 몽둥이로 때렸다. “참 비참한 울음소리”가 났다고, 정수현은 아직도 기억한다. 토벌대는 그들을 끌고 가 총살하거나 경찰에 넘겼다.</p> <p contents-hash="62e583c5aedc6e6571fe347242eb1dfe508afb855e0b94224a8342e4cd071912" dmcf-pid="Q7RjUvRfhA" dmcf-ptype="general">주민들은 벌벌 떨며 해안가 마을 신례2구에 도착했다. 당시 신례2구는 50여 가구가 살던 작은 마을이었다. 반면 오래된 마을인 신례1구는 200여가구에 달했다. 마을 주민보다 훨씬 많은 피난민이었지만, 신례2구 주민들은 문을 활짝 열어줬다. 집마다 여러 가족이 들어가 함께 살았다. 정수현의 가족도 할아버지 때부터 알고 지내던 집의 곳간을 빌릴 수 있었다. 외양간에도 한 가족이, 부엌에도 한 가족이, 작은방에도 한 가족이 살았다.</p> <p contents-hash="a6b85b1d1d088823d6a158486f2993ab4bc44bc4609537bba457172e87c9fe48" dmcf-pid="xzeAuTe4hj" dmcf-ptype="general">찾아갈 집 없는 이들이 맨땅에 움막을 지어 살아도 땅 주인들은 눈감아줬다. 초토화작전이 끝나고 봄이 올 때까지 두 마을의 공생은 이어졌다. “주인네가 우릴 대하는 태도가 조금도 괄시하는 게 없었어요. 그분들이 불편함이 없었겠습니까? 전혀 내색하지 않고…. 그땐 살아만 있어도 다행이었어요.” 정수현이 기억하는 그해 겨울이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3d6f8d57987fc9b2ea973d492f1494317b3de2d70b313555a68ab86a471b483b" dmcf-pid="yEGUcQGhWN"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지난달 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중산간 신례1리에서 바라본 해안가 신례2리.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50241yopm.jpg" data-org-width="1200" dmcf-mid="Y1ddXrV7hN"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50241yopm.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지난달 8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중산간 신례1리에서 바라본 해안가 신례2리.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div contents-hash="bd89c87e17192078bdf514c1ba0fcdc7d72833118ac238db062956318da366a5" dmcf-pid="WDHukxHlTa" dmcf-ptype="general"> ◆ ◆ ◆ </div> <p contents-hash="cff386a10bb64df3c92eec6d52b37c0282b40d3edff1f3a08cb233256aed5a8f" dmcf-pid="YwX7EMXSyg" dmcf-ptype="general">시국이 지나갔다. 시간은 쌓이고 쌓여 지층을 이뤘다. 4·3을 입에 올릴 수 없었던 반공의 시대도 흘러갔다. 연좌제가 사라지고, 4·3특별법이 생겼다. 수십 년 참고 참은 한(恨)들이 세상을 향해 터져 나왔다.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국가가 저지른 폭력을 사과했다. 기억은 역사가 됐다.</p> <p contents-hash="49f15fc7edab6e69c02d5dc6d42a7865a0dfc8dfcd786d0fde6345b602b9142f" dmcf-pid="GrZzDRZvCo" dmcf-ptype="general">2005년 3월26일, 신례1리 마을회관에 신례1리와 2리 어르신 40여명이 모였다. 백발의 노인이 된 정수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어린 시절 그와 가족을 받아 준 오씨 할머니에게 음식을 집어 드렸다. 얼굴만 달리한 같은 사연들이 테이블마다 술잔을 돌리고, 밥을 나누며 회포를 풀었다. 산골 소년이던 정수현은 제주에서 알아주는 수필가로 성장했다. 도의회 사무처장을 지내는 등 공직에서도 활동했지만, 틈날 때마다 수필과 시를 통해 어린 시절의 기억을 남겼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f1b19b5c3e5d367bb4bbfdca7ac1516753a3b98b551ce23c40b063871cbd0c2e" dmcf-pid="Hm5qwe5TyL"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홍창부씨(6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의 한 주택 앞에 서 있다. 이 집은 4·3사건 당시 경찰의 학살 위기에 처했던 아버지 홍병익씨를 머슴으로 들여 지켜 준 마을 유지 임씨가 살던 집이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51638blwb.jpg" data-org-width="1200" dmcf-mid="HjffhgUZSg"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51638blwb.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홍창부씨(6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의 한 주택 앞에 서 있다. 이 집은 4·3사건 당시 경찰의 학살 위기에 처했던 아버지 홍병익씨를 머슴으로 들여 지켜 준 마을 유지 임씨가 살던 집이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eec27dd6608e03135134c4dead609163ef38e12e689140b842e1045c92781194" dmcf-pid="Xs1Brd1ySn" dmcf-ptype="general">임씨 덕에 목숨을 건진 홍병익은 4·3이 끝난 뒤에도 고향 금악리로 돌아가지 않고 옹포리에 남았다. 딱딱한 현무암 바위를 깨고 쪼개어 마을을 지키는 밭담(제주 전통 돌담)을 만드는 장인이 됐다. 임씨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들 홍창부는 아버지를 품어 준 마을 이장도 지냈다. “감사한 일이죠. 잘못하면 연루될 수 있는데 그 분(임씨)도 목숨을 건 거잖아요. 총칼 앞에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용기가 필요한 시대죠.” 4·3희생자유족회 중책도 맡은 그는 틈날 때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4·3 교육 봉사를 나간다.</p> <figure class="figure_frm origin_fig" contents-hash="7d951e5a48c6374241514529a8564b5f3d54432a1fe820576a17de0e5c7ab4ca" dmcf-pid="Zfas25aeSi" dmcf-ptype="figure"> <p class="link_figure"><img alt="제주 4·3사건 당시 토벌대의 취조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몰라 구장’ 김성홍 구장의 딸 김복순씨(9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53056hori.jpg" data-org-width="1200" dmcf-mid="2xIHJbIkh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10/05/khan/20261005070153056hori.jpg" width="658"></p> <figcaption class="txt_caption default_figure"> 제주 4·3사건 당시 토벌대의 취조에도 모르쇠로 일관해 마을 사람들의 목숨을 살린 ‘몰라 구장’ 김성홍 구장의 딸 김복순씨(91)가 지난달 10일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남원읍 신흥1리 자택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figcaption> </figure> <p contents-hash="d441cedd2dcf2df0beb11384d2f2d641f922d67c14fc93a5db054cdef1b857fa" dmcf-pid="54NOV1NdhJ" dmcf-ptype="general">‘몰라 구장’ 덕에 목숨을 건진 신흥리 사람들은 시국이 지나간 뒤 김성홍 구장을 찾아와 몇 번이고 감사를 전했다. 고문 후유증에 힘들어하면서도 매일 신문을 읽을 정도로 똑똑했던 아버지는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그는 40년이 넘게 지난 올해 2월 4·3 희생자로 공식 인정됐다.</p> <p contents-hash="0130f66ca5b8d09a59e3ddbbe235c803e10dfa97434b780c023a56db5e313ed8" dmcf-pid="18jIftjJWd" dmcf-ptype="general">아버지와 함께 지켜낸 마을에서 김복순은 아흔을 넘겨 살고 있다. 젊은 날에는 “물질(해녀의 어업)도 1등, 바농질(바느질)도 1등”이었다. 시국이 끝나갈 때쯤 시작한 물질에 소질이 있었다. 금방 해녀 중 가장 높은 계급인 ‘상군’ 해녀가 됐다. 가장 깊이, 가장 오래 잠수했다가 살아 돌아올 줄 아는 해녀. 물질하면서 큰 밭도 일구고, 자녀도 키웠다.</p> <p contents-hash="cfe38d2133b51021e23036c2a745870877e1e38524142d8e5eff5e919ccb5b75" dmcf-pid="t6AC4FAiTe" dmcf-ptype="general">가끔 지역 학생들이 4·3사건 증언을 들으러 찾아왔다. 빙 둘러앉은 아이들 앞에서 김복순은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해 겨울 어두운 텃밭에서 곱대산이 캐던 열네 살의 김복순이, ‘몰라 구장’ 아버지를 도와 마을을 지키던 작은딸이, 깊고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 목소리를 낸다.</p> <p contents-hash="c65d66d1682e84f1e833a78603f7cb96bfa44f3e8b18da68a039dcfc748ae7d6" dmcf-pid="FPch83cnCR" dmcf-ptype="general">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p> </section> </div> <p class="" data-translation="true">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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