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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김종석의 그라운드] 트로피는 들었지만, 국기는 들 수 없었다…19세 러시아 선수 안드레예바 우승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8
2026-06-07 11:19:00
<strong class="media_end_summary">• 19세 안드레예바,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정상…생애 첫 메이저 우승<br>• 러시아 선수지만 대회 내내 국기 없이 중립 선수 신분으로 출전<br>• 우승 직후 관중석 러시아 국기 등장하자 보안요원이 제지<br>• 코트 위에서는 악수와 축하, 관중석에서는 전쟁 이후 스포츠의 현실<br>• 스포츠의 영광과 전쟁의 그림자가 한 시상식 안에 겹쳤다</strong><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7/0000013444_001_20260607111911944.png" alt="" /><em class="img_desc">미라 안드레예바가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다. 19세 러시아 선수인 그는 대회 내내 국기 없이 중립 선수 신분으로 출전했다. 롤랑가로스 홈페이지</em></span></div><br><br>트로피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국기는 들 수 없었습니다.<br><br>  19세 미라 안드레예바(러시아)가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정상에 올랐습니다. 안드레예바는 6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 필리프 샤트리에 코트에서 열린 결승에서 폴란드의 예선 통과자 마야 흐발린스카를 2-0(6-3, 6-2)으로 꺾었습니다.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입니다. 1992년 모니카 셀레스 이후 가장 어린 프랑스오픈 여자 단식 챔피언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러시아 여자 선수가 메이저 단식 정상에 오른 것도 2014년 마리야 샤라포바 이후 12년 만입니다.<br><br>  결과만 놓고 보면 새 여왕의 탄생입니다. 10대 챔피언, 러시아 테니스의 계승자, 콘치타 마르티네스 코치와 함께 완성한 조숙한 천재. 얼마든지 화려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우승이었습니다.<br><br>  안드레예바 자신도 이 우승을 단순한 경기 승리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상식에서 "어릴 때부터 TV로 롤랑가로스를 봤고, 이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은 큰 꿈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코치 콘치타 마르티네스와 팀, 가족에게 감사한 뒤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게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힘들 때도 나를 믿고, 매일 더 나은 사람과 선수가 되려 했고, 내 안의 많은 악마와 싸웠다"라는 취지의 말이었습니다. 10대 천재라는 기대, 첫 메이저 결승의 압박, 러시아 선수라는 복잡한 위치까지 안고 뛴 대회였습니다. 어린 챔피언의 우승 소감치고는 꽤 무거운 고백이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7/0000013444_002_20260607111912045.png" alt="" /><em class="img_desc">안드레예바는 19세 39일의 나이로 프랑스오픈 정상에 올랐다. 21세기 들어 이 대회 최연소 우승자라는 기록도 남겼다. 롤랑가로스 홈페이지</em></span></div><br><br>코트 위 장면은 평온했습니다. 마지막 포인트가 끝나자, 안드레예바는 클레이코트 위에 쓰러져 우승을 실감했고, 곧 선수 박스로 올라가 가족과 코치진을 끌어안았습니다. 흐발린스카와도 네트 앞에서 포옹하며 정상적으로 인사를 나눴습니다. 준결승에서 우크라이나의 마르타 코스튜크를 꺾을 때처럼 악수 거부나 냉랭한 장면이 두드러진 경기는 아니었습니다. 결승 상대 흐발린스카는 폴란드 선수였고, 시상식에서도 안드레예바를 향해 "놀라운 선수"라며 축하를 보냈습니다. 갈등은 선수 사이가 아니라 관중석에서 터졌습니다.<br><br>  그런데 시상식의 한 장면이 이 우승을 조금 다르게 보게 만들었습니다.<br><br>  프랑스 스포츠 전문지 레퀴프는 안드레예바가 우승한 뒤 관중석에서 러시아 팬들이 국기를 펼치려 하자 현장 보안요원이 이를 정리하도록 요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우승자는 러시아 선수였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국기는 롤랑가로스의 축하 장면 안에 오래 머물 수 없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7/0000013444_003_20260607111912283.png" alt="" /><em class="img_desc">예선 통과자로 결승 진출 돌풍을 일으킨 흐발린스카. WTA</em></span></div><br><br>그래서 장면은 더 역설적이었습니다. 흐발린스카는 "오늘 더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지만, 미라가 너무 강했다. 최선을 다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안드레예바도 흐발린스카가 예선을 거쳐 3주 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한 것을 칭찬했습니다. 코트 위에서는 상대를 존중하는 평범하고 아름다운 우승자의 언어가 흘렀습니다. 그러나 관중석에서는 러시아 국기가 접혔습니다. 선수 개인의 말은 스포츠 안에 머물렀지만, 선수의 국적은 곧바로 스포츠 밖 현실로 끌려 나왔습니다.<br><br>이 장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닙니다. 지금 국제 테니스가 러시아·벨라루스 선수들을 바라보는 복잡한 시선을 압축한 장면입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테니스계는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단체전 출전을 제한해 왔습니다. 개인 투어 출전은 허용하지만, 국기와 국가명, 국가 상징은 허용하지 않는 방식입니다. 선수 개인에게는 문을 열어 두되, 국가의 이름으로 우승하는 것은 막는 절충안입니다.<br><br>  그래서 안드레예바는 러시아 선수이지만, 대회 표기에서는 사실상 무국적 선수처럼 보였습니다. 국적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식 화면에는 국기가 없습니다. 우승자는 러시아 출신입니다. 하지만 시상식에는 러시아 국가도, 러시아 국기도 없습니다.<br><br>스포츠는 원래 국기를 좋아합니다. 올림픽은 말할 것도 없고, 그랜드슬램도 선수 이름 옆에 붙은 작은 국기 하나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듭니다. 팬들은 선수 개인을 응원하지만, 동시에 그 선수가 대표하는 나라의 자부심을 함께 소비합니다. 그런데 안드레예바의 우승은 그 익숙한 문법을 비껴갔습니다. 선수의 재능은 인정받았지만, 국가의 상징은 지워졌습니다.<br><br>  아이러니는 더 있습니다. 안드레예바는 이번 대회 4강에서 우크라이나의 마르타 코스튜크를 꺾고 결승에 올랐습니다. 코스튜크는 러시아 선수들의 침묵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온 대표적인 우크라이나 선수입니다. 그는 러시아 선수들이 전쟁에 대해 더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안드레예바와 코스튜크의 맞대결은 단순한 테니스 경기가 아니라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운 경기였습니다.<br><br>  그 경기를 지나 결승에 오른 안드레예바가 트로피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관중석의 러시아 국기는 제지됐습니다. 승리의 순간조차 정치적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7/0000013444_004_20260607111912354.jpg" alt="" /><em class="img_desc">안드레예바가 자신의 팀원들과 우승 기쁨을 나누고 있다. 롤랑가로스 페이스북</em></span></div><br><br>물론 안드레예바 개인에게 이 모든 짐을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그는 2007년생입니다.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됐을 때 불과 10대 중반이었습니다. 어린 선수에게 전쟁과 국가, 정치적 입장을 모두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가혹할 수 있습니다. 그는 라켓을 들고 코트에 섰고, 그 안에서 최고의 경기를 했습니다. 그 사실은 존중받아야 합니다.<br><br>안드레예바가 전쟁의 책임을 진 선수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의 우승이 전쟁 이후 국제 스포츠가 만든 중립의 무대 위에서 이뤄졌다는 사실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바로 그사이, 선수 개인의 영광과 국가 상징의 부재가 불편하게 겹쳤습니다.<br><br>  하지만 동시에 지금의 테니스가 처한 현실도 외면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선수들에게 러시아 국기는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닙니다. 전쟁과 가족, 폭격과 피난, 잃어버린 일상의 상징입니다. 코트 위 악수 거부가 계속되고, 기자회견장에서 전쟁 질문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br><br><div style="text-align:center"><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481/2026/06/07/0000013444_005_20260607111912433.png" alt="" /><em class="img_desc">선수 시절 러시아 국기를 들어 보이는 마리야 샤라포바. 안드레예바는 2014년 샤라포바 이후 러시아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단식 타이틀을 안았다.</em></span></div><br><br>다리아 카사트키나의 사례는 이 논쟁을 더 선명하게 만듭니다. 러시아 출신 카사트키나는 전쟁 반대 견해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후 호주로 국적을 바꿨습니다. 그는 국기를 되찾은 선수입니다. 반대로 안드레예바는 국적을 바꾸지 않았고, 중립 선수로 우승했습니다. 한 선수는 견해를 밝히고 국기를 바꿨고, 다른 선수는 말을 아끼며 국기 없이 정상에 섰습니다.<br><br>어느 쪽이 옳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2026년 롤랑가로스 여자 단식 시상식은 단순한 스포츠 축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천재의 탄생이 있었고, 예선 통과자의 동화가 있었고, 동시에 전쟁 이후 국제 스포츠가 만들어 낸 불편한 중립의 풍경이 있었습니다.<br><br>  코트 위에서는 짧은 축하와 위로가 있었습니다. 상대에 대한 예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관중석의 국기 하나가 그 평온한 시상식을 다시 전쟁 이후의 현실로 끌고 갔습니다.<br><br>국기는 작은 천 조각입니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국기는 선수의 이름 옆에 붙는 가장 강한 상징입니다. 그 국기가 사라졌을 때, 우리는 오히려 그 국기의 무게를 더 크게 느끼게 됩니다.<br><br>안드레예바는 트로피를 들었습니다. 그 장면은 분명 아름다웠습니다. 19세 선수가 세계 최고의 클레이코트에서 자기 시대의 시작을 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시상식은 완전히 환하게 빛나지만은 않았습니다. 관중석에서 펼쳐지려던 러시아 국기가 접히는 순간, 롤랑가로스의 축제는 현실 세계와 다시 연결됐습니다.<br><br>  그래서 안드레예바의 첫 메이저 우승은 오래 기억될지 모릅니다. 단지 어린 챔피언의 탄생이라서가 아닙니다. 트로피는 들었지만, 국기는 들 수 없었던 시대의 우승이었기 때문입니다.<br><br>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br><br>[기사제보 tennis@tennis.co.kr]<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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