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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절망은 짧고 도전은 길다… 지도자의 길 나선 ‘평창 영웅’ [마이 라이프]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10
2026-05-12 21:23:00
<b><b>한국 최초 동계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br><br>스물다섯에 사고로 잃은 두 다리<br>자괴감·두려움에 3년간 골방서 은둔<br>“왜 살렸느냐고 어머니 향해 원망도”<br>심장 깨운 휠체어 농구로 ‘희망의 빛’<br>“아이들 보며 다시 시작해보자 생각”<br><br>운명적으로 만난 노르딕스키<br>서른다섯 나이에 실업팀 소속 생활<br>타고난 체력·능력으로 잠재력 폭발<br>부족한 장비 맞춤형으로 직접 개조<br>아내의 따뜻한 조언으로 평창서 첫 金<br><br>이젠 후배들의 든든한 등대로<br>제자 김윤지 도약 지켜보며 은퇴 결심<br>장비 노하우부터 실패담까지 후배 사랑<br>“장애가 있어도 도전하면 살만한 세상”<br>꿈나무 발굴 ‘제2 신의현’ 탄생에 매진</b><br></b><br>스물다섯, 한창 꿈을 펼쳐야 할 청년의 두 다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절망감 속에서 그는 3년 동안 세상을 외면하고 골방 속에 파묻혔다. 하지만 그는 다시 세상과 마주하기로 했고 멈춰 있던 것만 같던 심장은 차가운 설원에서 다시 뜨겁게 뛰었다.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에서 대한민국 패럴림픽 역사상 첫 금메달이라는 기적을 쏘아 올렸다. 바로 ‘평창 영웅’ 신의현(46·BDH파라스)의 이야기다. 이제 그가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20년간 가슴에 달았던 태극마크를 내려놓고 후배들을 위한 지도자로 나선다. 새 출발을 앞둔 신의현을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장애인이 되어서도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모릅니다. 도전한다면 살아볼 만한 세상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br> <br> ◆공주 밤골 청년, 두 다리를 잃다<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5/12/20260512519227_20260512212306488.jpg" alt="" /></span> </td></tr><tr><td>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절단하는 고통을 이겨내고 노르딕스키에서 한국 패럴림픽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리스트가 된 ‘평창 영웅’ 신의현이 국가대표를 은퇴하고 지도자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 신의현이 지난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하기 앞서 포즈를 취한 모습. 신의현은 일상생활에는 의족을 착용한다. 이제원 선임기자 </td></tr></tbody></table> 신의현은 1980년 충청남도 공주 밤골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그는 자연을 벗 삼아 산을 뛰어다니고 부모님의 농사를 도우며 자란 소년이었다. 이런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근력과 체력을 길렀고 군 복무도 특공대원으로 차출될 정도로 건장했다. 제대 후에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종이 공장에서 1년 동안 지게차 운전을 하며 “대학만 졸업하면 열심히 돈 벌겠다”며 멋진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br> <br> 그러나 운명은 가혹했다. 대학 졸업식을 앞둔 2005년 2월 트럭을 몰고 가던 중 마주 오던 차와 정면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후 4∼5일간 의식이 없었고 깨어나 보니 두 다리가 사라진 상황이었다. “의사가 두 다리를 절단해도 살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절단 수술이라도 받자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두 다리를 내주고 목숨을 건졌지만 신의현은 어머니를 향해 “죽게 놔두지 왜 나를 살렸느냐고 가슴에 비수를 꽂는 원망도 많이 했지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br> <br>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는 자괴감과 누군가의 짐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그는 3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술과 담배에 의지해 살았다.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2007년 베트남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두 아이를 낳았지만 이것이 신의현에게는 오히려 더 큰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이대로 한 5년, 길어야 10년만 지나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br> <br> ◆운동이라는 한 줄기 희망의 빛<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5/12/20260512519228_20260512212306494.jpg" alt="" /></span></td></tr></tbody></table> 끝이 보이지 않던 절망에 빠져 있던 그에게 한 줄기 빛이 찾아온다. 2009년 어느 날 동네 형으로 알고 지낸 윤정문(당시 휠체어농구 국가대표)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는 신의현에게 함께 휠체어 농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가족을 위해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그해 11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와 코트에 들어섰다.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빠를 잘못 만나 불쌍하다.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뭐라도 다시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br> <br> 오랜 방황으로 체력은 바닥이었지만 운동으로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에 신의현은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함께하던 동료들이 국가대표가 되더라고요. ‘나도 저 친구만큼은 할 수 있겠다’라는 욕심이 생겼습니다.”<br> <br> 다만 휠체어 농구는 신체 조건상 국가대표가 되기에 불리하다는 생각에 2012년 파라아이스하키, 2014년 핸드사이클 등 다양한 장애인 종목을 섭렵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었죠. 장애인시설에서 일하며 받는 월급 150만원과 국가에서 나오는 연금 정도가 수입의 전부였어요. 아내는 아이들 돌보느라 일을 못 했고 부모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br> <br> 어려운 살림에도 900만원에 달하는 핸드사이클 장비를 사고 주말마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성남의 아이스링크로 운동하러 다녔지만 힘든 줄 몰랐다. “운동을 시작하며 다시 웃음을 찾은 아들의 모습에 어머니와 아내는 그 누구보다 기뻐했습니다.”<br> <br> ◆노르딕스키와 운명적인 만남<br>  <br> <table class="nbd_table"><tbody><tr><td>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2/2026/05/12/20260512519226_20260512212306496.jpg" alt="" /></span></td></tr></tbody></table> 국가대표 선수를 향해 매진하던 신의현은 2015년 인생을 바꿀 또 한번의 중대한 만남을 갖게 된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이었던 정진완 현 대한장애인체육회장을 만난 것이다. 정 회장은 노르딕스키 선수로 평창 패럴림픽에 출전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신의현에게 권유했다.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노르딕스키는 크게 눈밭을 달리는 크로스컨트리와 여기에 사격이 결합한 바이애슬론 종목으로 나뉜다. 당시 한국 장애인 중에는 이 종목을 제대로 하는 선수가 없는 상황이었다.<br> <br>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실업팀을 창단해 주신다면 해보겠다고 조건을 내걸었죠. 사실 안 될 거라는 생각에 질러본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키다리 아저씨가 등장한다. 대한장애인노르딕스키협회 회장을 맡은 창성건설 배동현 부회장이 실업팀 창단을 흔쾌히 수락하며 결국 그는 스키 폴대를 잡게 됐다.<br> <br> 당시 서른다섯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소속팀이 생겨 안정적인 환경이 마련되자, 신의현의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타고난 체력, 휠체어 농구로 기른 방향 전환 능력, 핸드사이클로 다져진 압도적인 심폐지구력이 노르딕스키라는 종목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br> <br> 물론 초창기 훈련 환경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2015년 처음 훈련할 때는 “평창의 스키 점프대 운동장에 고무줄을 연결해 끊어질 때까지 당기며 훈련했죠. 웨이트장이 없어 운동장 옆의 무거운 돌을 들며 근력을 키웠죠. 다음 해 제대로 된 훈련시설이 만들어지기 전 이야기지만요”라며 웃는다. 이런 그에게 2016년 12월 러시아에서 열린 첫 월드컵 대회 출전은 큰 자극제가 됐다. “당시 너무 여리여리해 보이던 러시아 선수가 지나가기에 ‘우리가 저 선수 정도는 이기겠다’며 농담을 했었는데 나중에 그 선수가 1등을 하더군요. 함께 출전한 후배가 꼴찌를 했고 내가 꼴찌에서 두 번째였죠.”<br> <br> 이렇게 자신의 한계를 절감한 신의현은 “평창 패럴림픽까지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해보자”고 굳게 다짐하며 포기 대신 분석을 택했다. 상위권 외국 선수들의 장비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몰래 사진을 찍고 줄자로 장비의 길이를 재며 연구를 거듭했다. 척수 장애인과 달리 자신과 같은 절단 장애인은 허리 힘이 강하다는 점에 착안해 체중이 밑으로 쏠리도록 의자 각도를 반대로 조절하는 등 자신만의 맞춤형 장비를 만들어갔다. 이러자 월드컵에서 메달을 목에 걸기 시작했다.<br> <br> ◆‘평창 영웅’으로 거듭나다<br> <br> 2018 평창 패럴림픽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한국 선수단에게는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개최국으로서 금메달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가능성이 컸던 신의현에게 기대가 쏠렸고 부담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첫 종목이었던 바이애슬론에서는 너무 잘해야겠다는 생각에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면서 사격이 흔들려 메달을 못 땄어요. 이후 크로스컨트리 좌식 15㎞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냈지만 아쉬움이 컸었죠.” 하지만 대회 도중 만난 아내의 “메달 못 따도 되니까 편하게 하라”는 따뜻한 말이 그의 긴장을 한순간에 녹여주었다.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는 생각을 그때 했습니다.”<br> <br> 그리고 나선 평창 대회 마지막 경기인 크로스컨트리 좌식 7.5㎞에는 비장한 결의만 마음에 품고 몸의 긴장은 내려놓자 레이스에 속도가 붙었다. “트랙을 돌 때 코치가 ‘5초 차이 난다’고 해 그만큼 뒤처져 있는 줄 알고 더욱 이를 악물고 스키 폴대를 밀어죠. 나중에 알고 보니 5초 앞서 있다는 얘기였어요”라며 옅은 미소로 그때를 회상했다. 이렇게 그는 대한민국 동계패럴림픽 참가 역사상 26년 만에 탄생한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며 ‘평창 영웅’이라는 칭호를 얻게 됐다.<br> <br> ◆선배의 길을 넘어 지도자의 길로<br> <br> 평창 대회 이후에도 신의현은 국가대표로 활약하며 자신의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패럴림픽에서 자신을 뛰어넘는 든든한 후배를 만났다. 바로 이 대회 노르딕스키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3개를 목에 건 김윤지(20)다. 김윤지는 메달을 목에 걸 때마다 “의현 삼촌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할 만큼 신의현을 자신의 멘토로 여기고 있다.<br> <br> “윤지 선수가 중학교 3학년일 때 처음 봤는데, 체격은 작아도 이를 악물고 타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신인 선수들은 자신에게 맞는 장비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제가 과거에 장비 문제로 숱하게 고생하고 업체들과 싸워가며 얻은 노하우로, 윤지 선수 체형에 딱 맞게 세팅해 주었습니다.”<br> <br> 여기에 실질적인 조언도 잊지 않았다. 김윤지가 첫날 바이애슬론 경기에서 사격 실수로 4위에 머물렀을 때 신의현은 다가갔다. “부담 갖지 말고 몸에 힘을 빼야 한다”며 자신의 평창 시절 실패담과 교훈을 전수했고 이후 김윤지는 메달을 쓸어담았다.<br> <br> 자신의 메달만큼이나 후배의 성장에 크게 환호했던 신의현은 앞으로도 이제 국가대표는 은퇴하고 지도자로서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하겠다는 포부를 다지고 있다. 이제 그의 다음 목표는 또 다른 김윤지를 발굴하는 것이다.<br> <br> “아직도 한국 사회는 장애인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쉽지 않습니다. 이들이 밖으로 나올 디딤돌로 스포츠만 한 것이 없습니다”라고 운을 뗀 신의현은 “북미 등 해외에 나가보면 장애인을 위한 화장실이나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지만, 그렇다고 장애인을 특별하게 바라보거나 유별나게 대하지 않습니다. 동등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휠체어를 타고도 타인의 도움 없이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이 더 크게 와 닿습니다”라고 말한다.<br> <br> 장애인 스포츠가 단순한 재활을 넘어 장애인 스포츠와 동등하게 존중받는 환경을 바란다는 그의 소망이 녹아 있는 말이다.<br>  <br> <div class="yjColorBox" style="padding-bottom: 10px; padding-top: 10px; padding-left: 10px; padding-right: 10px; background-color: #eff5ff"> <strong>2018 평창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신의현은…</strong><br> ●1980년 충남 공주생·한국영상대학교 학사 ●2005년 교통사고로 하지 절단 ●2015년 장애인노르딕스키 입문 ●2018년 평창 동계패럴림픽 한국 선수 최초 금메달 ●2022년 베이징 동계패럴림픽 출전 ●2023년 대한민국체육상 장애인경기상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패럴림픽 출전 ●2026년 국가대표 은퇴 선언<br> </div><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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