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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뉴스]‘잔인한 중계’가 ‘냉정한 경쟁’을 만날 때 [김양희의 스포츠 읽기]
온카뱅크관리자
조회:
12
2026-02-04 17:28:00
<span class="end_photo_org"><img src="https://imgnews.pstatic.net/image/028/2026/02/04/0002789946_001_20260204173213149.jpg" alt="" /><em class="img_desc">2018 평창겨울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딴 뒤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보름. 팀 추월 경기 때 생긴 왕따 논란으로 김보름은 힘든 나날을 보내다가 이 경기에 나섰다. 연합뉴스</em></span><br>스포츠는 때로 잔인하다. 하지만 그 잔인함이 경기장이 아닌 중계석에서 시작될 때,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한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이 그랬다.<br><br>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 준준결승에 한국은 김보름, 박지우, 노선영이 팀을 이뤄서 참가했다.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김보름, 박지우와 노선영의 거리 차이는 상당했다. 이때 에스비에스(SBS) 중계진은 “최악의 장면”, “이런 장면이 나와서는 안 된다”(이상 배성재 캐스터), “온 국민이 다 보는데 선배로서 안타깝다”(제갈성렬 해설위원) 등의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팩트만을 전달해야 할 중계석이 앞장서서 분노의 불씨를 지핀 셈이다. 이후 다른 팀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장면이 나왔으나 논란은 전혀 없었다. 작전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br><br>여론 재판을 당한 김보름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팀 에이스로 가장 앞에 서서 공기의 저항을 받으며 스케이트를 탔지만 돌아온 건 ‘왕따 가해자’라는 손가락질이었다. 훗날 법원과 문체부 조사를 통해 ‘왕따 주행’이 사실이 아니었음이 밝혀졌으나 이미 김보름의 가슴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피멍이 든 뒤였다. 김보름은 한동안 공황장애 등의 정신적 고통을 당했다.<br><br>겨울스포츠 선수는 아니지만 강백호(한화 이글스)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2020 도쿄올림픽(2021년 개최)에 야구 국가대표로 참가했는데 동메달 결정전에서 더그아웃에서 보인 태도가 논란이 됐다. 8회 역전을 당했는데 강백호가 더그아웃에서 껌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장면이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박찬호 한국방송(KBS) 해설위원은 “저런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라고 질책했다. 강백호는 이후 “그날 긴장을 너무 해서 껌을 회당 두 개씩 합쳐가며 씹고 있었고 8회 때는 망연자실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박찬호 해설위원의 말 한마디로 강백호는 ‘팀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껌만 씹는 선수’로 이미 낙인 찍혀져 있었다. 전문가의 권위를 입은 감정 섞인 한마디가 선수를 베는 예리한 칼날이 된 순간이었다.<br><br>주관적 해설로 인한 피해는 국외에도 있었다. 도쿄올림픽 때 미국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가 트위스티즈(Twisties·공중에서 방향 감각을 잃는 증상)로 단체전에 기권하자 일부 보수적인 매체와 해설가들은 바일스의 상태를 부상이 아닌 정신적 나약함으로 규정하며 공격적인 해설을 쏟아냈다. “팀을 버리고 간 것” 같은 막말도 했다. 당시 해설진 중 상당수는 체조 선수들이 겪는 트위스티즈 증상이 얼마나 위험한지 설명하기보다 바일스의 표정이나 태도를 분석하는 데 치중했다.<br><br>‘멘탈 문제로 경기를 망친 실패자’라는 프레임이 생기면서 소셜미디어(SNS)에는 ‘애국심 부족’, ‘나약한 Z세대’ 같은 바일스를 향한 무분별한 공격이 지속됐다. 이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한 해설가가 바일스가 겪는 심리적 압박과 트위스티즈 증상에 의한 안전 문제를 설명해주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일본에서도 체조 중계 때 해설자가 선수의 기술적 측면보다 ‘표정’, ‘멘탈’, ‘태도’ 등을 언급하며 주관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되면서 일본체조협회가 직접 나서서 경기 내용과 무관한 사생활이나 표정, 감정 상태를 해설,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br><br>해설자의 시원시원한 호통을 ‘사이다’라고 부르며 환호하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원함 뒤에 누군가의 인생이 무너지고 있다면 그게 과연 스포츠의 묘미라고 할 수 있을까. 올림픽 등 국제무대에서 패할 때마다 반복되는 정신력 타령이나 준비 부족 같은 섣부른 단정들 역시 마찬가지다. ‘전문가’라는 이름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방송 중계진의 ‘입’은 단순 상황 전달을 넘어 시청자가 선수를 바라보는 프레임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된다.<br><br>이제 겨울올림픽의 시간이 다가온다. 누군가는 승리할 것이고, 누군가는 패배할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은 제이티비시(JTBC)와 네이버를 통해 고스란히 생중계될 것이다. 중계진의 가벼운 언어가 선수들이 몇 년간 흘러온 땀방울을 단 몇 초 만에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는 무례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br><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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