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궁’과 ‘견우와 선녀’의 공통점,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얼마 전 종영한 SBS <귀궁>과 최근 상승세인 tvN <견우와 선녀>. 두 드라마는 닮은 구석이 많다. 일단 주인공이 무당이라는 점, 남자 주인공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이른바 '구원 서사'라는 점, 그리고 남자 주인공에게 빙의가 일어난다는 설정까지. 무당이 주인공이라니, 처음엔 마뜩잖았다. 혼돈의 시절을 겪으며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필 이 시점에, 이 시국에 무당 이야기인가 싶었다. 귀신 나오는 드라마는 조마조마한 긴장감 때문에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그런데 <귀궁>도 <견우와 선녀>도 귀신이 등장하기는 하나 그다지 무섭지는 않다. 심지어 어떤 귀신은 정겹기까지 하다. 추영우가 맡은 '배견우'에게 '봉수'라는 엄청난 악귀가 빙의되는데, 추영우가 그걸 너무나 잘 소화해서 오히려 '봉수'가 더 자주 나와 주길 바랄 지경이다.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반가운 악귀라니.
본래 우리나라 귀신은 서양 오컬트물의 악령들과는 달리 사람에게 아무 이유 없이 해를 가하진 않는다. 대부분 한을 풀어달라고 하소연을 하러 나타나는 존재들이지 않나. 그래서 귀신을 달래서 천도시키는 것이 무당의 주된 역할이라고 한다. 사실 무속은 예로부터 우리 삶 깊숙이 뿌리내려 있었지만,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 이후 서구 문물의 유입, 그리고 '새마을 운동'의 일환이었던 미신타파 운동 등을 거치며 과도한 억압을 받아 왔다. 그러다 보니 오해도 많았고 그 틈을 타 무속을 가장한 사기꾼, 무분별한 무속인의 난립이 무속의 본질을 훼손하기도 했다. <견우와 선녀> 속 추자현이 연기한 '염화'는 그런 일그러진 무당의 전형이다. 너무 많은 악행으로 인해 몸주신이 떠난 모양인데 그래서인지 악귀를 몸주신으로 모시겠다고 필사적이다. 신빨이 떨어진 무당이기에 등장할 때마다 섬뜩하긴 해도 무서울 건 없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이 작품에서도 무당은 '헌트릭스'의 시초로 그려진다. 굿을 통해 한을 풀어주는 존재로 노래하고 춤추는 굿판은 마을 사람들과 교감하는 예술이자 의식이었다. 그리고 이 굿판은 K팝 아이돌의 무대로 이어지며 새롭게 해석된다. 팬덤의 에너지, 그 강한 유대감이 세상을 지키는 힘이 되는 것이다. 집단의 원대한 염원을 '헌트릭스'가 이끌어내고, 그 폭발적인 힘으로 위기를 물리친다는 서사. 우리는 이미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그와 같은 집단적 에너지를 경험한 바 있지 않은가.
무당은 예전부터 드라마에 감초처럼 간간이 등장해왔다. 특히 김수현 작가나 임성한 작가의 작품에서는 거의 매번이다시피 나왔고, 무당이 주인공인 드라마도 있었다. 2004년작 MBC <왕꽃 선녀님>. 이다해가 신병으로 인해 무당이 되는 우여곡절을 그렸지만 예술적인 굿판이나 소명의식과는 거리가 있는 구성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소명을 지닌 직업인으로서 무당이 드라마의 중심에 서고 있다. <귀궁>의 '여리'(김지연), <견우와 선녀>의 '천지 선녀' 성아(조이현), 그리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헌트릭스'. 정말 세상 많이 달라졌다.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 고 김금화 만신의 책 제목이다. 이보다 무속의 본질을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억울한 사람의 한을 풀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그 마음을 보듬는 것.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함께 한다는 유대감이지 싶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tvN, 넷플릭스,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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