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차례 출석·5년 재판…19개 혐의 최종 무죄 확정
이재용, 등기이사 복귀 주목…리더십 진검승부 시작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월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경영권 불법 승계'의혹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위반등 항소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지금 삼성에 1등 품목이 있느냐."
사내외에서 쏟아지는 이 물음은 단순 도발이 아니다. 반도체·TV·프리미엄 스마트폰까지 세계 1위를 휩쓸던 삼성전자가 어느새 "1등이 없다"는 자성에 직면했다. 한때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이 남긴 "삼성은 모든 분야에서 1등이어야 한다"는 철학은 2025년 현재 시험대에 올라 있다.
그리고 7월 17일, 그 반전의 단초가 생겼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년에 가까운 사법 리스크를 끝냈다. 대법원이 '불법 승계'로 불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 관련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하면서 삼성은 마침내 이 긴 그림자에서 벗어났다.
"은폐 아니다"…항소심 판단 그대로 인용
이날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자본시장법·업무상 배임·외감법 위반 등 총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 대해 원심의 무죄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지난 2020년 9월 기소 이후 4년 10개월, 110차례 넘는 공판과 300명에 대한 소환조사, 압수수색 37회, 2270만건 디지털 자료 분석, 220여건 증거 제출 등 총동원된 수사였지만 끝내 유죄는 입증되지 않았다.
이번 판결은 지난 2월 3일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내용이 그대로 인정됐다. 당시 서울고법 형사13부(백강진·김선희·이인수 부장판사)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입증되지 않았다"며 이 회장을 비롯한 전·현직 임직원 13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과 시점,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지배력 판단 등을 두고 "공시 내용이 다소 미흡하더라도 은폐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회계처리의 고의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당시부터 법조계 내에선 "상고심은 법리 판단에 집중되므로 뒤집힐 가능성은 낮다"고 내다봤다.
이재용 회장 혐의 쟁점별 판단./그래픽=비즈워치
이 회장은 1심 96회, 2심 6회를 포함해 102차례 법정에 직접 출석했다. 대통령 국빈 방한 시 경제사절단 참여 등 불출석이 허가된 11회를 제외하면 사실상 모든 재판에 참석했다. 그는 재판 과정서 "합병은 두 회사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을 뿐, 개인 이익을 취하거나 투자자를 속일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최후진술한 바 있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오늘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통해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5년에 걸친 충실한 심리를 통해 현명하게 판단해 주신 법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국정농단 사건 이후 무보수 경영을 이어온 그는 이번 판결로 '경영 정상화'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향후 등기이사 복귀와 유급 전환, 글로벌 경영 외교 등 책임 경영 체제를 가시화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내부에서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서주기를 바라는 목소리가 많다"고 밝히기도 했다.
큰 고비 넘겼다…"리더십 증명은 이제부터"
현재 삼성이 마주한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는 후발주자인 SK하이닉스가 이미 엔비디아에 제품을 납품하며 주도권을 쥐었다.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까지 납품에 성공하면서 삼성은 '3위'로 밀려났다는 내부 위기감이 팽배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해 GTC(엔비디아 연례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찾아 HBM3E 12단 웨이퍼에 친필 서명을 남겼지만, 삼성의 HBM3E는 아직 엔비디아로부터 공식 검증을 받지 못한 상태다. 실제 납품도 이뤄지지 않았다.
AI 반도체·로봇·헬스케어 등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된 분야에서의 M&A 역시 속도감이 부족하다. 소니오·마시모·레인보우로보틱스 등 6개사를 인수하며 '뉴삼성' 구상을 외쳤지만, 시장은 "이제 하만급의 초대형 '빅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과거 이 회장이 직접 주도했던 9조원 규모의 하만 인수 같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삼성전자 최근 10년간 M&A 등 추이./그래픽=비즈워치
파운드리 분야에서는 대만 TSMC와의 점유율 격차가 한때 17~19%까지 좁혀졌지만, 최근 다시 60%까지 벌어졌다는 평가다. 프리미엄 스마트폰·가전 시장에서도 중국 업체들의 공세가 거세다. 이 회장이 풀어야 할 '경영 재건'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일본·중국 출장을 시작으로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미국 아이다호에서 열린 '선밸리 콘퍼런스'에도 참석했다. 오픈AI 샘 올트먼, 애플 팀 쿡, 메타 마크 저커버그 등과 교류하며 경영 외교 무대에도 다시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10년 만에 족쇄가 풀린 지금부터가 이재용 회장 진짜 리더십의 시험대"라며 "삼성 반도체의 위상 회복과 '1등 DNA' 복원이 그의 손에 달렸다"고 말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