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원초적 질문
李 또다른 카드 ‘자사주 소각’
속도 붙는 증시 부양정책
국회 통과한 상법 개정안
자사주 소각 의무화 추진
매입 후 소각하지 않는 기업
취득 후 1년 내 소각 의무화

이재명 정부가 국내 증시 활성화 방안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자사주 소각 의무화다. 기업이 주가 안정, 주주가치 제고 등을 이유로 사들인 자사주를 주주가 아닌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데 사용하는 고질적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거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새 정부의 공약인 '코스피 5000' 실현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

정부가 국내 증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제정에 나설 전망이다.[사진｜뉴시스]

한국 증시의 고질병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한 첫 단추가 끼워졌다. 지난 3일 주주의 권익을 크게 강화한 상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이 통 과하면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총수와 최대주주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했다.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는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의 의결권은 합산 3%로 제한된다. 여기에 사외이사를 독립이사로 전환하고 전자 주주총회를 의무화하는 내용까지 담겼다.

[※참고: 상법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한 지 12일 만인 지난 15일 이재명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확대는 법이 제정되면 곧바로 시행되고, 강화한 3%룰은 공포 1년 뒤 적용된다.]

■ 새 정부 주가 부양 정책 = 상법 개정안의 통과를 두고 시장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서막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낙관적 전망은 아니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한 이후 국내 증시는 상승가도를 질주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3일 전 거래일 대비 1.34% 상승하며 단숨에 3110포인트를 돌파했다.

4일 하락세를 기록하며 잠시 주춤하긴 했지만 오름세는 이어졌다. 지난 14일 3202.03포인트를 기록하며 3200포인트 시대를 열어젖히기도 했다. 코스피지수가 종가 기준 3200포인트를 넘어선 건 2021년 9월 6일(3203.33포인트) 이후 3년 10개월 만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한국시간) 새벽 1시 한국에 25%의 관세 서한을 발송하면서 관세 우려가 커졌지만 국내 증시의 상승세를 막지는 못했다. 미국이 12일 EU(유럽연합)와 멕시코에 각각 30%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을 때에도 지수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코스피지수는 현재 3200포인트대 수준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코스피지수의 상승세가 계속되는 이유는 이재명 정부가 만지작거리고 있는 또다른 증시 부양 카드 덕이다. 그중 하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9월 열리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관련법도 준비됐다. 지난 9일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에 따르면 국내 상장사는 취득한 자사주를 1년 이내에 소각해야 한다.

■ 자사주의 통념 = 그렇다면 지금껏 기업의 자율에 맡겼던 자사주 소각을 법으로 의무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대표적인 주주가치 제고 방법으로 꼽힌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장에 유통되는 기업의 주식 수가 줄어 주가 상승의 디딤돌이 마련된다.

다만, 여기엔 한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다. 기업이 사들인 자사주를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으면 주식 수는 줄지 않는다. 되레 이는 기업이 자사주를 맘대로 활용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자사주를 우호세력에 넘기 곳이 적지 않아서다.

임직원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자사주를 활용하는 기업도 숱하다. 매입한 자사주를 주주의 이익보다는 기업의 현금창구로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7월 15일까지 '자사주를 처분했다'고 공시한 상장사는 288곳(정정 포함)이었다.

이중 임직원의 성과급을 지급하기 위해 자사주 처분을 공시한 상장사는 69곳(23.9%)에 달했다. 자사주 처분 목적을 주주가치 제고라고 밝힌 곳은 11곳(3.8%)에 불과했다. 이는 주가엔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시장에서 처분하면 자사주를 매입하는 것과 반대의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많은 주주가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이 때문이다.

정우철 블랙펄자산운용 대표는 "자사주 매입 효과가 나타나기 위해선 자사주를 소각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하지만 매입한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보유하고 있다가 필요에 따라 처분해 사용하는 상장사가 적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미국 주요 기업의 주가가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라며 "시장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을 환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사주를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며 "자사주의 취득은 곧 소각을 의미해야 주주환원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배주주의 자사주 남용 가능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자사주 소각 의무화법은 국회를 넘고, '코스피 5000' 공약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또다른 발판이 될 수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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