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범철의 Deep Read - 이재명 정부와 한미동맹
새 정부 출범 때의 외교적 관행 멈춰… 트럼프가 좋아할 인사 보내 정상 간 신뢰 구축해야
정치적 관점으로 전작권 전환 추진하면 동맹 형해화… 국방비 증액 요구도 유연한 접근 필요
지난 11일 용산 합동참모본부에서 개최된 한·미·일 3국 합참의장 회의에서 댄 케인 미국 합참의장은 북한과 중국의 위협을 동시에 지적하며 억제력 재정립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직 북한의 위협만을 언급한 김명수 합참의장과는 결이 달랐다. 한편 국내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대미 협상카드로 쓰겠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리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미 관계에 적신호까지는 아니어도 황색 신호는 켜진 상태다.
◇두 개의 오해
한·미 정상회담을 조속히 추진한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는 아직 미국의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관세 협상도 큰 진전이 없어 보이고, 주한미군 감축 목소리도 트럼프 행정부 주변에서 나온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좋은 말로 서로를 아끼며 고위급 접촉을 이어가던 외교적 관행이 멈춰 서 있다. 근래에 없던 일이다.
현 상황에는 두 개의 오해가 존재한다. 먼저 트럼프 행정부의 오해다. 한국의 신임 대통령을 친(親)중국으로 오해한다. 과거 이재명 대통령의 중국 관련 발언 때문인데, 정부가 표방하는 ‘실용외교’의 내용이나 외교안보 인사의 면면을 보면 친중은 아니다. 다만 오해를 푸는 노력을 먼저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국가안보실장과 같은 전문가를 보내 안보나 관세 협상을 하는 것은 정상 간 신뢰가 쌓인 후에 효과가 있다. 지금이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인사를 보내 오해를 풀어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 정부의 오해다. 트럼프 행정부의 동맹국 압박은 지나치다. 하지만 말과 행동의 차이를 오해해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은 상대방의 공포를 활용한다. 협상 목표보다 더 세게 이야기하고 양보를 얻어낸다. 이 과정에서 통계나 말을 바꾸는 일이 다반사다. 이를 통해 그는 국내 정치적 명분을 얻고자 한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5% 국방비 지출 합의가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홍보를 하고 있지만, 사실 직접 국방비는 GDP 대비 3.5%이고 그것도 트럼프의 임기가 한참 지난 2035년까지의 약속이다. 나머지 1.5%는 그나마 간접 국방비인데 인프라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쉽게 말하면 가덕도 공항을 건설하면서 유사시 공군 기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명분을 세우면 국방비로 포함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국제관계에서 관세는 공정해야 하고, 과도한 국방비 요구는 지나치며, 전작권은 주권국으로 보유할 일이다. 그래서 불가피한 갈등을 겪고 있는 현 상황이 뭐가 문제냐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갈등이 누적되고 자칫 임계점을 지나면 튼튼했던 동맹의 근간이 훼손될 수 있다. 미국과 맞서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충돌의 주된 피해를 한국이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엔 한국을 대체할 수입 시장이 있다. 한국과 소원해진다고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이 무너지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연간 수백억 달러의 흑자를 보는 시장이 사라지고 북핵 위협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일본은 미국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보유했지만, 한국은 맞설 카드가 없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고민해야 할 일은 트럼프 행정부를 잘 다루며, 실용에 기반해서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가이다. 포괄적 협상을 추진하며 다양한 문제를 조율해야 하지만, 전작권 전환과 국방비 증액을 예로 들어본다. 전작권 전환은 이재명 정부 임기 내 이뤄질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다만 매끄러운 전환이 이뤄져야 튼튼한 안보태세에 도움이 되고, 미국의 요구가 선행돼야 비용이 덜 든다.
전작권 전환은 2006년 양국 정상이 합의한 이래 20년 가까이 추진해 온 과제다. 이미 상당 부분 진전되고 있기에 전작권 전환이 곧 안보 위기를 초래하진 않는다. 다만 2015년 합의된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계획’의 각 조건인 ‘연합임무필수과제목록’(CMETL)은 대북 대비태세의 핵심 과업이다. 이 조건들을 군사적으로 평가하기로 한 기존 합의를 무시한 채 정치적 관점에서 전환이 추진될 경우, 내용은 없고 뼈대만 남는 동맹의 형해화가 진행될 수 있다.
◇전작권 전환의 해법
따라서 전작권 전환의 기준이 되는 각 조건이 어느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고, 향후 어느 정도 보완이 가능한지 한·미 양국이 치밀하게 논의해야 한다. 동시에 전작권 전환 이후 미국이 유사시 어떠한 지원을 할 것인지도 약속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미 합의된 ‘미래연합사’라는 단일 지휘체계를 유지하며 유사시 한·미가 함께 싸운다는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이는 대미 협상카드라기보다는 양국의 공동과제다.
성급한 전작권 전환은 주한미군 감축의 신호탄이 될 수 있고, 주한미군 선임장교의 지위가 4성 장군에서 3성 장군으로 격하되는 동맹 약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더 우려되는 점은 미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 억제 의지를 오해하게 될 경우, 양국 간 대북 정책의 조율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억제와 평화의 노력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국방비 증액은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 2035년까지 직접 국방비를 GDP 대비 3.5%로 한다는 나토 수준으로 놓고 보면, 현재 2.32%인 국방비를 기준으로 매년 0.12%포인트 정도 인상하면 된다. 트럼프 행정부 잔여 임기 3년간 이렇게 인상해도 2028년 국방비는 GDP 대비 2.7%도 안 된다. 전작권 전환 시 단기적인 국방비 인상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과도한 증액이라 볼 수 없다.
1.5%에 달하는 간접 비용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가덕도 공항 신설 외에도 현재 진행 중인 대구·광주 군 공항 이전 비용 등을 포함하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을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현재와 같이 분담금을 총액으로 지급하지 않고 일본과 같이 항목별로 지급·검증하며 인상하거나, 미 해군 군함 정비사업(MRO) 비용의 일부를 포함해 우리 기업에 이익이 갈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면 해법이 될 수 있다.
◇현실과 실용
국제관계에서 힘(power)은 상대적이다. 그리고 힘을 사용하면 반드시 반작용이 존재했다. 안타깝게도 한·미 관계에서 이러한 모습을 경험하고 있다. 다만 현실은 현실이고, 실용은 현실에서 국익을 구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미국 조야에 이재명 대통령의 협력 의지를 전하며 오해를 풀고 한미동맹의 현안을 지혜롭게 풀어나가길 기대한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 국방부 차관
■ 용어 설명
‘연합임무필수과제목록’(CMETL)이란 한미연합군의 전투수행능력을 평가하고 검증하는 기준이 되는 목록. 즉 임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한·미 공동으로 평가하는 ‘체크리스트’.
‘전작권 전환’이란 한미연합군사령관이 행사하는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 합참의장으로 넘기는 것. 한국군 주도의 연합방위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자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
■ 세줄 요약
두 개의 오해: 한·미 간에 새 정부 출범 때의 외교적 관행이 멈춰 섬. 한·미 관계에 황색 신호가 켜진 것. 여기엔 양국 사이에 두 개의 오해가 작동. 특히 ‘이재명은 친중’이라는 트럼프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급선무.
‘어떻게’ 해야 할까: 갈등이 누적되고 임계점을 지나면 동맹의 근간이 훼손돼. 이재명 정부가 실용에 기반해 국익을 ‘어떻게’ 증진할 것인지 고민해야. 정치적 관점으로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면 동맹이 형해화할 수도.
전작권 전환의 해법: 전작권 전환은 대미 협상카드가 아닌 양국의 공동과제. ‘미래연합사’라는 단일 지휘체계를 유지하며 유사시 한·미가 함께 싸운다는 정신 이어가야. 미국의 국방비 증액 요구도 유연한 접근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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