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토류 등 전략 광물뿐 아니라
연관 제품 ‘수출 허가’ 재검토
상무부로 컨트롤타워도 단일화
美관세 맞서 ‘자원 무기화’ 가속
“한국 제조업체들 피해 호소”

미국의 반도체·AI·배터리 견제에 맞서 중국 정부가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 광물 자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첨단 산업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사진은 시진핑(앞줄 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5월 장시성의 한 희토류 생산 업체를 시찰하는 모습./신화 연합뉴스

미·중 관세 전쟁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중국이 희토류(稀土類)를 비롯한 전략 광물 통제를 위해 최소 2000품목의 수출 허가를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베이징의 산업계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상무부는 지난 4월부터 수출 통제 품목에 해당하는 광물뿐 아니라 이와 연관된 부품과 화합물, 기술 제품의 전략 가치를 재평가하며 수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 현재 명시된 수출 규제 대상은 지난 2·4월 미국을 겨냥해 수출을 막은 희토류·전략 광물 12종, 지난해 말 재정비된 민(民)·군(軍) 양용 물품 리스트에 명시된 700품목인데, 이들의 ‘파생 상품’까지 검토에 나서면서 통제 대상이 2000품목 이상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 측 관계자는 “2010년 대(對)일본 희토류 수출 제한 이후 15년 만에 중국이 전략 광물 수출 체계를 전면 재구축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광물 공급망 재정비로 필수 원료 수입이 막힌 한국 전자 제품·중전기 제조사들은 이미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고 했다.

중국의 대대적인 광물 공급망 재정비는 ‘중앙 통제 강화’ ‘관리 품목 전면 확대’가 핵심이다. 광물 생산 전 단계를 추적하는 시스템을 완비했고, 지난해 말 ‘이중 용도(민간·군사 용도로 사용 가능) 물자 수출 통제 조례’를 통해 광물 수출 컨트롤타워를 상무부로 단일화했다. 통제 효율을 위해 부처 한 곳이 전략 광물 수출을 통합 관장하게 만든 것이다. 통제 품목도 전기차·배터리 등 세계 첨단 산업의 필수재로 확장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4월 미국을 겨냥해 사마륨·가돌리늄·터븀·디스프로슘·이트륨 등 사실상 자국이 100% 채굴과 정제를 독점하는 희토류 원소 7종을 수출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희토류 원소 17개 중 방위산업과 첨단 기술에 필수적인 중(重)희토류만 골라낸 것으로 해석됐다.

◇희토류 꽉 틀어막은 中… 美 포드 공장 멈추고 전투기 생산도 차질

중국의 광물 공급망 재정비로 인해 일반 산업재로 취급되던 품목들의 해외 수출이 지연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중국 세관에서 수출 기업이 한국·미국 등으로 보내는 광물의 통관 절차가 갑자기 중단되고, 상무부에서 해당 광물의 ‘수출 적합성’을 문서로 확인받으라는 통보를 받는 식이다.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5월부터 전자회로 부품(반도체 칩)이나 특정 광물이 소량이라도 포함된 원자재의 경우 규제 대상이 아니어도 자동 검증 대상이 되며 수출이 막히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세관이 공식 규제 대상이 아닌 티타늄 로드, 지르코늄 튜브 같은 일반 금속 제품마저 통관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중국의 광물 통제는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인공지능(AI)·배터리 견제에 대응하는 카드로 해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70%, 정제·가공의 92%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도 2020~2023년 사이 미국이 수입한 희토류 금속과 화합물의 약 70%가 중국산이었다고 밝혔다. 중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미·중 무역 전쟁에서는 희토류 통제 조치를 내세우지 못했지만, 첨단 기술·공급망 자립에서 성과를 거둔 지금은 미국을 겨냥한 ‘광물 통제권’을 서슴없이 강화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략 광물 통제를 강화하는 중국의 최종 목표는 전략 광물의 불법 채굴·밀수를 원천 차단하는 국가 관리 체계 구축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2010년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 분쟁 때 희토류 수출 제한이 밀수로 인해 실패했던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물샐틈없는 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앞서 중국은 2010년대부터 희토류 기업들을 대대적으로 합병시켜 채굴부터 가공까지 중앙 통제가 가능하게 했다. 지난해 ‘광둥희토’를 흡수한 남부의 ‘중국희토(中國稀土)’와 북부의 ‘북방희토(北方稀土)’ 두 곳이 광산 채굴과 제련·분리 작업에 대한 생산 쿼터를 독점하고 있다. 중국은 2023년에는 광물 수출 기업들이 수출 전 거래 내역·고객 정보·거래량까지 의무 보고하게 하는 ‘추적 시스템’을 도입했다. 작년에는 희토류 생산 전 과정 추적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 2월에는 광물 관련 기술 유출을 강도 높게 단속해 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리튬 추출용 여과 장치’의 수출을 중단했다.

중국이 통제하려는 광물 품목의 숫자는 강화된 국가 지침 속에 급증했다. 상무부는 수출 통제 리스트에 명시된 품목의 ‘파생 품목’까지 수출 가능 여부를 재검토하는 중이다. 항공용 전기모터에 쓰이는 사마륨의 경우, 직간접적으로 이와 관련된 부품과 화합물의 품목(HS 코드 기준)이 200개가 넘는다. 상무부에서 이 품목들이 수출 가능한지 답변을 일일이 받아야 수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중국에서 희토류 등 수입이 제한되자 미국 자동차 기업인 포드는 지난 5월 일시적으로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다. ‘희토류 자석’의 경우 차량의 와이퍼 모터부터 제동 장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주요 부품에 사용된다. 방산 업체 록히드마틴의 전투기 생산도 같은 이유로 차질을 빚었다. 글로벌 완성차 공급망 일부가 마비되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까지 중국과의 협상에 나서 희토류 수출 금지 6개월 일시 해제를 합의했다.

중국은 자국 광물을 엄격히 통제하는 와중에 니켈, 리튬, 코발트, 구리 등 전략 광물을 대거 매입하며 국가 비축량을 확대하고 있기도 하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12월 이후 현재까지 국가 비축용으로 니켈 10만t을 구매했다. 예년에는 한 해 6만~10만t 정도를 비축했는데 올해는 니켈 비축량을 기존의 2배로 늘릴 가능성도 점쳐진다. 조사 업체 벤치마크에 따르면, 앞으로 10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채굴할 리튬 가운데 90%는 중국 기업이 소유 또는 지분 투자를 한 광산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희토류 수출을 완전히 차단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일본·유럽 등 이웃이나 주요국의 반발을 불러오고, 국제적 압박을 자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광물 수요의 약 95%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주력 산업인 반도체·전기차에 쓰이는 흑연(중국 의존도 97%), 리튬(84%), 저마늄(74%) 등 주요 광물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광물 공급망 재정비가 한국 산업계에 영향을 즉각적으로 미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광물 통제 강화가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밥 데이비스 전 월스트리트저널 베이징 지국장은 “중국이 압박할수록 다른 나라들의 희토류 채굴·생산을 더 자극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중국에 손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희토류

자연계에 존재하는 양이 많지 않은 희귀 금속 17종. 열과 전기가 잘 통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등의 핵심 재료로 쓰이며 ‘첨단 산업의 비타민’으로도 불린다. 발견부터 생산까지 15년 이상 소요돼 단기간에 상용화하기 어렵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 희토류 수요를 현재의 7배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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