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엄호 속 자료 부실, 증인 채택 불발
野 결정적 한 방 없이 '팻말 시위' 집중
일부 후보자는 자세 낮추며 형식적 사과
당정 "청문회 후 국민 여론 종합적 검토"
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에서 열린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국회 경위들이 최민희 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국민의힘 과방위원들이 노트북 앞에 붙인 인쇄물을 제거하려 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14일 시작한 이재명 정부 초대 장관 후보자들의 자질과 도덕성을 검증하기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첫날부터 부실하게 진행됐다. 불성실한 자료 제출과 여당의 엄호 아래 증인 채택 불발 등으로 국민 의구심을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야당도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반복해 제기할 뿐 결정적 한 방을 내놓지 못했다. 일부 후보자들은 논란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자세를 낮췄지만, 국민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청문회 하루만 버티면 된다는 여당의 오만과 소수 야당의 무기력이 맞물려 국회 청문회가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가 오전 질의를 마치고 정회되자 청문회장을 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는 이날 '보좌진 갑질 의혹'이 제기된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가장 치열하게 맞붙었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은 강 후보자 청문회에서 국민의힘에서 요구한 자료 230건 중 미제출 자료가 90여 건이라는 점을 들어 "배우자나 직계존비속이 정보 제공을 동의하지 않아서 못 받은 경우는 있어도 인사청문회를 받는 당사자 본인이 미동의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라고 지적했다. 여가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도 "더불어민주당은 지금도 '버티기식 침대축구' 전략으로 국민 앞에 장막을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엄호 속에 강 후보자는 여러 번 자세를 낮췄다. 그는 보좌진 갑질 의혹에 대해 "저로 인한 논란 속에서 상처받았을 보좌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고 했지만, 자택 변기 수리 지시와 관련한 언론 보도엔 "과장된 부분이 있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그는 "여의도 의원회관에 있는 보좌진이 아니라 집에서 2분 거리의 지역사무소 보좌진에게 조언을 구한 것"이라며 "부당한 업무 지시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아울러 의원 시절 보좌진에게 '집에 있는 쓰레기를 지역 사무실에 가서 버리라'는 텔레그램 메시지가 언론 보도를 통해 추가 공개되자, 강 후보자는 "제가 (보좌진과 나눈) 메시지 전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며 "제 기억이 미치지 못해 설명드리지 못한 게 있다면 그 또한 사과드려야 할 부분"이라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의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앞서 국민의힘 보좌진협의회 관계자들이 강 후보자를 규탄하는 피켓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증인 출석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강 후보자 청문회만 1명(채택한 2명 중 1명 불출석)이 출석했을 뿐,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정동영 통일부 장관·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증인 및 참고인 없이 진행됐다. 김기현 의원은 정 후보자 청문회에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모든 인사청문 대상자가 청문회가 아닌 '불문회'를 하기로 작심한 것 같다. 상부 컨트롤타워에서 오더가 내려온 것 아니냐"며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고, 인사청문회 제도를 완전히 껍데기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증인을 통해 확인할 내용이 없으니 후보자 능력과 도덕성 검증은 부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에 야당 의원들은 청문회장 주변 팻말 시위 등으로 여론전에 집중했다. 강 후보자 청문회에는 '갑질왕 강선우 OUT'이란 표현이 적힌 팻말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배 후보자 청문회에선 방송 3법 처리를 주도한 최민희 과방위원장을 비판하는 '최민희 독재 OUT'이란 팻말이 등장하면서 두 청문회는 초반부터 파행을 빚었다.
최 위원장은 국회법 145조(회의의 질서 유지)를 근거로 일방적으로 산회를 선포하기도 했다. 1시간 뒤 재개됐지만, 팻말을 둘러싼 실랑이가 이어지며 약 3시간이 지난 뒤인 오후 1시쯤이 돼서야 청문회가 시작될 수 있었다.
현재 여대야소 구도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다면, 야당이 이를 막을 도리는 사실상 없다. 하지만 새 정부 초기 논란이 많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것은 국정 동력에 영향을 주는 만큼 대통령실과 민주당에선 미묘한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청문회 전까지 "단 한 명의 낙마도 없을 것"이라던 기류에서 "청문회 여론을 살피겠다"는 분위기로 바뀌면서다.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이날 MBC 라디오에서 "국민 눈높이에 안 맞는 일이 있었구나 하는 분들도 있다"면서 "청문회가 끝난 이후 국민 여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문진석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가능하면 낙마 없이 전원 통과하는 게 희망사항"이라면서도 "'전원 낙마 없다'는 것이 대원칙처럼 보도되는데, 그렇지 않고 낙마할 수도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강 후보자와 논문 표절·자녀 불법 유학 논란이 제기된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는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은 불법성이 없고 신뢰성도 떨어져 낙마 대상이 아니라는 여론이 많다"면서도 "이 후보자의 경우엔 인사청문회 소명과 여론 납득 여부를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여지를 두었다.
김소희 기자 kim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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