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존·건보공단 "가명정보 결합해 혁신 지원"
'제로 트러스트' 원칙 아래 유연성 확보

더존비즈온 통합보안관제센터./사진=김동훈 기자

[춘천·원주=김동훈 기자] "더존비즈온의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에 오시면 가명정보 결합과 반출을 한 번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에서 76km 떨어진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재 더존ICT그룹 강촌캠퍼스. 2만5000평 규모에 이르는 부지에 클라우드 데이터센터, 연구개발(R&D)센터 등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들이 곳곳에 자리한 가운데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옛 개인정보 안심구역)'이란 비밀스러운 공간도 운영되고 있다.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은 가명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를 '제로 트러스트' 원칙을 기반으로 안전하게 처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고도화한 보안 환경을 갖춘 데이터 분석 전용 공간이다. 제로 트러스트는 '아무 것도 신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기반으로 데이터 처리과정 전체 검증을 목표로 하는 보안 모델이다. 

이서용 더존비즈온 데이터플랫폼개발 유닛장은 "의료 솔루션 기업, 제약사, 대학 등도 각종 의료 데이터를 결합·활용하려면 결합전문기관을 통해야 하는데, 더존은 결합전문기관이면서 개인정보 혁신 이노베이션도 운영해 결합과 활용을 원스톱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대형병원 등 규모가 있는 기관이나 대기업과 스타트업 같은 곳도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에 오면 더존의 ICT 인프라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통계청(대전 서구)과 국립암센터(경기 고양), 한국사회보장정보원(서울 광진구), 한국도로공사(경북 김천) 등이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 운영기관으로 지정돼 있는데 민간 기업은 더존비즈온이 유일한 것도 특징이다. 이 유닛장은 "더존비즈온은 지난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부터 데이터 보호 기술력과 인공지능(AI) 기반 혁신 역량을 인정받아 민간 가명정보 결합전문기관 중 최초로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 운영기관으로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가명정보는 데이터 가치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개인정보의 일부를 삭제·대체해 추가 정보 없이는 개개인을 특정할 수 없도록 한 정보를 말한다. 김동현 한라대 AI정보보안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작은 도시에 국회의원이 1명밖에 없다면 직업만으로도 개인을 쉽게 특정할 수 있는데, 직업 정보를 '공무원'으로 대체하면 개인을 알아보기 힘들게 된다"고 했다.

실제 모델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 금융감독원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개인의 통화 내용을 가명처리해 보이스피싱 탐지 기술을 개발했고, 차량등록정보(경기도 성남시)·이동 데이터(티맵모빌리티)를 기반으로 친환경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모델도 나왔다. 

강촌캠퍼스 별관 4층에 위치한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사진=김동훈 기자

더존비즈온 개인정보이노베이션 존은 분석 공간 2개실에 분석용 PC 4대를 마련하고 통합관제실과 심의공간도 운영하고 있었다. 데이터 열람과 분석이 가능한 데이터분석실의 경우 두개 기업이 동시에 분석을 진행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모든 구역에 대해 출입이 인가된 사람만 접근이 가능하고, 데이터의 반입·반출 역시 별도의 보안 절차를 거친다.

테더링과 같은 별도 인터넷 연결도 차단하고 있다. 이곳을 드나드는 내외부 직원들이 USB 등 데이터 장치를 보관토록 하는 금고도 있고, 공간 전체에 CCTV가 설치돼 실시간 감시가 이뤄졌다. 더존비즈온 관계자는 "수상한 행동이 감지돼 관련 행위가 확인되면 퇴실 조치가 이뤄진다"고 했다.

데이터 활용 환경의 안전성을 높이면서도, 가명처리된 개인정보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개인정보 처리절차 및 관리체계·네트워크 보안 등 별도의 강화된 데이터 처리환경 속에서, 가명정보를 유연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사용기한, 보관기관 등에 관련된 각종 제한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이서용 유닛장이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을 소개하고 있다./사진=김동훈 기자

더존비즈온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의 중점 분야는 '정밀의료' 영역의 가명정보다. 의료 데이터 기반의 AI 모델은 각종 질병 예측, 암 조기진단, 유전정보 기반의 맞춤형 치료 방안 확보, 의료영상 판독 자동화 등 다양한 의료 현장에서 활용돼 의료 서비스 질 향상을 이끌 수 있다. 이에 따라 안전한 데이터 활용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한 의료 솔루션 기업, 제약회사, 대학 등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더존비즈온은 개인정보 이노베이션존에서 전자의무기록(EMR),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유전체 데이터와 같은 각종 의료데이터를 안전하게 활용하며 AI 모델 개발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목표다.

더존비즈온 관계자는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의료 데이터 분석과 AI 모델 개발과 분석에 나설 수 있도록 뒷받침하며 혁신적인 연구 환경 조성에 기여할 것"이라며 "데이터 품질 손상 없이 고품질 데이터를 안전하게 가공하고 분석할 수 있도록 지원해 의료 데이터가 갖는 개인정보보호 측면의 민감성과 활용 필요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혁신적 인프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했다.

춘천 기업혁신파크와의 민관 협력을 통해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의 가치가 극대화될 것이란 기대도 크다. 더존비즈온이 앵커(주도)기업으로 참여한 춘천 기업혁신파크는 ICT, 바이오, AI 등 첨단 지식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민관 협력을 통해 혁신 클러스터로 확장을 꾀하고 있다. 더존비즈온은 삼성서울병원, 강원대학교병원 등 10개 주요 병원과 함께 정밀의료 빅데이터 플랫폼을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과 연계해 의료 AI 인프라의 거점으로 확장해 나갈 방침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데이터 결합실./사진=김동훈 기자

다만 가명정보의 결합은 안전성 확보를 이유로 관계 중앙행정기관이 지정한 결합전문기관만 수행 가능한데, 가명정보라고 하더라도 의료 등 민감한 데이터의 경우 현행법상 결합과 활용이 제한되고 있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한 원격 서비스도 불가능하다는 점은 정책 활성화의 한계로 꼽힌다. 더존비즈온의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을 이용해 가명정보를 결합하고 혁신 서비스를 개발하려면 무조건 강원 춘천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날 방문한 강원 원주 소재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이런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건보공단은 전국민의 보건의료분야 데이터를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유한 기관이다. 2020년 10월 보건의료분야 결합전문기관으로 지정돼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으나, 올해 7월까지 가명정보 결합·반출 사례가 누적 42건 수준에 머물고 있다.

박성용 국민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사업실 팀장은 "보건의료 데이터는 굉장히 민감한 까닭에 제3자 데이터와 결합보다는 공단의 데이터끼리 자체 결합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며 "연구자들은 가명정보 처리 기준에 대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전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개인정보 이노베이션 존은 위원회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정책 중 하나"라며 "규제 부분도 앞으로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풀어나갈도록 노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99r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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