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개정안, 이사 충실 의무 회사→주주 확대
연성규범, 법적구속력 없으나 실질적 효과
"소송 등 법원 판단기준 작동…예측가능성↑"
[이데일리 백주아 최오현 한광범 기자]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이 임박한 가운데 법무부가 소송 남발 방지를 위해 이사의 행동기준에 대한 연성규범 형태의 가이드라인 마련에 나선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속버스터미널광장에서 열린 유세에서 ‘코스피 5000 시대’ 팻말을 들고 경제회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상법 개정 시행을 앞두고 합병 등 주주보호가 문제되는 상황에서 이사의 행동기준을 구체화한 연성규범 형태의 가이드라인을 제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성규범이란 국가에 의해 규율이 강제되거나 정식 입법권한에 따라 제정되지 않은 규범을 의미한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행위 당사자의 행동과 실천에 따라 간접적으로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주간 이해상충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혀왔다.
법무부가 가이드라인 마련에 돌입한 것은 상법 개정으로 이사 등에 대한 소송이 늘어 기업 경영 활동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면서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까지 확대 △전자주주총회 의무화 △사외이사→독립이사 전환 △3% 룰 확대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와 관련해 재계에선 이사의 충실의무가 주주로 확대되며 이사들이 형사적으로는 배임, 민사적으로도 손해배상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회사가 중요한 경영 판단을 내릴 때 최대 주주나 회사뿐만 아니라 소액주주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통상적 자금 조달을 위한 이사회 결정과 같은 정상 경영 활동까지 무차별적으로 소송과 형사 처벌 대상이 될 수 있어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서 이진수 법무부 장관직무대행(차관)은 지난 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이사 충실의무로 인한 소송 남발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의 지적에 “그런 문제점을 인식해 합병 등에 있어서 이사의 행동규칙 등을 규정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 제정을 포함한 다각도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사의 행동기준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제정될 경우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과 관련해 예측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봤다. 부장판사 출신 김용하(사법연수원 27기) 법무법인 바른 구성원 변호사는 “이사의 행동기준에 관한 가이드라인으로 제정돼 상당 기간 관행으로 굳어진다면 법령 해석 기준, 법령 보충 기준 등으로 작용해 일정 정도 이사의 책임에 관한 소송 등에서 법원의 판단기준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사로서도 사전에 자신의 행동방침을 정할 수 있는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이사의 행동을 제약하는 한계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는 기업이 어디까지 행동해야 되는지 모르는 규정의 모호성”이라며 “비상장사 같은 곳은 법무팀을 둘 수도 없고 비용이 많이 드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도 없어서 반드시 세부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그런 점에서 “법무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시의적절하고 의미가 있다”며 “다만 상법 적용을 받는 기업들의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줄 수 있도록 구체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상법개정안 제382조3의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라는 개념과 ‘총주주’와 ‘전체 주주’의 개념, 전자 주총의 진행 방식 등을 명확히 하는 기준이 포함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전원 교수는 “연성규범이라고는 하지만 정부 부처에서 만드는 만큼 구속력이 없을 수 없다”며 “급하거나 엉뚱하게 만들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여러 경우의 수를 나눠 세심하게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기업들이 마음 편히 상법에 따른 운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당은 재계의 소송 남발 우려를 고려해 형법상 배임죄 조항을 대법원 판례 수준으로 완화하고 경영판단원칙을 상법에 명문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7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백주아 (juabaek@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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