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로 뜨는 '덕질 소비'] 2회
콜라보 IP 효자로 떠오른 '서브컬처'
프랭크버거 앱 매출 345% 증가
무신사 팝업스토어 약 6000명 방문
이디야커피 3일만에 굿즈 10만개 완판
희소성·탄탄한 팬층이 구매력 끌어올려

지난 4일 오전 10시 55분경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프랭크버거 신촌서강대점에서 고객들이 오픈런을 하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45분 전부터 와서 기다렸어요. 콜라보(레이션·협업) 기간 동안 10번은 방문했습니다. 굿즈는 모으는 게 맛이잖아요. 그래도 이미 품절된 게 있어서 다 갖진 못할 거 같네요."

이달 4일 오전 10시55분경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프랭크버거 신촌서강대점에 늘어선 줄 맨 앞에 선 30대 초반 이충현씨는 이 같이 말했다. 오픈 시각인 이날 오전 11시까지 줄을 선 사람은 7명. 모두 프랭크버거와 중국 게임업체 호요버스의 서브컬처 액션역할수행게임(ARPG) '젠레스 존 제로'(젠존제)의 콜라보 굿즈를 얻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이 오픈런 줄에는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지속성'이다. 보통 오픈런 현상은 콜라보 초기에 반짝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난달 19일부터 콜라보를 시작한 프랭크버거와 젠존제는 보름 넘게 오픈런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서브컬처 게임 지식재산권(IP)이 가 탄탄한 팬층 덕분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서브컬처 IP가 브랜드 콜라보의 '효자'로 떠오르고 있다. 불황 속에서도 지갑을 여는 '덕심' 충만한 팬들의 구매력 때문이다. 서브컬처 게임은 말 그대로 비주류를 뜻하지만 근래에는 하나의 게임 장르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실제로 프랭크버거는 '젠존제'와 콜라보 이후 공식 애플리케이션(앱) 배달·포장 매출이 345% 증가했다. 콜라보 세트 메뉴와 굿즈도 조기 품절됐을 정도로 인기다.

지난 4일 오전 11시경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프랭크버거 신촌서강대점에서 콜라보 세트메뉴와 굿즈들이 품절됐다. 사진= 박수빈 기자

이날 찾은 프랭크버거 신촌서강대점은 오픈 때부터 이미 '버니스 세트메뉴'가 이미 품절이었다. 매장 직원은 오픈한 지 10분이 채 되지 않아 문의 전화를 받고 "버니스 세트는 품절이에요"라고 답했다. 매장에서 살 수 있는 굿즈 4개 중 아크릴 키링과 캔뱃지 세트도 매진이었다. 오픈런 줄을 섰던 이씨는 "굿즈 물량이 전국적으로 다 빠졌다가 지난 1일에 다시 들어온 걸 홈페이지에서 확인했다. 신논현점은 재입고된 지 하루 만에 다 빠져나가서 오늘 서강대점으로 왔다"고 귀띔했다.

서브컬처 IP와의 콜라보는 식음료(F&B) 업장뿐맘이 아니다. 패션 시장에서도 통했다. 무신사는 넥슨의 서브컬처 게임 블루아카이브와 지난달 6~23일 콜라보를 진행했다. 홍대 팝업스토어는 1주 만에, 성수 팝업스토어는 2주 만에 각각 3000명 이상씩 이용자가 찾았다. 무신사 온라인 스토어에서는 콜라보 시작과 동시에 5개의 콜라보 제품이 신규 상품 10위권 안에 오를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콜라보 굿즈 중 하나인 캔버스 후디 자켓은 판매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지난달 9일 오후 6시 30분경 서울 마포구 홍대 무신사스토어에 입점한 넥슨의 블루아카이브 팝업스토어 앞에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박수빈 기자

이처럼 수많은 IP 중에서도 서브컬처가 '흥행 보증수표'로 떠오른 것은 팬들이 '덕심'을 발휘할 기회 자체가 희소하기 때문이다. 서브컬처의 경우 아이돌이나 배우처럼 팬싸인회나 시사회 등처럼 팬들과 상호소통할 기회가 없다. 이벤트도 온라인에 한해서만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브랜드와의 콜라보는 덕심을 오프라인에서 발휘할 수 있는 '귀한 이벤트'가 되는 것이다.

이디야커피와 카카오페이지의 웹소설 '데뷔하지 못하면 죽는 병'(데못죽)의 콜라보가 대표적이다. 이디야커피는 온라인에 존재하는 데못죽의 아이돌 '테스타'를 현실 아이돌처럼 만들어 콜라보를 진행했다. 아이돌 굿즈의 핵심인 랜덤 포토카드, 콘서트장 필수 아이템인 슬로건을 만들었다. 데못죽 웹툰에서 테스타가 정식 데뷔하는 시점에 콜라보를 시작해 실제로 아이돌이 컴백과 동시에 브랜드와 협업하는 느낌을 줘 팬들의 몰입감을 끌어올렸다.

그 결과 데못죽 콜라보 포토카드 세트는 출시 사흘 만에 10만 세트가 판매됐다. 아크릴 세트와 피규어·슬로건 세트인 한정판 콜라보 굿즈는 4분 만에 완판됐다. 브랜드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디야커피 관계자는 "이디야커피는 앞으로도 고객들과의 소통을 위해 경계를 뛰어넘는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디야커피와 데뷔못하면죽는병 웹툰이 콜라보를 하고 있다. 사진=이디야커피

관련 업계에선 대중적 IP보다 서브컬처가 오히려 안정적으로 매출을 끌어올린다고 풀이했다.

브컬처와 대척점에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IP의 경우 CJ 제일제당, 버거킹 등 시즌2까지 협업을 하다가 이번 시즌3에선 하지 않은 업체들이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대중적이라 해도 재고 부담이 있다. 시즌마다 호평받을 거란 확신을 하기 어려운 데다 작품에 대한 반응이 별로면 콜라보 효과도 기대에 못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화제성이 곧 매출로 직결되진 않는다는 얘기다.

콜라보의 핵심은 '굿즈'인데, 이 굿즈를 사게 만드는 충성심이 결국 콜라보의 성공을 좌우한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팬들 사이에서 형성된 강한 소속 의식, 유대감은 강한 IP 충성도로 연결된다"며 "불황이라 해도 이런 충성심은 팬들이 적극적인 소비 지출을 통해 즐거움과 보람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극심한 경기불황에 고물가까지 겹치면서 꼼꼼히 비교해가며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따지는 '알뜰 소비'가 대세가 됐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요즘 소비자들이 지갑을 꽁꽁 닫아두고 한푼도 쓰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필수 소비재에 돈을 아끼면서도, 자신의 취향을 저격한 아이템에는 기꺼이 지갑을 여는 모습도 보인다. 운동 아이템, 캐릭터 굿즈, 게임 장비 등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흐름이 뚜렷하다.

기업들도 이에 맞춰 불특정다수가 아닌 확실한 소비력을 가진 마니아들을 겨냥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한경닷컴 기획취재팀은 불황 속 소비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덕질(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는 행위) 소비'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박수빈 한경닷컴 기자 waterbe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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