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16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제79회 청룡기 전주고 대 마산용마고 결승전 경기. 전주고 선수들이 우승 후 환호하고 있다. photo 김지호 조선일보 기자
7월 12일까지 진행되는 제80회 청룡기 쟁탈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는 한국야구를 키워 온 최고 권위의 대회다. 지금 KBO(한국프로야구)나 MLB(미국프로야구)에서 뛰는 스타 선수들의 산실 역할을 하기도 했다. 대 청룡기의 최다 우승은 9회를 기록한 경남고이고, 경북고가 8회로 바짝 추격하고 있다. 인천동산고·대구상원고·덕수고는 각각 6회를 기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수원 유신고와 분당 야탑고 등 신흥 명문들이 속속 강자로 부상했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1970년대 고교야구의 광적인 인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고, 초창기에 해당 지역 고교 졸업생은 무조건 해당 지역 프로팀으로 진출하도록 했다. 가령 경남고와 부산고를 졸업하면 롯데자이언츠, 광주일고와 군산상고(현 군산상일고) 졸업생은 해태타이거즈로 가야 했다. 애향심(愛鄕心)을 근거로 프로야구 인기를 유지하겠다는 아이디어였으나, 글로벌 시대를 맞아 연고지 고교 선발 대신 드래프트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원론적으로 고교야구가 잘되어야 프로야구도 잘된다. 고교야구 스타가 프로야구 스타가 되는 비율이 높지만, 고교시절에는 무명이었으나 학교에서 익힌 기본기를 바탕으로 프로에서 빛을 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챗GPT, 덕수고와 서울고 2강 꼽아
청룡기 역사 80년을 맞아 과거 청룡기에서 뛰었던 프로 선수들까지 모두 참가하는 '제1회 프로야구 버전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개최한다면 어떨까. 이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에 미치는 고교별 기여도를 짐작해 볼 수도 있다.
우선 챗GPT에게 '현재 프로야구 선수들을 출신고교별로 다시 모아 경기를 벌이면, 어느 고등학교가 1등과 2등을 할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몇 가지 전제를 달긴 했지만 덕수고가 우승, 서울고가 준우승을 할 것으로 예측하고 전주고·광주일고·대구고·충암고·강릉고 등도 유력 후보로 꼽았다. 챗GPT는 "상위 레벨에서도 덕수고 출신 선수들은 강력한 파워를 자랑합니다"라며 "서울고는 강백호(KT), 김영우(LG) 등 주요 타자 및 투수들이 포진해 있어 전력 면에서 매우 탄탄합니다"라고 대답했다.
덕수고는 청룡기에서 2012~2014년을 3연패(連覇)한 데 이어, 2016년마저 거머쥐었다. 당시 주역들이 지금 프로야구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우완 엄상백(한화)과 좌완 고졸신인 정현우(키움)를 주축으로 고교 시절 최고 투수로 꼽혔던 양창섭(삼성)이 뒤를 받치는 가운데, 이용규(키움), 김민성(롯데), 임지열(키움), 나승엽(롯데) 등의 타선이 매서운 편이다.
다른 학교를 꼽은 전문가들도 있다. 1973년 청룡기대회에서 경남고 4번 타자로 최우수선수상을 받았던 김용희 롯데자이언츠 퓨처스 감독은 서울고·신일고·광주동성고(옛 광주상고)·경남고를 4강으로 꼽은 뒤, 우승은 광주동성고가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광주동성고는 선발 전문인 37세의 좌완 양현종(기아)에다 탭댄스를 추면서 9회 마무리를 담당하는 김원중(롯데)이 양 축을 잡고, 150㎞대 투심 패스트볼을 던지는 최지강(두산)과 컨트롤이 빼어난 임창민(삼성)이 가운데를 맡는 구도다. 타선에는 야구천재 김도영(기아)이 다른 팀의 서너 명 몫을 해주고 한준수(기아), 최주환(키움), 이성규(삼성)가 중장거리 포를 날려 주면 우승이 가능한 전력이다.
광주동성고 1학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윤명준 전 두산 투수 겸 현 동의대 코치는 서울고·휘문고·경북고·광주동성고 등 4개 학교를 꼽고 그중에서도 휘문고를 최강으로 들었다. 윤 코치는 "많은 인적자원과 탄탄한 투수력을 지닌 서울고와 휘문고가 2강"이라며 "이정후·안우진이라는 최고 스타 2명을 지닌 휘문고가 청룡기 같은 단기전 경기에서는 서울고보다 다소 우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휘문고는 한국야구 최고투수로 꼽히는 안우진(키움)과 최고타자인 이정후(샌프란시스코)를 배출한 것만 봐도 최강으로 거론되고 있고, 임찬규(LG), 박상원(한화), 김재윤(삼성) 등 후속 마운드도 든든하다.
한편 1981년 청룡기에서 경북고 에이스로 우수투수상을 받은 뒤 삼성라이온즈에서 97승을 거둔 성준 협성경복중 코치는 서울고와 경북고를 양강(兩强)으로 꼽으면서, 우승은 서울고를 찍었다. 서울고는 2016년과 2017년 청룡기에서 연속 준우승했는데, 당시 주역들이 프로에 들어가면서 현재 서울고는 스타 사관학교로 불리고 있다. 삼성라이온즈의 선발 투수인 최원태(삼성)를 필두로, 7월 1일 현재 평균자책점 1.42로 KBO 최고의 끝판왕이 된 김서현(한화)이 경기를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의견이 다양한 가운데 KBO(한국야구위원회) 고위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서울고·유신고·경북고·광주일고 등 4개 학교가 잘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돌직구를 던지는 박영현(KT)과 홈런왕 최정(SSG)이 포진한 유신고도 강력하지만, 그래도 압도적인 최강은 젊은 스타들이 넘치는 서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주름잡던 지방고교 출신의 프로야구 스타들은 줄어드는 반면, 수도권 학교들은 갈수록 많은 스타를 배출하고 있다.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 보다 세련된 훈련 방법, 프로에서 뛰는 학교선배들의 조언 등이 어우러진 결과다.
야구인들은 최근 고교야구에서 투구 수 제한 등 선수 보호 규정이 강화되다 보니 기본적인 체력을 완성하지 못한 채 프로야구에 들어와 부상을 입는 빈도가 잦다고 우려하고 있다. 고교야구 시절에 오랜 시간 강압적으로 묶어 두는 훈련보다는 튼튼한 체력과 탄탄한 기본기를 다지는 데 만전을 기해야 프로야구 발전에도 기여한다는 지적이 많다. 야구팬인 당신이 보기에는 어느 고등학교가 프로야구에 가장 많이 기여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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