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산업에 특화 ‘버티컬 AI’ 선점
그래픽=박상훈
국내 보안 스타트업 ‘에스투더블유(S2W)’는 지난 3월 일본 정부기관에 인공지능(AI) 기반 사이버 위협 분석 및 알림 서비스를 수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대만 기업과 인도네시아·싱가포르 정부기관에 이은 네 번째 해외 수출 계약이다. S2W는 세계 최초로 다크웹 전용 인공지능(AI) 기술을 개발했다. 별도 특수 브라우저를 통해서만 접속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인 ‘다크웹’은 사이버 범죄의 온상으로 꼽힌다. S2W는 다크웹에 떠도는 각종 기관·기업 정보를 수집해 실제 보안 위협이 되는지를 판단해 알려주는 AI 서비스를 판매 중이다. S2W 관계자는 “작년 매출 약 100억원 중 해외 비율은 약 24%로, 수출액 기준으로 보면 6배 정도 성장했다”며 “지정학적 특성상 북·중·러 쪽 사이버 공격에 대한 데이터 보유량이 많고, 관련 분석 역량이 높다는 점을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상훈
보안·무역·제조·의료 등 특정 산업에 특화된 ‘버티컬 AI’ 스타트업들이 해외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전통 제조업 수출 부진 속에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수출 산업의 새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특정 산업에 특화된 AI는 무역 혁신의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해외 틈새시장 공략한 ‘버티컬 AI’
특정 산업에 특화된 AI 기술 스타트업들은 빠르게 해외 영토를 확장 중이다. 범용 AI 영역은 오픈AI(챗GPT)와 구글(제미나이) 같은 미국 기술 기업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했지만, 특정 분야 전문 데이터를 학습시켜 특화된 ‘버티컬 AI’ 분야는 절대 강자가 없는 열린 시장이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농·축·수산물에 대한 각종 생산·판매·무역 정보를 8억건 이상 수집해온 국내 애그테크 스타트업 ‘트릿지’가 대표적이다. 트릿지는 자체 개발한 AI 기술로 농·축·수산물 관련 데이터를 분석해 코스트코·월마트·델몬트 같은 기업에 제공하는 데이터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작년 420억원 매출을 올렸는데 43.4%가 해외에서 나왔다.
제조업에 특화한 AI 기술의 해외 수출도 활발하다. 국내 AI 스타트업 ‘슈퍼브에이아이’는 현재 일본제철에 철강 제품 품질 검수 및 재활용 분류를 해주는 비전 AI 소프트웨어를 공급 중이다. 생산 현장에서 제조 로봇의 온도와 진동 같은 데이터를 실시간 수집해 고장 징후를 예측해주는 AI를 개발한 스타트업 ‘마키나락스’ 역시 지난 4월 도쿄 지사를 세우며 일본 진출을 본격화했다. 한국처럼 제조업이 발달했지만, 상대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느린 일본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의료용 AI 기술 전문 기업 ‘루닛’은 지난해 대만·싱가포르 대형 병원과 암 진단을 위한 AI 영상 분석 설루션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글로벌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루닛의 올 1분기 매출 192억원에서 수출 비율은 93%에 달한다. MRI(자기공명영상) 사진의 해상도와 촬영 속도를 높이고 영상 복원도 해주는 AI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에어스메디컬’ 역시 매출의 절반이 해외에서 나온다. 미국과 영국, 독일, 일본 등 26국 460개 의료 기관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범용 AI 모델·인프라 수출도 시작
범용 AI 개발 기업도 중동과 동남아 지역처럼 아직 미국 기업이 점령하지 못한 지역을 중심으로 집중 공략 중이다. 거대언어모델(LLM) ‘솔라’를 개발한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는 지난 4월 태국어 전용 대규모 언어모델을 만들어 수출했다. 국내 첫 LLM 수출이다. LLM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보유한 ‘네이버’ 역시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및 태국 기업과 계약을 체결하고 아랍어와 태국어 기반의 LLM 모델 개발에 나섰다. 네이버클라우드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면 연구·개발부터 자체 데이터센터, 서비스 플랫폼 등 AI와 관련해 모든 단계를 구현할 수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며 “AI는 차세대 수출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티컬 AI(Vertical AI)
의료·금융·제조·물류·법률 등 특정 산업·업무에 특화된 인공지능을 뜻한다. 챗GPT·클로드·제미나이와 같은 범용AI(General AI)는 여러 산업과 업무에 두루 적용 가능하지만 특정 산업의 심층적인 맥락이나 업무 프로세스까지는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반면 버티컬 AI는 특정 산업 고유의 규칙, 패턴, 업무 흐름까지 이해하고 맞춤형 설루션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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