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조차 불투명했던 성영탁, 극적으로 KIA 유니폼
2023년 황금사자기 영웅... 비켜간 스포트라이트
17.1이닝 무실점 KBO 한페이지 우뚝
주인공보다 빛나는 조연,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KIA 성영탁이 4회에 투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재작년 신인드래프트에서 KIA 타이거즈가 10라운드에서 선택한 이름 하나가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지명 여부조차 불확실했다”고 말한 선수, 성영탁이다. 개성중과 부산고를 거친 그는 결코 야구 명문 출신의 주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산고 시절 내내 또 다른 재능 원상현에게 가려진 조연에 가까웠다. 하지만 조연은 때로, 결정적 순간에 주인공보다 빛나는 법이다.
2023년 여름, 부산고는 창단 76년 만에 처음으로 황금사자기를 들어올렸다. 역사적인 결승전, 마운드 위에 선 이는 다름 아닌 성영탁이었다. 6이닝 동안 103개의 공을 던지며 5피안타 3볼넷 12탈삼진 2자책점으로 호투. 그의 역투 없이는 결승 우승도 없었다. 하지만 스포트라이트는 다른 이들을 향했다. 그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단단히 자신의 야구를 쌓아갔다. 위즈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성영탁.연합뉴스
2024년엔 조용히 2군에서 보냈지만, 2025년은 달랐다. 개막과 함께 마운드에 모습을 드러낸 성영탁은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써 내려갔다. 무려 17.1이닝 무실점. KIA 타이거즈 구단 역사상 신인 최다 이닝 무실점 신기록이었다. 조계현의 13.2이닝(1989년)을 넘었고, KBO 전체로는 김인범(19.1이닝), 조용준(18이닝)에 이은 역대 3번째 기록이다. 10라운드 지명자에게는 너무도 벅찬 숫자들이었다.
기록은 결국 멈췄다. 6월 24일 키움전, 6회 1사 1,2루에 올라온 성영탁은 임지열에게 3점 홈런을 허용했다. 마운드 위에서 고개를 숙였고, 더는 무실점이라는 숫자 뒤에 숨을 수 없었다. 성영탁 데뷔 후 무실점 기록.KIA 타이거즈 제공
하지만 그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남은 세 타자를 침착하게 잡아낸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고개를 숙인 것도, 다시 든 것도 모두 그의 야구였다.
그의 기록이 더욱 빛나는 이유는 ‘순간’이다. 성영탁은 언제나 박빙의 순간에 투입됐다. 6월 21일, 9회말 1사 1,2루. 한 방이면 굿바이 패배가 확정되는 그 순간에 마운드에 올랐고, 1.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팀의 무승부를 지켜냈다. 평범한 신인에게 주어지지 않는 무게, 그러나 성영탁은 그 무게를 당연하듯 안고 던졌다. 그리고 6월 28일 잠실 만원 관중 앞에서 1.2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고 생애 첫 구원승을 챙겼다. 부산고 성영탁.사진=박범준 기자
부산고 박계원 감독.사진=전상일 기자
부산고 박계원 감독은 제자를 두고 “모범생 같은 아이였다”며 웃었다. “솔직히 이 정도까지 할 줄은 몰랐다. 침착하고, 차분하고, 착한 선수였다. 원상현과는 정반대 스타일이었다.” 이어 “고교 시절부터 슬라이더 제어가 탁월했다. 올해는 여기에 투심이 더해졌으니 당연히 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록 무실점 신기록은 다음 기회로 미뤄졌지만, 성영탁의 야구는 이제 막 첫 장을 넘긴 참이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 진심과 침착함,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빛나는 강심장. 그 모든 것이 야구라는 이름으로 응축돼 있다.
성영탁은 지금, 평범한 신인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지 않는 선수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 평범하지 않은 성실함은, 오늘도 또 다른 성영탁을 꿈꾸는 누군가에게 깊은 울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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