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서울’, 시청자가 어찌 드라마를 보면 힐링만 할 수 있겠는가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tvN 토일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그 시작은 조용했지만 종결을 앞둔 지금은 다르다. 일단 미지와 미래 쌍둥이 연기를 통해 배우 박보영은 다시 한번 재평가받고 있다. 귀여운 외모에 가려진 깊은 내면 연기가 각기 다른 상처가 있고 성격이 전혀 다른 미지와 미래 캐릭터를 통해 빛을 발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미지의 서울'은 기존의 밋밋함과 평이함을 '힐링'이란 이름으로 포장한 힐링물과는 다른 포인트를 지닌 힐링 드라마로도 주의 깊게 볼 면면들이 많다. 힐링물은 사실 큰 성공을 기대하는 작품은 아니다. 드라마 자체가 사건의 큰 굴곡 없이 인물의 상처 받은 내면과 치유에 중심을 두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힐링물에서 주인공의 감정선에 공감이 가지 않으면 채널이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또한 몇몇 힐링물은 주인공 상처의 이유가 작위적이거나 다른 드라마에서 복사해 붙인 인상이어서 시청자로 하여금 공감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면 '미지의 서울'은 일단 시청자가 미래와 미지 쌍둥이의 상처에 충분히 공감할 요소가 많다. 서울의 공사 직원인 미래는 어린 시절부터 우등생이었고 언니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자라왔다. 그 때문에 그 책임감이 그녀를 억누르고 누구에게도 의존하고 피해를 주면 안 된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어린 시절의 큰 병치레 또한 큰 트라우마가 됐다. 이 때문에 미래는 책임감 강한 사람이란 성벽 아래 자신의 상처를 꽁꽁 숨긴 채 지내왔다. 하지만 직장에서 따돌림 속에 놓인 그녀의 내면은 무너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시골에 살던 미래의 동생 미지의 상처는 또 다르다. 미지는 언제나 언니보다 눈에 띄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미지는 육상에 재능을 발휘하면서 처음으로 언니와는 다른 재능으로 사람들에게 관심의 존재가 된다. 하지만 고교시절 부상으로 그 꿈이 꺾이자 미지는 그대로 방에 숨어버린다. 이후 할머니 덕분에 은둔에서 벗어나 다시 밝은 미지로 돌아오지만, 여전히 미지의 내면에는 그 은둔에 대한 공포와 2인자라는 머뭇거림이 남아 있다.
사실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와 미지만이 쌍둥이가 아니다. 두 사람은 이 대도시 사회에서 소시민으로 숨죽이며 살아가는 우리와도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그들의 고민은 남녀를 떠나 지금의 시대를 사는 평범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요소가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의 공감 버튼이 꾹 눌려버리면, 이 드라마에 그대로 스며드는 것이다.
한편 '미지의 서울'은 쌍둥이 미지와 미래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과 주변인들의 사연과 비밀, 감정의 흐름까지 이야기 속에 녹여 넣는다. 이 방식은 생각보다 성공적인 경우가 많지 않다. 힐링물에서 주변인은 주인공의 상처에 치우쳐 주변 인물이 상처의 치유를 위한 도구화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재미를 위해 만들어진 주변인의 서사가 주인공과 어울리지 않고 겉돌면 드라마가 산만해질 위험도 있다. 하지만 '미지의 서울'은 이런 위험을 피해가는 것은 물론 주변인의 서사를 이야기 안에 훌륭하게 엮어내는 솜씨가 있다.
또한 이들의 이야기를 곁들이면서 쌍둥이 미래와 미지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효과도 있다. 일단 미래, 미래 쌍둥이의 엄마 김옥희(장영남)와 변호사 이호수(박진영)의 엄마 교장선생님 염분홍의 사이는 마치 성격 다른 자매처럼 여긴다. 이 때문에 미래와 미지와 다른 듯 닮은 구도의 대립쌍을 하나 더 만들어낸다. 또 변호사 이호수나 딸기밭 주인 한세진(류경수)의 사연. 닭내장탕집 주인 이로사(원미경)의 비밀은 교묘하게 두 쌍둥이들의 상처의 이유나 비밀과도 은유적으로 연결되는 고리들이 있다. 이 때문에 시청자들은 주변인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통해 두 주인공의 이야기와 이들의 감정들을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효과가 있다.
더구나 미지와 미래는 너무 가깝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가 상처받거나 상처받은 이야기를 쉽게 나누지 못한다. 반면 미지와 미래는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깨달음을 얻거나 성찰하는 순간들을 맞이하며 새로운 성장의 계단을 밟는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 또한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재미다.
또 하나 '미지의 서울'은 힐링물의 틀 안에서 일반 시청자들이 좋아할 법한 로맨스나 스릴러의 요소도 섞어 넣는다. 그 때문에 언뜻 잔잔해 보여도 은근히 강한 파도가 많아 시청자의 호기심을 계속 건드리는 힘이 있다. 이도저도 아니게 될 위험이 있었지만 영리하게도 '미지의 서울'이 모든 것을 이야기 안에 적정선으로 채워 넣는다. 시청자가 어찌 드라마를 보면 힐링만 할 수 있겠는가? 로맨스도 느끼고, 공포도 느끼고, 가끔 실없이 웃기도 해야지.
여러모로 '미지의 서울'은 최근 주말드라마 중 손꼽을 만한 조용한 대박 작품이다. 언제부터인가 주말드라마는 호화로워졌다. 하지만 결과가 썩 좋지는 않다. 텅 빈 로맨스의 공허만이 우주에 떠돌던 tvN '별들에게 (500억을) 물어봐'나 대배우 김혜자가 주연인 판타지 힐링물을 표방했지만 유치하고 얄팍한 전개로 아쉬움을 남긴 JTBC '천국보다 아름다운' 등이 그렇다. 반면 '미지의 서울'의 처음이 그리 화려하지 않고 후반부까지 화려하진 않아도 드라마다운 스토리텔링의 힘을 잃지 않는 수작이다. '미지의 서울'은 힐링물을 쓰고 싶은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좋은 교본이 되기에 충분하다. 대본집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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