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수백억 증액 위한 '특정평가' 대상 여부 심사중…"우주청 컨트롤 역할 아쉬워"
차세대 정지궤도 기상‧우주기상 위성 '천리안위성 5호' 상상도. 기상청 제공
수천억원이 투입된 정지궤도 기상·우주기상위성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이 본격 사업 착수도 되기 전에 난항이다. 위성에 실리는 기상 탑재체 개발에 참여하는 해외 기업이 탑재체 개발 비용을 기존에 비해 수백억원 인상을 요청하면서 사업비가 대폭 상승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천리안위성 5호에 실릴 기상 탑재체는 국내 기술이 없어 해당 해외기업이 단독 입찰로 계약을 진행중이어서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고 있다. 해외 업체의 개발비 인상 요청을 사업 초기부터 받아들이면 한국은 글로벌 우주 시장에서 협상력이 낮아질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와 함께 위성 본체뿐만 아니라 독보적인 탑재체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미 개발 사업은 예산을 대폭 높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공식 절차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2000억원에서 2700억원으로…개발비 더 달라는 해외 탑재체 기업
26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천리안위성 5호를 개발하는 '정지궤도 기상·우주기상 위성(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은 현재 기존 예산 6008억원에서 약 14% 증액하는 사업 변경을 위해 '특정평가' 대상인지 여부를 판단하는 심사를 받고 있다. 주관부처인 기상청과 참여부처인 우주항공청이 추진하는 다부처 사업인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은 지난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통과해 올해 4월 착수한 사업이다.
예타를 통과한 연구개발(R&D) 사업은 내용을 변경하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의 특정평가나 기획재정부의 적정성 재검토를 받아야 한다. 적정성 재검토는 사업비가 15% 이상 증액되는 경우 진행된다. 현재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은 특정평가 심사 전 특정평가 대상인지 여부를 따지는 단계다.
사업비 14% 증액의 핵심 원인은 탑재체 개발 기업인 미국 방산 기업 H사가 예타 기획 당시 제출한 탑재체 개발 비용 약 2000억원을 계약 과정에서 약 700억원 올린 2700억원으로 제시했다.최근 진행된 탑재체 개발 사업자 선정에 응모한 업체가 없어 여러 번 유찰되다가 H사가 마지막에 단독 입찰하며 계약이 진행됐다.
H사는 표면적으로 물가 인상을 이유로 대폭 인상된 개발 비용을 제시했다. 주관부처인 기상청이 H사와 협상에 나섰지만 실패하고 H사가 독점적 계약 지위를 행사하는 상황에서 제시한 개발 비용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인 상황이다. H사의 기상 탑재체는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운용하는 위성에도 실리는 탑재체다. 16~18개의 적외선·가시광 채널을 기반으로 높은 성능으로 기상을 관측한다. 국내에서는 수요가 적어 사업성이 크지 않아 기상 탑재체 국산화하기는 어려운 조건이다.
우주항공 업계 관계자는 "해외 업체가 '나밖에 없지 않냐'라는 태도로 값을 지나치게 높여 부르고 있어 위성 기술이 '전략물자'가 된 상황이다"며 "기상청은 제때 기상위성을 올리지 못하면 기상 예보라는 국가적인 업무를 원활하게 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평가 심사 대상 여부 결과는 7월 중 나온다. 특정평가를 이용해 예타 통과 사업 변경을 시도하는 경우는 우주청의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 변경 시도 이후 두 번째다. 차세대발사체 개발 사업은 지난 4월 특정평가 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 "사업초기부터 끌려다녀"…국가 우주정책 컨트롤타워 우주청에 대한 비판도
업계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예산을 대폭 올리면 사업 진행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학의 한 우주항공학과 교수는 "업체가 제시한 개발비를 받아들인다고 개발비를 한 번에 주는 것도 아니고 사업 진행 과정에서 다른 부분에서 사업비를 줄여 총 사업비를 맞추는 것이 일반적이다"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는데 사업비를 올리면 정작 피치못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업비를 더 올리지 못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고 말했다.
해외 업체 요구에 끌려다니면 전 세계 우주 시장에 '한국은 더 달라면 더 주는 국가'라는 사인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번 협상에서 우주청이 국가 우주 정책을 주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출연연 관계자는 "우주 분야는 큰 돈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협상력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처음 해외 업체와 우주 사업 협상에 나선 기상청이 노하우를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며 "우주 전문가가 모인 우주청이 주도적으로 협상을 이끌고 기상청을 지원했으면 이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우주항공학과 교수도 "주관부처가 기상청이라고 하더라도 우주 정책 총괄은 우주청이지 않나"고 반문하며 "우주청이 참여부처라는 이유로 회피할 수 없는 사안이다"며 우주청은 참여하는 우주 관련 다부처 사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주청 관계자는 "천리안위성 5호 개발 사업 전체 주관은 기상청이고 우주청은 참여부처로 '메인'과 '서브' 관계이기 때문에 우주청이 입장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우주청은 본체 사업을 주도하고 탑재체는 기상청이 맡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우주 시장에서 한국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독보적이고 혁신적인 위성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우주항공 전문가는 "국내 위성 기술이 뛰어나지만 다른 국가가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어야 국가의 협상력이 높아진다"며 "도전적으로 위성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해외에서 사와야 하는 장비 가격이 물가 변동으로 인해 달라진 부분이 있어 반영하기 위해 특정평가를 신청했다"며 "심사가 진행 중이라 자세히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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