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일반외과 전공의 장겨울 선생 역할을 한 배우 신현빈. [tvN 홈페이지 갈무리]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페티딘, 페티딘 그거나 주세요” “혹시 마약성 주사 중독이세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는 한 환자가 통증을 호소하며 페티딘을 외친다. 극 중 일반외과 전공의인 장겨울 선생은 이미 무통 주사와 트라마돌을 처방했다며 만류하지만, 환자가 계속해서 페티딘을 요구하자, 마약성 주사 중독이냐고 묻는다.
실제 환자는 마약 전과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지만, 장겨울 선생은 민원에 따라 병원으로부터 주의를 받는다.
마약성 진통제는 극심한 통증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지만, 남용 시 중독의 위험과 부작용이 문제다. 의료진도, 환자도 모두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이제 이러한 우려는 줄어들 수 있게 됐다. 국내 제약사가 자체 연구·개발한 ‘혁신 신약’이 곧 출시되기 때문이다.
위 장면에서 언급된 페티딘과 트라마돌은 모두 오피오이드계 마약성 진통제(아편유사제)다. 진통제는 마약성 진통제와 비마약성 진통제로 구분되는데, 강한 진통 효과를 가진 마약성 진통제는 암성 통증, 수술 후 통증, 신경병증성 통증과 같이 중증도(NRS 5~6) 및 중증(NRS 7 이상)에 불가피하게 처방된다. 페티딘과 펜타닐, 모르핀, 메타돈, 옥시코돈 등이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마약성 진통제는 무통분만에도 사용된다는 것이다. 극심한 산통으로 고통겪는 산모에게 극소량을 사용한다고 해도, 혹여라도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까 불안할 수밖에 없다.
부작용도 문제다. 펜타닐의 경우 모르핀의 약 100배의 효과를 가졌지만, 과다 투여 시 호흡 정지 위험이 있어 호흡이 불안정할 경우 사용할 수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텐더로인 지역에서 한 남성이 펜타닐을 피운 후 거리에서 경련을 일으키고 있다. [로이터]
치료를 위해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에 의한 중독은 이미 전 세계가 목격했다. 오피오이드 처방이 쉬운 미국에서는 2010년 후반부터 마약성 진통제 중독이 사회 문제로 대두됐다. 옥시코돈과 하이드로코돈, 펜타닐에 대한 처방이 남용되면서 중독자를 양산했다.
‘오피오이드 위기(Opioid Crisis)’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마약성 진통제가 심각한 공중 보건 문제로 확대됐다. 최근 미국 샌프란시스코 길거리에 좀비처럼 몸을 가누지 못하는 펜타닐 중독자들이 늘어서 있는 영상이 공개돼 충격에 빠졌다. 오죽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집권 후 펜타닐 유입을 막으려 중국, 멕시코,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기까지 했다.
우리 정부는 펜타닐 처방전 발급 시 환자 투약 명세를 확인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등 마약성 진통제에 대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실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2024년 의료용 마약류 취급현황 통계’에 따르면 펜타닐 처방량은 2000년 930만개에서 2024년 739만개로 20.6% 감소했다.
강한 효과만큼 위험도 높은 마약서 진통제보다 비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비마약성 진통제는 중증 통증에는 사용할 수 없었다. 비마약성 진통제는 타이레놀과 같은 아세트아미노펜 성분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경도 통증(NRS 1~4)에 사용되며, 주로 염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으로 통증을 억제한다.
따라서 수술 후 중증 통증에 사용할 수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의료계의 수요는 꾸준히 있었다. 의료계에서는 출시만 된다면 ‘게임체인저’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주(성분명 오피란제린염산염)’. [비보존제약 제공]
꿈만 같았던 이 비마약성 진통제가 곧 국내에 출시된다. 그것도 국내 제약사가 자체 연구·개발한 순수한 국산 제품이다.
업계에 따르면 비보존제약의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주(성분명 오피란제인염산염)’이 올해 3분기에 출시될 예정이다. 2008년 처음 개발에 착수한 지 17년 만이다. ‘어나프라(Unafra)’는 ‘unafraid(두려워하지 않는)’에서 따온 말로, ‘더 이상 통증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어나프라주는 기존 마약성 진통제나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전의 ‘혁신 신약’(First-in-class)으로, 지난해 12월 식약처로부터 국내 38번째 신약으로 품목허가를 받았다.
비보존의 ‘다중-타켓 신약개발 플랫폼’을 통해 발굴된 오피란제린은 통증의 생성과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글라이신 수송체 2형(GlyT2)과 세로토닌 수용체 2A형(5HT2A)을 동시에 억제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는 다중 수용체 표적 약물이다.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 모두에 작용해 통증 신호 전달을 효과적으로 억제, 수술 후 통증을 포함한 중증도 이상의 통증에도 효과를 입증했다. 특히 중독성이나 호흡곤란 등 중대한 약물 이상 반응이나 부작용도 보이지 않았다.
비보존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 어나프라주 품목 허가를 위해 준비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 문제가 심각한 미국에서의 수요가 클 것으로 전망됐다. 또한 필름 형태로 피부에 부착해 약물이 체내로 전달되도록 하는 ‘경피 투여’ 제제도 개발하고 있다.
비보존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단했던 미국 임상 3상은 연내 재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어나프라주가 전 세계의 통증 환자들에게 의학적 혜택을 주고, 오피오이드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해소해 나가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매주 일요일 밤 0시에 랭킹을 초기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