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에든버러대-아스트라제네카 연구진
유전자 변형 대장균 이용
로센 재배열 생체적합성 첫 확인
플라스틱 폐기물 문제 화석 연료 문제 동시 해결
영국 과학자들이 박테리아를 이용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진통제 성분인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으로 전환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번 발견은 현재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고 석유에서 추출되는 아세트아미노펜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 산업 지역에 있는 돈투글로리 페트 플레이크 수출 회사의 작업자들이 2023년 11월 16일 투명 플라스틱 병을 분쇄기에 넣고 있다. /로이터
과학자들이 이른바 유전자 변형 박테리아(디자이너 박테리아)를 이용해 플라스틱 폐기물을 진통제로 바꾸는 방법을 알아냈다. 아직 실험실에서 이뤄진 수준이지만 기술을 보완하면 전 세계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플라스틱 폐기물과 화석 연료 감축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실마리를 제시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영국 에든버러대와 아스트라제네카 연구진은 23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네이처 케미스트리에 대장균을 이용해 버려진 플라스틱병에서 진통제와 해열제의 주요 성분인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을 얻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스티븐 월리스 에든버러대 교수는 논문에서 “대다수 사람이 파라세타몰을 석유에서 추출된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며 “이번에 화학과 생물학을 통합함으로써 진통제와 해열제를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생산하고 플라스틱 폐기물을 정화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타이레놀과 파나돌의 주요 성분인 파라세타몰은 다른 약처럼 석유나 석탄의 분해 과정에서 얻은 물질을 이용해서 합성한다. 과학자들은 이 성분을 플라스틱과 같은 폐기물로 대체하면 두 가지 주요 환경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획기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타이레놀과 파나돌의 주요 성분인 파라세타몰(아세트아미노펜)은 다른 약처럼 석유나 석탄의 분해 과정에서 얻은 물질을 이용해서 합성한다. 과학자들은 이 성분을 플라스틱과 같은 폐기물로 대체하면 두 가지 주요 환경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획기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타이레놀 브랜드 진통제가 2015년 미국 메릴랜드주 휘튼의 세이프웨이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모습. /로이터
연구진은 유전자를 변형한 대장균을 사용해서 전 세계적으로 식품 포장재와 병에 사용되는 페트(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아세트아미노펜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자연에서는 관찰되지 않은 로센 재배열(Lossen rearrangement)이라는 화학 반응이 생체적합성을 가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지난 1872년 독일 화학자 빌헬름 로센이 처음 발견한 이 반응은 히드록사메이트 에스테르를 이소시아네이트로, 다시 아민으로 바꾸는 재배열 과정이다. 원래는 화학적 합성 반응인 로센 재배열이 세포에 해를 끼치거나 생물학적 기능을 떨어뜨리지 않고 대사 체계와 성공적으로 결합한 것은 처음이다. 생체적합성을 갖는다는 뜻은 살아있는 세포가 있는 환경에서도 해를 끼치지 않고 생체 반응을 수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아실 히드록사메이트 에스테르에서 시작해서 대장균 생장과 DNA 합성에 필수적인 파라아미노벤조산(PABA)을 생성하는 과정을 설계했다. 로센 재배열은 원래는 혹독한 실험실 조건을 필요로 하지만 유전자를 변형한 대장균에선 자연적으로 발생한다.
다양한 전이 금속과 PABA가 없는 대장균을 배양할 때, 촉매 없이도 대장균이 생장하는 것을 확인했다. 또 세포 내 인산염이 PABA를 생산하는 촉매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적으로 PABA는 세포 내에서는 다른 물질로부터 생성된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한 대장균은 이런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했기 때문에 페트 기반의 물질을 사용해야 했다. 페트 플라스틱을 테레프탈산으로 분해하면 로센 재배열로 페트-1(PET-1)이 생성되는데 이는 PABA를 생성하는 전구체(화학 반응의 재료 물질) 물질이 된다.
연구진은 대장균이 페트-1에서 파라세타몰을 생산하는 완전히 새로운 대사 경로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조사했다. 그리고 파라세타몰을 합성하기 위해 2종의 대장균 세포를 추가했다. 버섯에서 유래한 유전자 하나와 토양 세균에서 유래한 유전자 하나를 삽입했다. 연구팀은 이 형태의 대장균을 사용해 세포를 37도에서 배양한 결과 83% 수율로 파라세타몰을 생산했다. 또 24시간 이내에 최대 92%의 수율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유전자 조작 박테리아가 페트병으로 파라세타몰을 생산하는 과정.
연구진은 이번 연구가 플라스틱 폐기물을 생물학적 물질로 전환하는 공정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화학의 합성 공정과 생물 대사 공정을 최초로 결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이번 연구는 지구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플라스틱 오염과 약물 제조 과정에서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고무적인 진전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플라스틱은 매년 3억5000만t 이상의 폐기물을 발생시키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산업용 페트 생산량은 연간 5600만t이며 이 가운데 80%가 일회용으로 생산된다. 썩거나 분해되는 데도 20~500년이 걸린다.
과학자들은 최근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것을 넘어 유용한 물질로 바꾸는 방법으로 미생물을 활용하고 있다. 생물학적 과정과 화학 반응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고 약품을 제조하기도 한다. 제약사의 제조 과정에서도 엄청난 탄소 발자국을 발생시킨다. 자동차 산업보다 55%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지만, 이 새로운 방식은 탄소 배출을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방식으로 진통제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려면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월리스 교수는 “새로운 생산법은 플라스틱 오염을 줄이고 현재 널리 쓰이는 약품 제조에 사용되는 화석 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며 “플라스틱 폐기물 업사이클링의 매우 흥미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는 제약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의 자금 지원을 받았다.
참고 자료
Nature Chemistry(2025), DOI: https://doi.org/10.1038/s41557-025-018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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