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5년06월17일 09시10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김승권 기자] “인공지능(AI) 시대는 거대한 전쟁이며, 이 전쟁에서 경쟁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과 중국 뿐이다.”
구글 전 CEO 에릭 슈미트는 최근 한 대학 강의에서 한국과 일본 등의 AI 발전이 더디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AI가 단순한 기업의 기술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 기술인데도 아직 국가적 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하버드 케네디스쿨 벨퍼 센터에 따르면 한국의 AI 기술은 전세계 9위에 그쳤다. 작년 기준 러시아와 멕시코에서도 나오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사)이 한국에선 전무했다. 신규 기술을 키워주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AI헬스케어 분야에서 글로벌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루닛, 뷰노를 비롯 뉴로핏, 닷 등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특허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전 세계적으로 AI 기술을 활용한 X-ray, 초음파, CT, MRI 등 의료 영상 데이터 분석기술의 특허출원은 연평균 71% 증가하고 있다.
한국이 강점을 보이는 AI의료 분야와 기업 리스트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AI 진단, 선두 미국의 기술 발전 현황은
글로벌 시장 상황은 ‘빅테크’들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의료 AI 분야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구글은 오픈AI보다 일찍 헬스케어 분야 AI 고도화에 뛰어들었으며, 특히 암 정복을 목표로 한 연구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구글헬스와 딥마인드 연구진은 영국과 미국에서 각각 7만6000명, 1만5000명 이상의 유방조영술(맘모그램)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켜, 실제 임상시험에서 인간 방사선 전문의보다 더 높은 진단 정확도를 입증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암 환자를 음성(정상)으로 오진한 비율은 각각 9.4%, 2.7% 낮아졌고, 암이 없는데 암이라고 오진한 비율도 각각 5.7%, 1.2% 줄었다. 6명의 전문의와 AI가 무작위로 선택된 500장의 유방조영술을 진단한 실험에서도 AI의 오진율이 더 낮았다.
AI의 도입은 의료진의 진료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한 영상을 두 명의 의사가 분석하는데, AI가 1차 판독을 담당하고 필요할 때만 2차 판독을 하도록 하면 2차 판독자의 업무가 88%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구글 AI의료 프로그램 MedGemma (사진=GPT)
최근 구글은 생성형 언어모델 기술을 의료 진단에 접목해, 단순 영상 판독을 넘어 다양한 질환에 대한 자체적 판단과 환자와의 대화까지 수행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대표적으로, 구글이 개발한 의료 특화 AI 시스템 AMIE(Articulate Medical Intelligence Explorer)는 영국, 캐나다, 인도에서 환자 역할을 연기한 배우 20명을 대상으로 149건의 진단 사례를 실제 1차 의료진 23명과 비교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문자 채팅 방식으로 진행된 이 실험에서, 환자의 질환 정보 취득량과 진단 정확도는 AI와 의료진이 비슷했으며, 오히려 대화 품질(공손함, 설명력, 관심 표현 등)에서는 26개 평가 항목 중 24개에서 AI가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구글의 의료 AI는 앞으로 개인의 생활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건강관리 코칭, 의료 서비스 추천, 새로운 치료법 개발 등으로 역할이 확대될 전망이다. AI 기반 영상진단 모델은 병변 자동 탐지, 중증도 분류, 진단, 정량화 등에서 이미 판독자를 돕고 있으며, 앞으로는 환자의 예후 예측, 영상 생체표지자(image biomarker)를 활용한 질환 선별과 합병증 예측 등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최우식 딥노이드 대표는 “의료산업이 ‘치료’에서 ‘예방’으로 바뀌고, 사회는 고령화돼 의료영상 데이터가 급증하는데 영상의학과 전문의 수는 4000명 선에서 제자리걸음 중”이라며 “AI 영상진단보조 소프트웨어의 도움을 받아 업무 효율성을 높이려는 영상의학과 전문의와, 기본적인 부분은 직접 보고 환자들에게 알려주려는 비영상의학과 전문의들의 수요가 꾸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루닛·뷰노·닷 등 한국 AI헬스케어 기업, 글로벌 경쟁력은
한국의 상황을 보면 AI바이오마커, AI영상진단, AI생체진단 등에서 그나마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AI 기반 바이오마커의 경우 국가 간 기술격차가 확실히 발표된 바 없다. 하지만 기업 간 기술을 비교할 때 아직 뒤지지 않은 상황으로 파악된다. AI바이오마커는 확률적으로 면역 항암제 등이 잘 드는지 임상 시험을 통해 미리 파악하는데 쓰이는 기술이다. 콜레스테롤 수치, 혈액, 세포 이미지 분석 등을 통해 건강 상태를 평가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글로벌 AI 병리 분야 바이오마커 회사 톱4로는 패스AI(미국), 오킨(프랑스), 뉴클리AI(이스라엘)와 더불어 한국기업인 루닛(328130)이 포함된다. 특히 최근 아스트라제네카(AZ), 로슈 등 빅파마와 계약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상황이다.
옥찬영 루닛 최고의학책임자(CMO)는 “바이오마커 기술은 한국이 늦었지만 AI를 적용한 바이오마커 분석 기술은 결코 한국이 뒤지는 상황은 아니”라며 “톱4에 루닛이 들어가고 있으며 향후 빅파마 계약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루닛 바이오마커 제품 모습 (사진=루닛)
생체 진단은 뷰노(338220)가 주도하고 있다. 뷰노는 망막을 찍으면 이상 소견을 진단해주는 ‘펀더스’, 생체신호를 통해 심정지 가능성을 예측하는 ‘딥카스’, 심전도 데이터로 심혈관 질환을 알려주는 ‘하티브’, 폐 CT 영상을 분석해 폐결절을 검출하는 ‘렁 CT’ 등을 개발했다. 특히 펀더스는 국내 1호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되기도 했다.
뷰노는 생체신호 분야로 사업의 무게추를 옮기고 있다. 생체신호 분야에서 뷰노의 대표 제품은 ‘딥카스’와 ‘하티브’다.
예측의 정확도를 증명하는 척도에 대한 질문에 그는 ‘논문 등재 수’가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예하 뷰노 대표는 “의료AI SW는 논문이 많을수록 임상적 유효성이 높다고 평가되며, 우측(후향→전향)으로 갈수록 근거수준이 높은 연구”라며 “뷰노 연구팀은 딥카스 관련 총 17개 논문을 발표했고, 현재 1개 대학병원과 전향연구 후 논문 작성 중, 4개 대학병원과 RCT 전향연구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닷 비스타 AI 기능 설명 (사진=닷)
시각장애인 재활을 위한 AI 솔루션을 개발한 ‘닷’의 활약도 기대된다. 닷의 기술은 디스플레이형 패드로 그림도 점자로 실시간 구현할 수 있게 해준다. 기존 점자 단말기는 한 줄로만 되어 있어 도형이나 그래프 등과 같은 그래픽 표현은 불가능 했지만 닷패드는 최대 7줄을 순간적으로 표기해 한 번에 점자로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다.
기기를 노트북PC나 스마트폰, 태블릿PC와 블루투스로 연결한 뒤 특정 그림을 띄우면 닷패드 화면에 0.1초 만에 점자로 똑같이 배열된다. 사용자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튀어나온 점을 손으로 만지며, 동시에 스크린리더로 소리 설명을 들으며, 어떤 이미지인지 느낄 수 있다.
이 기술로 닷은 애플 서드 파티로 등록됐고, 마이크로소프트 파트너로 자리매김했다. 매출도 20억원 대에서 작년 130억원으로 급등했다. 미국 내 매출 비중은 70% 넘는 해외 수출 기업이다.
김주윤 닷 대표는 “AI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꿈꿨고 UN 산하 ‘AI for good’이라는 세계를 돕는 기술에도 선정됐다”며 “이 기술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권 (peac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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