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예스24 사태로 본 e북 논쟁 1편
많은 소비자 e북 이용 못 해
불거진 ‘디지털 소유권’ 논쟁
e북 아닌 사용권 구입한 셈
이를 아는 소비자 거의 없어
# 한번 상상해 봅시다. e북을 파는 플랫폼이 하루아침에 망하면 내가 구매한 e북은 어떻게 될까요? 답은 '볼 수 없다'입니다. 대부분의 플랫폼이 e북을 서버에 저장해 두고 소비자에게 접근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서버가 닫히면 소비자가 e북을 볼 방법은 사실상 없는 셈입니다.
# 이는 '만약의 상황'이 아닙니다. e북을 서비스하는 플랫폼 '예스24'가 최근 해킹 공격을 받으면서 '만약'은 현실이 됐습니다. 일주일간 예스24 서버가 마비됐고, 그 기간에 수많은 회원이 e북을 읽지 못해 불편을 겪었습니다.
#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소비자의 권리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 걸까요? 더스쿠프가 예스24 해킹 사건을 '디지털 소유권'의 관점에서 살펴봤습니다. '예스24 사태로 본 e북 논쟁' 1편입니다.
예스24가 해킹 사건으로 수많은 회원들이 e북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해 논란이 일었다.[사진 | 연합뉴스]
온라인 서점 플랫폼 '예스24'가 최근 큰 곤욕을 치렀습니다. 지난 9일 새벽 4시쯤 외부 세력의 해킹 공격으로 앱과 인터넷 통신망이 마비되면서, 예스24 앱과 서비스 전체가 '먹통'이 됐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상황이 금세 진정될 거라 생각했지만, 굳게 닫힌 홈페이지는 시간이 지나도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스24는 4일 뒤인 지난 13일에 제품 결제와 1대1 문의 등 주요 기능을 복구하는 덴 성공했습니다만, 독서노트 앱 '사락', e북(전자책), 중고책 등 몇몇 서비스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이틀이 더 지난 15일이 돼서야 소비자는 이들 서비스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소비자가 겪은 불편함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구매한 제품을 환불하거나 고객상담을 받지 못한 건 물론이고, 돈을 주고 결제한 구독 서비스도 이용할 수 없었습니다. 예스24가 서비스하는 공연 티켓 판매도 문제가 됐습니다.
티켓 구매를 확인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아티스트가 공연이나 행사를 취소하는 경우가 더러 발생했습니다. 일례로, 아이돌 그룹 '엔하이픈'은 예스24를 통해 응모자를 모집하고 있었던 오프라인 팬 사인회를 지난 10일 취소해야만 했죠.
상황이 일파만파 커지자 예스24는 뒤늦게나마 '민심 달래기'에 나섰습니다. 지난 16일에 1차 보상안을 발표한 게 시작입니다. 서비스 장애 기간 중 사용이 종료된 상품권과 쿠폰의 만료 기간을 6월 20일까지 연장하는 게 골자였습니다.
다음날인 17일엔 좀 더 굵직한 '2차 보상안'도 발표했습니다.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5000원 상당의 상품권을 지급하고, e북을 구매한 회원에겐 e북 전용 상품권 5000원을 추가 제공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예스24는 17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발생한 서비스 장애와 관련해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서비스 장애로 직·간접적 불편을 겪은 모든 고객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보상안을 구성했다"고 밝혔습니다.
서비스 대부분이 정상화했고 구체적인 보상안도 나왔으니, 늘 그랬던 것처럼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요? 그러기엔 예스24 해킹 사건은 살펴볼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 사건으로 소비자의 '디지털 소유권'의 개념이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입니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 '내 것' 아닌 e북 = 무슨 소리일까요? 예스24에서 e북을 구매한 소비자라면 이 말의 무게가 확 와닿을 겁니다. 예스24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이들 소비자가 돈 주고 산 e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끔찍한 경험'을 겪어서입니다. 인터넷에 조금만 검색해 보면 e북을 읽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 소비자들의 하소연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SNS 플랫폼 스레드에 6월 11일 올라온 게시글 하나를 읽어볼까요? "오랜만에 예스24에서 e북으로 책을 읽으려 했는데 파일이 열리지 않았다. 검색해 보니 예스24가 해킹당했단다. 그런데, 그게 왜 내가 돈 주고 산 책을 읽지 못하는 문제로 이어지는 걸까. 납득할 수가 없었다."
기업의 서버가 다운됐는데 소비자가 e북을 읽지 못한 건 왜일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e북 플랫폼의 서비스 작동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e북을 구매하면 e북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휴대전화든 e북 리더기든 e북 파일이 어딘가에 저장될 거라고 여기죠. 서점에서 산 책을 책장에 꽂아두는 것처럼요.
실제론 그렇지 않습니다. 예스24처럼 e북을 서비스하는 플랫폼의 상당수는 e북 파일을 소비자의 전자기기가 아닌 자사 서버에 보관합니다. 소비자가 e북을 읽으려고 하면, 소비자의 사용권(라이선스)을 확인한 후 책을 읽을 수 있게 서버에 연결해줍니다. 엄밀히 말하면, 소비자는 e북이 아니라 'e북 사용권'을 구매하는 셈입니다.
플랫폼이 이런 복잡한 방식을 쓰는 건 e북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e북 파일을 무단으로 복제하거나 공유하는 걸 사전에 방지하는 거죠. 어떤 프로그램은 아예 화면을 캡처하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디지털 콘텐츠의 저작권을 보호하는 기술을 DRM(Digital Rights Management)이라고 합니다.
■ 희미해진 소유 개념 = 저작권을 지키겠다는 취지 자체는 나쁠 게 없습니다만, 문제는 그 과정에서 소비자가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언급했듯 대부분의 소비자는 'e북을 소유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을 테니까요.
미국 법학 교수인 애런 페르자노프스키(미시간대 법학대학원)와 제이슨 M.슐츠(뉴욕대 법학대학원)는 2016년 공동 집필한 책 「소유권의 종말: 디지털 경제에서의 개인 재산」에서 이 부분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 무시하는 수천 단어의 약관엔 일관된 메시지가 숨어 있다. '너는 그 책을 소유한 게 아니다'란 점이다. 우린 단지 그 책을 읽을 수 있는 '허락'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그 권한은 사라질 수도 있다."
[일러스트 | 게티이미지뱅크·더스쿠프 포토]
예스24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오해가 생기지 않게끔 이용약관에 명시해 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예스24의 이용약관 제8장 제19조(e북 서비스)에 따르면 e북은 인터넷을 통해 제공하는 서비스고, 소비자는 회사가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해야 이용할 수 있습니다.
e북은 콘텐츠 제공자(작가)로부터 사용 권한을 부여받은 것이라고도 명시돼 있습니다. 다른 플랫폼과 마찬가지로 예스24도 e북의 '사용권'을 소비자에게 판매해 온 셈입니다만, 소비자가 이 약관을 일일이 살펴보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내에선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몰라도, 해외에선 이런 디지털 소유권 문제를 꽤 심각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예전에 예스24와 비슷한 사례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이 부분은 '예스24 사태로 본 e북 논쟁' 2편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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