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배터리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4'가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지난 3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렸다. 참관객이 SK온의 기존 대비 에너지 밀도를 9% 높인 어드밴스드 SF 배터리를 살펴보고 있다. 이동근기자 foto@etnews.com
현대자동차그룹과 SK온의 미국 배터리 합작 공장 투자 지연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장비 협력사들이 대금 정산을 요구하고 나섰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SK온이 미국에 건설 중인 전기차 배터리 합작 투자가 1년 넘게 답보 상태를 보이자 비용 보전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대차와 SK온 주문에 따라 합작 공장에 들어갈 설비를 만들었는데, 구매 결정이 늦어지고 결제도 이뤄지지 않아 해결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한 SK온 장비 협력사 관계자는 “전체 대금의 30%의 선급금만 받은 상태로 자재를 사고 장비 제작에 나선 상황인데 투자가 재개될 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어서 자금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며 “업체별로 수십억에서 많게는 수백억 규모 미수금이 있는 상황으로, 대금 정산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발단은 지난해 불어닥친 전기차 캐즘으로 시작됐다.
현대차와 SK온은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2025년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연간 35기가와트시(GWh) 규모 배터리 공장을 짓기로 했다.
그러나 갑작스런 시황 변화로 수요가 줄면서 당초 계획했던 8개 생산라인 대신 4개 라인만 우선 구축하기로 하고 나머지를 보류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장비사들은 8개 라인에 대한 주문(PO)을 받고 제품을 만들었는데, 갑자기 절반이 사라진 것이다.
대부분 장비 제작에 필요한 원자재와 부품을 구매한 상황인 데, 대금을 받지 못하니 경영에 큰 차질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장비사들은 전체 대금의 30%를 선급금으로 받아 제작에 나선다. 나머지 70%는 장비를 선적(60%)하고 공장에 최종 설치(10%)할 때 받는다.
그런데 이미 상당 자금이 투입된 상황에서 현대차와 SK온이 구매를 보류하니 충격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장비를 언제 다시 사겠다는 건 지, 또는 구매를 철회하겠다는 건 지 기약도 없다.
이렇게 쌓인 미수금이 업체별로 적게는 수십억, 많게는 수백억원에 이른다. 중소 기업이 다수인 장비사들의 자금과 경영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장비 제작에 필요한 원부자재를 공급하거나 가공을 담당하는 2·3차 협력사의 경우 규모가 영세한 만큼 자금난의 여파가 더욱 크다.
현대차와 SK온도 이같은 상황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까지 대화를 지속해오다 이달 말까지 향후 처리 방안을 마련해 논의를 재개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기차 캐즘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뚜렷한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을 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관세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 미국 내 정책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다만 계속 현재와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장비업체 어려움이 가중돼 연쇄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전향적인 해결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시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많은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원청 회사들이 책임감을 갖고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란다”면서 “투자 재개가 어렵다면 일단 비용 정산이라도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현정 기자 ia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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