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對中 제재 예외 조치 철회”
중국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미국 정부는 2022년부터 첨단 반도체 장비의 대(對)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그러면서도 우방국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필요한 장비 수출은 예외적으로 허용해 왔다. 하지만 미 정부가 이런 예외 조치를 철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2일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의 제프리 케슬러 수출통제국장은 최근 삼성, SK하이닉스와 대만의 TSMC 등 주요 반도체 기업에 기존 ‘일괄 면제(Blanket Waiver)’를 취소하고, 앞으로 건건이 수출 허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일괄 면제는 미국의 대중 기술 제재 속에서도 한국 반도체 기업이 중국 내 생산 설비에 필요한 장비를 계속 공급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인정해 준 조치였다.
그래픽=이철원
미 정부가 일일이 수출 허가 여부를 판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내 업계에서는 사실상 수출 금지로 받아들인다. 당장 중국에 있는 우리나라 공장의 반도체 생산에 차질을 빚진 않지만, 앞으로 장비 교체 시기에 수출 허가가 지연되거나 반려되는 경우, 공장 가동에 치명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의 반도체 생산 경쟁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최종 확정된 사안이 아니어서 한·미 정부 간 협상의 여지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기적으로 중국 공장 가동에 악영향”
일괄 면제는 ‘공인 최종 사용’(VEU·Validated End-User) 제도의 일환이다. VEU 제도는 미국이 반도체 장비나 기술 등 전략 물자 수출을 통제하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해외 기업에는 예외적으로 절차를 간소화해 준 것이다. 한국이 미국의 대중 기술 견제 전략에 협조하면서도, 미국과 동맹국 기업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내놓은 절충안이었다. 일괄 면제를 받더라도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등 최첨단 공정에 사용되는 장비 반입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일괄 면제 제도 덕분에 미국산 반도체 제조 장비를 중국 공장에 계속 공급하며 현지 생산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는 시안 공장에서 전체 생산 낸드플래시의 40%,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와 다롄에서 전체 생산 D램의 40%와 낸드플래시의 20%를 만든다. 이 공장들은 첨단 기술을 보유하진 않지만, 차량·스마트폰·서버 등에 사용되는 레거시(구형)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데이터를 계산·처리하는 반도체)를 주로 생산했다.
그래픽=이철원
하지만 미국이 면제를 철회할 경우, 장비 유지와 업그레이드에 지연이 생기며 생산 차질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괄 면제 취소가 현실화되면 장비를 미리 구매해 놓고 앞으로 교체하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며 “이는 단기 대응에 불과하고, 장기적으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대미 통상 협의에서 다룰 것”
산업통상자원부는 22일 “미 상무부가 VEU 제도를 폐지한다는 보도는 아직 확정된 내용이 아니다”라며 “미국 정부와 소통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이재명 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미 통상 협의에서 관세 협상과 함께 일괄 면제 철회도 다룰 예정이다. 여 본부장은 22일 인천공항 출국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 상무부나 미 무역대표부(USTR), 백악관 쪽과 접촉해 (일괄 면제 철회와 관련해) 충분히 우리 업계의 우려 사항을 전달하고 건설적으로 협의해 나갈 부분이 있는지 최대한 신경 쓰겠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 등 한국 대표단은 27일까지 워싱턴 DC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하워드 러트닉 상무 장관 등을 만나 협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일괄 면제 철회를 두고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WSJ에 따르면 국방부 등 일부 부처는 일괄 면제 철회가 중국 업체에만 이득이 되고, 한국과 대만 등 미 우방국 기업에는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양쯔메모리(YMTC)·창신메모리(CXMT) 등 중국 반도체 기업이 자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시장점유율을 늘리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손발이 묶이면 중국 업체 경쟁력만 키워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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