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허부영·이선구·오현철
[차한별·최예원, 전희수, 옥윤서 기자]
연극 '인스턴트 마더'는 싱글대디와 결혼한 여자의 가족 관계를 그린 이야기다. 남편과 아이의 요구에 맞춰 빠르게 소모되는 엄마, 희생을 강요받고 '필요'에 의해 존재하는 엄마라는 역할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숙희 작가의 '인스턴트 마더'는 제42회 근로자문학제 극작 부문에서 은상을 받았다. 이를 무대에 올린 플라잉트리 극단은 "배우가 선 그곳이 무대"라는 모토로, 공간을 가리지 않고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18일, 명동의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이번 작품의 허부영(여자 역·연출), 이선구(남자 역), 오현철(친구 역)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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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현철 배우 |
ⓒ 전희수 |
- 치유예술제의 가치와 이번 작품은 어떤 점에서 맞닿아 있나요.
허부영 : "극 중 남편이 아내의 마음을 공감하고 관계 회복을 위해 먼저 다가가요. 그걸 의도적으로 각색했죠. 치유예술제 주제와 딱 맞다고 생각해요. 관객이 공연을 통해 가족과 한 번은 터놓고 소통하고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바라요."
오현철 :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인간과 로봇,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그래서 미래를 준비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하죠.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어떻게 대처할지 방법을 찾아가면서 우리가 좀 더 유연한 태도를 가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어요."
- 캐릭터를 해석하며 가장 유념한 부분은요?
허부영 : "인스턴트 음식은 쉽게 사고 먹고 버려요. '인스턴트 마더'라는 제목에서 의미하듯이 가족 안에서 겪는 불화로 관계를 포기하는 장면과 이 캐릭터(여자)가 지닌 중의적인 의미를 조금 더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선구 : "가족 구성원을 로봇으로 대해야 할지, 인간으로 대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어요. 극의 흐름에 따라 로봇일 때와 인간일 때를 나눠 연기 연습을 했죠."
오현철 : "'인스턴트 마더'는 두 주인공 중심으로 흘러가는 인간과 로봇 이야기예요. 저는 그 경계에 서 있는 로봇공학박사로서 중립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휴머노이드가 변하며 인간처럼 느끼는 분노는, 사실 배신과 절망에서 비롯된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반응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대로 로봇이 조종되기를 바라죠. 문제가 생기면 그저 리셋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 태도 속에는 로봇은 소모품이라는 편협한 인식과 책임 회피가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이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요."
- 연극과 현실이 닮았다고 느꼈나요.
허부영 : "(엄마 역할이라는 필요에 의해서 자신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여자는 남편에게 실망하고 분노하죠. 그러나 그 분노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가정을 떠나기로 결정해요. 저는 극 중 여자처럼 가정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요즘 미디어에서 이혼을 다루는 방식을 보며, 이혼을 권하는 사회가 된 건 아닌지 고민한 적은 있습니다. 이혼은 죄나 흠이 아니지만, 쉽게 결정할 문제도 아니니까요."
오현철 : "여자에게 "당신은 누구인가"라고 묻자, "아이의 엄마이자 남편의 아내"라고 답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현실에서도 많은 사람이 타인 중심의 역할에 집중하며 살아가죠. 배우, 마술사, 선생님, 누군가의 아들이기도 한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주어진 역할에 익숙해지다 보면 정작 '나는 누구인가'를 놓치게 되죠. 저도 그 질문을 지난 2~3년간 계속 고민했고, 때로는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결국 제 본질을 돌아보게 만들었어요."
이선구 : "자녀를 키우는 제 입장에서, 아이를 위해 엄마 역할을 할 여자를 집에 들이는 남자의 마음은 이해됐어요. 그런데 다시 아이를 위해 그 여자를 내보내는 선택은 무서웠습니다. 저 역시 아이에게 좋은 쪽을 먼저 생각하게 돼요."
여자의 진심이 담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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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역의 허부영(왼쪽)과 남자 역의 이선구(오른쪽) 배우. |
ⓒ 전희수 |
-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요.
이선구 : "남자가 여자를 떠나보내고 여자가 작성한 문장 완성 검사지를 읽는 장면이요. 아이의 엄마이자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 역할을 원했던 여자의 진심이 담긴 답변에서 가장 가슴 아프고 남자가 후회하는 부분에서 감정이 격해졌어요."
허부영 : "여자는 이사 후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말해요. 집이 좋아서가 아니라 "우리 가족이 살 집이니까 마음에 든다"는 대사가 굉장히 와닿더라고요. 어디든지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곳, 지치고 힘들 때 쉬면서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 자체가 굉장히 소중하고 감사한 일이니까요."
-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뭔가요?
오현철 : "AI 시대에도 사람 간의 '정'을 잃지 않고 주어진 상황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정'이 통하는 배우가 되려고 해요. 이번 연극이 가족 간의 사랑을 다시금 느끼고, 앞으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라요."
이선구 : "'말 한마디, 태도 하나도 신중하자'.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과의 연이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평소에도 싸우지 않고 기분이 좀 나쁘더라도 말을 예쁘게 하려고 많이 노력해요."
허부영 : "소통의 중요성을 전하고 싶어요. 대사에서 진심을 보여주는 일이 중요하지만 어렵다고 해요. 가족끼리 터놓고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보통은 타인과 대화하죠. 극 중 남자는 친구에게, 여자는 이웃집 할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아요. 서로의 속마음을 모르다가 진실을 마주했을 때 관계를 끊거나 회피하지 않으려면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죠."
- 준비 과정에서 기억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오현철 : "여성 중심의 이야기를 로봇이라는 소재로 풀어가면서, 극 중 남편과 친구의 대화 장면에서 많은 걸 느꼈어요. 저희 엄마처럼 많은 어머님들이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온 모습이 떠올랐죠. 연기를 할수록 로봇이 사람처럼 느껴져요. 할머니 역할의 오태은 배우님도 더 인간적이고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셨고, 현모양처로서 최선을 다하는 엄마 역할의 허부영 배우도 그렇고요. 그런 과정을 보며 저도 가족과 부모님을 떠올리며 부족했던 제 모습을 돌아봤어요."
이선구 : "제 별명이 '애데릴라'입니다. 가정이 있다 보니 아이를 돌봐야 해서 밤까지 연습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아침 일찍 연습실에 나와 연기 연습을 하고 아이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가는 모습이 마치 무도회에서 춤을 추다 시간에 맞춰 무도회장을 빠져나가는 신데렐라 같아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그게 기억에 남네요."
허부영: "제작비가 충분히 준비된 상태에서 시작한 공연이 아니었어요. 기획서를 써서 치유예술제에 공모해 선발됐고, 소파(소품)는 협찬받고 일부 제작비도 후원받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시작한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고, 운 좋게도 하반기에 영화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 '엄마'란 무엇일까요.
허부영 : "극 중 대사에 "어머니는 희생에 몸이 밴 사람"이라는 말이 나와요. 그런데 저는 그런 엄마는 아니에요. 아기를 낳고 바로 배우로 복귀할 수 없어서 연출을 시작했죠. 연출이 하고 싶다기보다 연극을 계속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캐스팅이 되지 않으면 제작까지 하면서 작업을 이어갔어요. "엄마, 연습 갈 거야"라고 하면 아이가 혼자 공부하고 때론 연습실까지 따라오기도 해요. 아이만을 위해 모든 걸 희생할 수는 없어요. 덕분에 제 아이는 자주적이고 독립적으로 자라서 고마워요.
엄마가 자신의 일과 삶을 모두 포기하면서도 행복하지 않다면, 가족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느 한 부분은 내려놓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아가죠. 결국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니까요."
연극 속 누구의 엄마로 불리며 이름조차 잃은 여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답한다. '이모래'. 某(아무개 모)와 (위로할 래), 사람들을 위로한다는 뜻이다. '인스턴트 마더'는 묻는다. 누군가의 엄마도 아내도 아닌 당신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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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유예술제 '인스턴트 마더' 포스터 |
ⓒ 플라잉트리 극단 상세 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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