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지난 8일 독일 뮌헨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4~2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 결승전에서 우승 트로피를 오른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 뮌헨=AP 연합뉴스
"나는 기록을 따르지 않는다. 기록이 나를 따라온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 나르스)가 지난해 39세의 나이로 사상 첫 4개 리그(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라리가, 세리에A,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 득점왕에 오른 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긴 말이다. 당시 정규리그에서만 31경기 35골을 기록하며 사우디 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 골을 넣은 호날두는 올해도 어김없이 30경기 25득점을 올려 득점왕을 차지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불혹의 호날두는 이달 초 2024~2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UNL)에서 조국 포르투갈에 대회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준결승전 역전 결승골에 이어 결승전 우승 발판을 마련해준 황금 같은 동점골까지 모두 호날두의 발끝에서 탄생했다. 노장의 건재함을 과시한 것으로, 전 세계 축구팬들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는 그의 전성기 기량에 경의를 표하고 있다.
이젠 내로라하는 기존 축구 전설들의 기록을 넘어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호날두를 '이달의 스포츠 핫 피플'에서 훑어봤다. 알렉스 퍼거슨(왼쪽) 감독과 23세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맨체스터=AP 연합뉴스
'영원한 스승' 퍼거슨과의 만남
어려서부터 축구에 유난한 재능을 보였던 호날두지만,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발돋움하게 된 데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의 만남이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퍼거슨 감독은 포르투갈 명문 클럽인 스포트링에 있던 호날두를 2003년 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끈 인물이다. 그해 8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맨유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치며 팀의 승리를 이끄는 호날두를 보고 영입을 결정했다.
퍼거슨 감독은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온 어린 호날두를 위해 한동안 가족과 함께 머무를 수 있게 했고, 수시로 사무실에 불러 소통했다. 호날두는 그런 퍼거슨 감독의 배려와 가르침에 힘입어 맨유에서의 첫 시즌을 4골 4도움으로 잘 마무리했다. 훗날 호날두는 맨유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18세 어린 선수에게 (말이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엄청난 스타 선수들 사이에서 나는 많이 긴장했었고, 퍼거슨 감독은 정말 많은 대화로 나를 도와줬다. 그는 내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다"라고 말했다.19세 때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호날두는 2006~07시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생애 처음으로 단일 시즌 17골을 넣어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프랑크푸르트=로이터 연합뉴스
다만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에게 따뜻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퍼거슨 감독은 평소 선수들 머리가 휘날릴 정도로 호통을 쳐 '헤어드라이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데, 호날두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맨유 레전드 파트리스 에브라(은퇴)는 영국 언론 '미러'와 인터뷰에서 "퍼거슨 감독이 호날두를 아주 박살냈던 적이 있다"며 "(2006~07시즌) 첼시전 이후 '볼튼이나 블랙번 같은 (약)팀한테는 해트트릭을 쉽게 하면서 왜 큰 경기에서는 그 모양이냐'고 호통쳤다"고 했다. 그는 그 순간을 "강도 높은 헤어드라이어 순간이었다"고 묘사한 뒤 "그날 이후 갑자기 호날두가 큰 경기에서 득점을 하기 시작하더니 전과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됐다"며 놀라워했다.
실제 호날두는 2005~06시즌까지만 해도 한 자릿수 득점에 그쳤지만, 2006~07시즌 17골 16도움을 기록하며 한 단계 도약했다. 이듬해에는 31골 7도움으로 생애 첫 EPL 득점왕에 올랐고, 2008년 자신의 첫 번째 발롱도르와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새로운 왕의 탄생을 알렸다. 발롱도르는 전 세계를 통틀어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축구에선 세계 최고 권위를 갖는다. 퍼거슨 감독의 진한 호통이 호날두가 한 차례 알을 깨고 나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숙명의 라이벌이었던 리오넬 메시(왼쪽)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바르셀로나=AP 연합뉴스
영원한 라이벌 메시와 경쟁하며 성장
호날두는 퍼거슨 감독과 맨유에서 6년간 전성기를 구가한 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팀을 옮기며 꾸준한 활약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호날두의 발전을 끊임없이 채찍질한 건 '숙명의 라이벌' 리오넬 메시(인터 마이애미)다. 비슷한 시기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스 파리생제르맹(PSG)에서 뛴 메시는 호날두와 10여 년간 유럽 축구 지존 자리를 양분하며 걸출한 기록들을 경쟁적으로 쏟아냈다.
호날두가 레알에서 9시즌을 머물며 구단 역대 최다골(438경기 450골), 6시즌 연속 50골 이상의 전례 없는 진기록을 세운 것도 이때다. 유벤투스로 옮긴 뒤로도 계속 골잔치를 이어간 끝에 2021년엔 사상 최초로 유럽 무대 공식전 통산 800골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골 넣는 공무원이란 뜻에서 '골무원'이란 별명이 생긴 이유다. 그는 수차례 리그 우승을 거머쥔 것은 물론, UEFA 챔피언스리그(UCL) 총 5회, FIFA 클럽월드컵 2회 우승 등도 이끌었다. 그 사이 메시도 바르셀로나에서 17시즌을 뛰며 공식전 778경기에 출전해 672골을 넣어 단일 클럽 최다 골, 최다 경기 출전 등 기록을 거침없이 갈아치웠다. 한동안 발롱도르도 호날두가 5회, 메시가 8회로 둘이 연거푸 휩쓸었다.숙명의 라이벌이었던 리오넬 메시(오른쪽)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바르셀로나=로이터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호날두와 메시가 경기에서 만나는 날이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팬들도 둘의 맞대결을 '메호대전(메시-호날두 대전)'이라 부르며 열띤 환호를 내뿜었다. 둘은 각각 레알과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자 지역 대표 영웅으로 엘 클라시코(레알과 바르셀로나 더비를 일컫는 말)를 비롯한 빅매치에서 매 시즌 2회 이상 정면승부를 펼쳤다. 유럽에서의 마지막 메호대전은 2020년 12월로, 이땐 호날두의 완승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사우디에서 37번째 메호대전을 가졌는데, 이번엔 메시가 승리를 챙겼다. 둘의 역대 전적은 17승 9무 11패로 메시가 한발 앞서 있다.
호날두가 2022년 사우디 알 나르스로, 이듬해 메시가 미국 인터 마이애미로 떠나면서 둘의 라이벌 관계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 호날두는 2023년 외신 인터뷰에서 메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제 라이벌 관계는 끝났다"며 "(메시를) 친구라고 말하긴 어렵고, 함께 저녁 한번 먹지 않았지만 우리는 직업적 동료로 서로를 존중한다"고 말했다.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지난 8일 독일 뮌헨에서 열린 2024~25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네이션스리그 결승전에서 승리한 뒤 활짝 웃고 있다. 뮌헨=EPA 연합뉴스
날강두, 외설적 세리머니 등으로 논란 자처하기도
'축구의 신'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호날두이지만, 때론 논란을 자초하며 사건사고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한국 팬들에게 가장 유명한 사건은 '날강두 사건'이다. 2019년 7월 유벤투스 소속으로 뛰던 호날두가 한국에서 열린 K리그와의 친선경기에 출전하지 않아 국내 축구 팬들의 거센 비난을 받았던 사건이다. 당시 주최 측이 '호날두 45분 출전'을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탓에 팬들은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6만여 석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정작 호날두는 경기 전 팬사인회 등 공식 행사는 물론이고, 그라운드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에 한국 팬들은 호날두와 날강도를 합친 '날강두'라는 별명을 붙여주며 거센 비난을 퍼부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17년 12월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62회 발롱도르 시상식에서 개인 통산 다섯 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한 뒤 미소 짓고 있다. 왼쪽 사진은 과거 발롱도르 수상 때 호날두의 다양한 표정들.(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008년, 2013년, 2015년, 2016년). 파리=AFP 연합뉴스
외설적인 세리머니도 그의 평판에 찬물을 끼얹는 비상식적 행동 중 하나다. 호날두는 201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에서 골은 넣은 뒤 양손을 사타구니 쪽으로 가져가는 세리머니를 해 관중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선제골을 넣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감독의 세리머니를 따라한 것이라 해명했지만, UEFA는 2만 유로(약 2,600만 원)의 벌금 징계를 내렸다.
한 차례 징계를 받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호날두는 2023년 4월과 작년 2월 경기 도중 상대 팀 팬들이 부러 '메시'를 연호하며 자극하자 관중석을 향해 또 한번 외설스러운 동작을 해 비난을 받았다. UEFA는 이때 호날두에게 1경기 출전 정지와 벌금 1만 리알(약 36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2022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모로코에 패한 뒤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있다. 도하=AFP 연합뉴스
아직 달성하지 못한 꿈, '월드컵 우승'
호날두는 이제 자신의 마지막 목표인 월드컵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다. 입이 떡 벌어질 것 같은 대기록을 보유한 호날두에게 없는 유일한 기록이 바로 월드컵 우승이다. 호날두는 2006 독일 월드컵을 시작으로 2022 카타르 월드컵까지 월드컵에만 5회 출전해 5번 모두 득점을 올린 유일한 선수다. A매치 196경기 118골로 역대 A매치 최다 득점 기록도 호날두가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유독 월드컵 우승운은 따르지 않았다. 특히 메시가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그 꿈을 이룬 탓에 호날두에게 이 목표가 더욱 간절해졌다. 불혹의 호날두는 자신의 6번째 월드컵인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하겠다는 각오다. 마침 네이션스리그 우승으로 기세도 좋다. 네이션스리그 우승 직후 호날두는 "대회 우승으로 내년 월드컵에서 세계 어느 팀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심감을 얻었다"며 활짝 웃어보였다. 41세의 호날두가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또 어떤 새로운 기록을 세울지, 어디까지 올라갈지에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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