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 新산업책략]<2>①

대만 파운드리 TSMC의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반도체 공장 건설 현장./사진제공=빌설로인프로덕션즈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스카이 하버 국제공항에서 차로 40분가량 달리면 붉은 사막 위로 거대한 철골 구조물과 대형 크레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업체 대만 TSMC가 건설 중인 미국 현지 생산기지다.

사막 한가운데 세워지는 이 초대형 반도체 공장은 단순한 외국 기업의 투자처가 아니다. 미국이 기술 주권을 되찾기 위해 조성 중인 전략적 리쇼어링(기업의 본국 회귀)의 핵심 거점이자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경제·안보 복합 구상의 상징적 현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 TSMC의 미국 추가 투자 발표 당시 "이건 단지 경제 문제가 아니다"라며 "반도체는 국가 안보 자체"라고 말했다.

한때 낡은 정책으로 치부됐던 국가 주도 산업정책이 다시 패권경쟁의 무기로, 국가 전략의 중심축으로 돌아왔다. 기술, 안보, 공급망을 둘러싼 국제 질서 재편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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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책, 패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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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정책은 과거에도 단순한 경기부양 수단이 아니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미국이 패권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에서도 그 출발점에는 산업정책이 있었다.

미국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1년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보호관세, 정부 보조금, 인프라 투자 등 국가 주도의 산업 육성 전략을 제안했다. 당시 농업 중심의 미국을 자립형 제조국가로 전환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해밀턴의 보고서는 경제개발 로드맵을 넘어 유럽 강대국과 경쟁하기 위한 산업기반 구축 전략으로 작용했다. 이후 냉전기에는 군산복합체 육성과 민군 융합 기술 중심의 산업정책이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지탱했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자유무역주의와 세계화가 주류로 떠오르면서 산업정책은 비효율의 상징으로 밀려났다. 글로벌화가 경제 운영의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으면서 정부의 직접 개입은 한동안 정책 테이블에서 사라졌다.

가속화하는 미국 산업정책/그래픽=최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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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중국제조 2025' 선언…다시 불붙은 기술 패권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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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도로 정착된 자유무역질서에 첫 균열을 일으킨 것은 중국이었다. 중국은 2015년 '중국제조 2025'를 발표하며 반도체, 항공우주, AI, 로봇 등 10대 첨단산업의 자립을 선언했다.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을 벤치마킹한 이 계획은 중국 중심의 첨단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선포였다.

국가 자본을 동원한 대규모 투자, 해외 기술기업 인수, 정부 주도의 연구개발 등 공격적 정책이 이어지면서 중국은 첨단산업 역량을 빠르게 끌어올렸다. 이를 위협으로 인식한 미국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부터 대응에 나섰다. 화웨이 제재와 반도체 수출 통제, 첨단장비 기술 제한 조치 등이 이어졌고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등을 통해 미국 내 생산시설 구축에 속도를 냈다.

이 과정에서 산업정책은 다시 경제와 안보를 아우르는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진화했다. 정책 전문가들은 "기술은 무기, 공급망은 방어선, 산업은 안보"라고 말한다. 경제와 기술 주권, 공급망 안보를 아우르는 새로운 틀 속에서 산업정책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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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공급망, 안보…산업정책 삼각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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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산업정책의 귀환이 기존 자유무역질서와 정면 충돌한다는 점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자국산 우대, 수출보조금 등을 금지하지만 미국의 IRA는 사실상 미국 내 생산을 보조금 조건으로 못박았다. 유럽연합(EU), 한국, 일본 등도 비슷한 산업정책을 가동하면서 경쟁대열에 나서고 있다. EU는 '넷제로 산업법'을 통해 청정산업에 대규모 지원을 예고했고 일본은 반도체 공급망 확보에 국고지원을 확대했다. 한국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과 첨단기술 기업의 국내 유턴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자신만의 산업정책을 꺼내드는 상황, 결말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자유무역 이후의 세계는 낯설고 불확실하다. 분명한 것은 산업정책이 다시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산업정책으로 촉발된 새로운 패권경쟁은 이제 서막에 불과하다.

뉴욕=심재현 특파원 urm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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