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사파(邪派)] <1> 넥슨 사옥 파헤치기
[편집자주] IT 기업이 선도하는 건 기술만이 아닙니다. 한국을 'IT 강국'으로 이끈 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하는 현장부터 다릅니다. 비전과 선진 사내 문화를 비롯해 알찬 복지제도, 정갈한 구내식당, 사회공헌사업까지. 이 모든 걸 한눈에 보고 느낄 수 있는 사옥을 찾아 색다른 요소들을 낱낱이 파헤쳐봅니다.
먼발치에서 보이는 넥슨 사옥. 지난달 4일 이 사진으로 팀장에게 도착 보고를 올렸다./사진=이찬종 기자
입사 후 3개월 수습 기간, 계엄 정국과 제주항공 참사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다 지난 1월 IT업계를 다루는 정보미디어과학부에 정식 배치받았다. 펜으로 세상을 바꿔내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있던 기자에게 한 선배가 물었다.
"너 리니지 해봤어?" "아니요, 버블파이터는 해봤는데요…."
게임 전문지 기자들이야 입사할 때부터 한국 게임의 역사부터 야사(野史)까지 빠삭하겠지만 꽉 찬 20대이자, 언론고시생이자 한때 회계학도였던 기자에게 리니지, 오딘, 이미르 등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는 미지의 세상이었다.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리니지도 이름만 접했다.
그때 구원자가 돼준 게 넥슨이다.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FC온라인 등 3대 IP(지식재산권)는 물론 버블파이터, 듀랑고, 마비노기 영웅전까지. 넥슨의 자랑부터 흑역사까지 웬만한 건 다 찍먹(찍어먹다) 해봤다.
막내답게 발로 뛰며 'IT기업 사옥탐방' 시리즈를 준비해보면 어떻겠냐는 팀장의 조언(이자 명령)에 넥슨이 먼저 떠오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섭외부터 취재, 기사 작성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진 상태에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1년에 4조원을 버는 넥슨, 사옥은 얼마나 근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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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물론 창의공간과 헬스장, 스크린골프까지…다양한 복지 공간 마련한 넥슨 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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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다 플러스'에는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 스위치, 각종 CD가 비치된 게임존과 대형 스크린이 위치해있다./사진=이찬종 기자
넥다 플러스에 비치된 게임들. 우려와 달리 타사 게임이 많다./사진=이찬종 기자
넥슨 사옥 1층에 들어서면 대형 콘솔게임장 또는 보드게임방을 연상시키는 '넥다 플러스'가 눈에 들어온다. 플레이스테이션과 닌텐도 스위치 등 다양한 기기에, 각종 CD가 비치된 게임존과 대형 스크린까지 있어 입이 떡 벌어진다. 남자라면 모두가 꿈꾸는 '꿈의 공간' 같다. 게임회사인 만큼 임직원들이 업무 시간에 '합법'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독특한 복지다.
이곳엔 넥슨 게임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타사 게임이 훨씬 많다. 모니터링 차원이라는 설명이다. 넥슨 임직원들은 이곳에서 부서별로 팀을 꾸려 사내 게임 대회도 연다. 승자는, 역시 개발자들이다.
창의공간 '비트윈'은 층과 층을 위아래로 연결한 복층 구조다. 딱딱한 회의실을 벗어나 편안한 분위기에서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한다. 휴게공간으로도 사용하기 위해 탁구대, 소파 등을 비치해놨다./사진=이찬종 기자
10층 창의공간 '비트윈'도 자랑할 만한 장소로 꼽힌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도록 기존 회의실의 틀을 깬 것이 특징이다. 휴게공간을 겸하기 때문에 탁구대, 편안한 소파도 있다. 복층 구조라 층고가 높고 벽면에는 통창이 있어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가득하다. 눕고 싶고 놀고 싶어서 회의가 원활히 진행될까 괜한 걱정이 될 정도다.
직원 복지를 생각하는 회사라면 사내 헬스장은 필수. 넥슨은 '레벨업'이라는 헬스장을 운영한다. 게임회사다운 작명이다. 분기별로 등록할 수 있는데, 전문 트레이너가 상주하고 PT·요가 등 GX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스크린골프는 항상 만석이라 오픈런으로 예약해야 한다. 넥슨 관계자는 "많은 임직원이 매 분기 레벨업을 꿈꾸지만, 소수를 제외하면 자신의 안일함을 마주하게 될 뿐"이라고 냉정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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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아메리카노 50잔 = 넥슨의 업무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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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카페와 콜라보해 사내 팝업스토어를 두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날은 최근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카페 브랜드 '프릳츠 커피' 팝업스토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아메리카노가 2500원으로 양재점의 4900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사진=이찬종 기자
3층에 위치한 카페테리아 '넥슨 다방'에 들어서자 갓 구운 빵과 커피 냄새가 가득했다. 냉장고 속 정갈하게 줄 서 있는 10여 종의 빵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빵을 이곳에서 직접 굽고, 유명 맛집처럼 종류별로 빵 나오는 시간까지 따로 정해져 있다. 고급 원두로 내린 아메리카노가 단돈 1000원, 상큼한 레모네이드는 2000원, 동네 저가 커피숍보다 훨씬 저렴하다.
회사 측에서 매달 5만원가량의 카페테리아 이용권을 지급한다고 하니, 사실상 '공짜'다. 아메리카노만 마신다면 한 달에 무려 50잔, 주 5일 근무면 하루에 2잔 이상이다. 갑자기 과거 '판교의 등대' 설이 떠올랐다. 게임회사에 야근이 많아 불이 꺼지지 않는 상황을 등대에 빗댄 말이다. "50잔이라는 숫자가 넥슨의 업무강도를 암시하는 건가요?"라고 물었지만, 직원은 노코멘트로 일관했다.
유명 카페와 콜라보한 팝업스토어도 열린다. 이날은 최근 젊은 세대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카페 브랜드 '프릳츠 커피'가 주인공이었다. 프릳츠커피 양재점에선 아메리카노가 4900원인데, 이곳에서는 2500원으로 반값이었다.
이날 메뉴는 베이컨 김치볶음밥. 고소한 김 가루와 신선한 채소 올라가 식감과 색감이 모두 다채로웠다./사진=이찬종 기자
구내식당에 들어섰다. 게임사는 직원 중 개발자 비중이 크고, 대부분 사내에서 식사하기 때문에 구내식당이 '맛집'이라는 게 통설이다. 아이보리톤으로 꾸며진 식당에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풍긴다. 이날 메뉴는 베이컨 김치볶음밥. 김 가루와 신선한 채소까지 올려 오감을 자극했다.
볶음밥에 베이컨이 기대와 달리 조금 부족해 보였지만 어묵바와 우동, 샐러드, 오렌지를 곁들이니 배가 불렀다. 연어구이가 올라간 샐러드 메뉴도 옵션에 있었지만, 샐러드로 한 끼를 대체하는 이는 적었다. 직장인 남자들에겐 제육볶음이 소울푸드니, 당연한 결과다. 판교 점심 물가가 높다 보니 구내식당을 찾는 임직원이 많다고 한다.
러닝과 거리가 먼 기자에게도 도전 욕구를 심어 준 넥슨 옥상 산책로./사진=이찬종 기자
식사를 마친 임직원들은 판교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 인테리어도 예사롭지 않다. 카트라이더 트랙을 본떠 결승선과 100m, 200m 등 거리가 표시돼있다. 러닝과 거리가 먼 기자에게도 힘껏 내달려야 할 것 같은 도전 욕구를 심어줬다. 옥상에 설치된 농구코트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넥슨은 '하늘N밭'이라는 텃밭도 조성한다. 이곳에서 상추·케일·토마토 등 채소가 무럭무럭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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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넥슨의 사회공헌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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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유화 속 티베트 아이들의 눈빛에 생동감이 어려있어 말을 거는 것만 같다. 마주치면 한참을 멍하니 서 있게 된다. 임영선 작가는 2012년 넥슨의 사회공헌사업 '작은 책방'에 참여해 영감을 받아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사진제공=넥슨
사옥을 돌다 보면 곳곳에 어린아이 초상화가 자주 눈에 띈다. 대형 유화 속 티베트 아이들의 눈빛에 생동감이 어려 말을 거는 것만 같다.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임영선 작가는 2012년 넥슨의 사회공헌사업 '작은 책방'에 참여해 영감을 받아 초상화를 그리게 됐다. 작은 책방은 지역 간 교육·돌봄 편차가 생기지 않도록 작은 마을에 책방을 짓는 사업이다. 지금은 종료됐지만 네팔, 캄보디아 등 해외 8개국을 포함해 100곳 넘게 지어졌다. 고(故) 김정주 창업자는 생전 '어린아이들이 우리들의 미래'라며 사회공헌사업을 중시했다.
넥슨 사옥 1층에는 '푸르메재단 넥슨 어린이재활병원' 등 13년간 진행해온 사회공헌사업들이 노란색, 빨간색 등 형형색색 블록으로 지어져 있다. 넥슨은 이 병원 건설과 초기 운영에 필요한 440억원 중 200억원을 기부했고 2016년 개관 후에도 매년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외 제주도에 지어둔 '넥슨 컴퓨터 박물관', 코딩에 대한 청소년 관심 제고와 역량 증진을 위해 시작한 '넥슨 청소년 프로그래밍 챌린지' 등이 표현돼있다.
넥슨은 명실공히 국내 게임업계에서 인기 게임 IP를 가장 많이 보유한 회사다. 다양한 IP 배경에는 임직원을 배려한 편안하고 이색적인 사옥의 기여도가 높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또 어떤 다채로운 IP가 개발될지 기대된다.
이찬종 기자 coldbel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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