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즈 ize 정유미(칼럼니스트)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엘리오(Elio)'라는 이름하면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연기한 엘리오가 먼저 떠오른다. 엘리오를 여름날 지독한 첫사랑의 열병을 앓던 열일곱 소년의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이제부턴 픽사 애니메이션 주인공 이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픽사 신작 '엘리오'는 외계인에게 납치되기를 바라다가 그 꿈을 이루는 열한 살 소년 엘리오의 우주 모험극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엘리오가 첫사랑의 추억을 소환했다면,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오'는 우주 탐험 등 우주에 대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엘리오'의 주인공 엘리오는 어릴 적 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군인인 고모 올가(조 샐다나 목소리 연기)와 단둘이 산다. 올가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외톨이처럼 지내며 외계와 교신을 시도하는 엘리오. 그러던 어느 날, 외계 생명체들의 착오로 우주로 소환된 엘리오는 우주 공동체인 '커뮤니버스'의 정식 일원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지구 대표 행세를 하며 임무를 수행하던 엘리오는 외계 생명체 글로든을 만나고, 외로운 두 친구는 모험을 함께하며 특별한 우정을 쌓아간다.
29번째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오'는 우주로 향하는 이야기다. 픽사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픽사 명작 '월-E'(2008)와 '토이 스토리'의 외전 '버즈 라이트이어'(2022)에서 픽사가 구현한 우주를 경험했을 것이다. 앞의 두 작품이 우주를 그리면서 로봇을 내세웠다면, '엘리오'에선 외계 생명체들을 선보인다. 엘리오가 행성 커뮤니버스에 도착하는 장면은 최근 픽사 흥행작 '엘리멘탈'(2023)의 엘리멘탈 시티, '인사이드 아웃' 시리즈의 머릿속 세계를 처음 봤을 때의 놀라운 감흥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상상력을 뛰어넘는 외계 생명체 캐릭터들과 기상천외한 우주 세계를 보면 '역시 픽사!'를 외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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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엘리오는 외모도, 성격도 평범한 10대 소년처럼 보이지만 안대를 붙인 외형이나 엉뚱한 상상력과 과감한 실행력이 만만치 않은 캐릭터다. '코코'(2018)의 주인공 소년 미구엘처럼 영화를 보기 전보다 영화를 보면서 점점 호감을 느끼게 되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엔 꼭 안아주고 싶은 캐릭터다. 엘리오는 결핍을 가진 아이고, 외계인에게 납치되기를 바라는 이유도 현실을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엘리오는 우주와 지구를 넘나드는 모험을 하면서 상상과 현실 사이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다.
엘리오의 친구, 글로든 캐릭터는 '한도 초과의 매력'을 내뿜는다. 글로든이라는 이름이 입에 착 붙지도 않고 생김새는 애벌레를 닮았는데, 신분은 무려 외계 왕자다! 엘리오와 단짝이 되어 신나게 호흡을 맞추는 모습도 유쾌하고, 갈등하던 아버지와 대면하는 후반부엔 눈물 나는 감동 연기까지 펼친다. 눈이 없는 글로든이 엘리오와 마음으로 교감하고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엘리오'의 중요한 관람 포인트다.
애니메이션 '엘리오'의 특이할 만한 점이라면 가족 관객을 겨냥해 마냥 따스한 감성으로만 채워진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서울 정도는 아니어도 살짝 SF 호러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SF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더 씽'(1982), '미지와의 조우'(1982), '에이리언'(1987), '콘택트'(1997) 등 유명한 SF 영화들을 오마주한 장면들이 재미를 더한다. 정서적으로는 지구 소년과 외계인의 우정을 다룬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 영화 'E.T.'(1984)의 영향력이 강하게 느껴진다. 소년 엘리엇과 외계인 E.T. 캐릭터 설정, 이들의 우정 이야기가 애니메이션 '엘리오'에서 어떻게 변주되고 확장되는지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중년 이상 관객이라면 글로든을 보면서 오랜만에 E.T.의 커다란 얼굴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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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오'의 시작과 끝에는 세계적인 천문학자이자 과학 저술가 칼 세이건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칼 세이건이라는 이름을 알린 1980년대 과학 다큐멘터리 시리즈 '코스모스'를 떠올리는 관객들이 있을 것이다. "이 넓은 우주에서 오직 지구에서만 생명이 존재한다면 그건 공간 낭비가 아닌가?"라는 칼 세이건의 명언이 '넌 혼자가 아니야'라는 '엘리오'의 주제를 뒷받침하면서 영화는 우주와 인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까지 담아낸다. '엘리오'를 보고 나면 칼 세이건의 저서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을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들 거다. 칼 세이건의 인기가 다시 치솟아도 좋겠다.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오'는 다양한 관객층을 아우르는 영화다. SF 아동 청소년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 SF 영화와 픽사 영화 팬들이라면 '엘리오'가 데려가는 새로운 우주에 흠뻑 빠져들 것이다. 외계 지적 생명체가 최초로 등장하는 픽사 애니메이션이라니 끌리지 않는가? 픽사 애니메이션 제목에 당당히 이름을 걸고 등장한 엘리오가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고 두 번째 모험을 떠나기를 기대해 본다.
정유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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