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미국 개입 땐 전면전" 경고…전문가 "대안 없이 이란 정권 붕괴 땐 내전·핵억지력 확보하려는 군부 독재 가능성"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공격에 나설지 촉각이 곤두선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중이 이란 직접 개입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이란 핵시설 타격을 넘어 정권 교체까지 연일 언급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개입이 이란 정권 붕괴까지 촉발할 경우 내전 등 극심한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17일(이하 현지시간) 미 CNN 방송은 관련 논의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군사 자산을 이용해 이란 핵시설을 타격하는 데 점점 호의적이 돼 가는 반면 이스라엘과 이란 분쟁을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구상엔 시큰둥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화 내용을 잘 아는 소식통에 따르면 전날까지만 해도 트럼프 정부 관료들 사이에서 외교적 해법에 중심을 둔 논의가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17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은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조기 귀국하는 길에 전용기에서 취재진에 "이란과 협상할 기분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휴전이 아닌 진정한 종식"을 원한다고 덧붙였다. 전날까지 이란에 미국과의 핵협상에 서명해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했던 데서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CNN은 다만 소식통에 따르면 이란이 상당한 양보를 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외교적 해법에 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관련해 분명한 입장을 내지 않은 상태지만 17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우리"가 이란 상공을 통제하고 있고 "우리"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위치를 알고 있다고 위협하며 이란의 "완전한 항복"을 요구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미 당국자들을 인용, 미국이 이란 상공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지 않음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주목하며 이는 미국이 이란과 이스라엘의 갈등에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해외 전쟁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던 JD 밴스 미국 부통령도 17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트럼프 대통령)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을 끝내기 위해 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이 결정은 궁극적으로 대통령 몫"이라며 미국이 개입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미국이 이미 중동에 추가 군사 자산을 배치 중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17일 <로이터> 통신은 복수의 미 당국자를 인용해 미군이 F-16, F-22, F-35 전투기를 포함해 중동에 전투기 및 군용기 배치를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국자들은 전투기 배치가 무인기(드론) 및 발사체 격추 등 방어적 성격이라고 강조했다.

통신은 전날엔 다수의 미 공중급유기가 유럽으로 이동했고 미 항공모함 니미츠호 또한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16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추가 배치가 "역내 방어 역량 강화"를 위해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구체적 규모는 공개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이러한 조치가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먼 공군기지에 있는 B-2 스텔스 폭격기가 1만1000km 떨어진 이란까지 날아가기 위한 공중 급유망 구축을 돕는다고 짚었다. B-2 폭격기는 산속 깊이 자리한 이란의 주요 핵시설인 포르도 농축 시설 공격을 가능하게 할 유일한 무기로 평가되는 13톤(t) 무게 초대형 벙커버스터(GBU-57 MOP)를 옮길 수 있는 수단이다.

이란은 미국 개입이 "전면전"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AP> 통신은 18일 에스마일 바가이 이란 외무부 대변인이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어떠한 개입도 이 지역에서 전면전을 불러올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17일 <뉴욕타임스>는 미국이 분쟁에 개입할 경우 이란이 중동의 미군 기지를 타격할 미사일 및 군사 장비를 준비했다고 정보 보고서를 검토한 미 당국자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당국자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 선박 공격을 재개할 가능성이 높고 이라크와 시리아의 친이란 무장 세력들이 인근 미군 기지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또 호르무즈 해협에 기뢰를 설치해 페르시아만의 미 군함을 묶어 둘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안 없이 이란 정권 교체 시도 땐 내전 등 혼란 초래 우려…이라크·리비아 전례

네탸나후 총리가 이란 핵위협 제거를 넘어 정권 교체를 거듭 언급하고 있는 데 더해 트럼프 대통령도 17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위치가 노출된 "쉬운 목표물"이지만 "지금 죽이진 않겠다"고 위협했다. 이에 미국 개입이 포르도 핵시설 파괴를 넘어 이란 정권 전복 목표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핵시설이 아닌 이란 국영 방송사 등을 공격하며 이미 핵능력 파괴라는 기존 목표를 넘어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 존스홉킨스대 국제학대학원의 발리 나스르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이제 포르도 시설 제거가 아닌 이란 국가에 대한 파괴가 문제라며 "그들(이스라엘)은 전쟁 수행 능력 뿐 아니라 (이란의) 국가 통합성을 파괴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이번 공격이 이란 정권을 흔들 수 있다고 보는 상황에서 정권 붕괴가 내전 등 더 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알리 바에즈 국제위기그룹(ICG) 이란 담당 국장은 16일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 기고를 통해 이스라엘은 이란 핵무기 개발 역량 완전 파괴를 위해 이란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만 "무엇이 현 체제를 대체할지에 대해선 주의를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란 안팎에 실행 가능하고 통합된 체계적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이슬람공화국이 붕괴할 경우 이란을 내전으로 몰아넣거나 핵억지력을 확보하려는 군부 독재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치안 불안은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성장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됐고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공습으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 축출 뒤 리비아는 내전 등 극심한 혼란에 시달렸다.

<뉴욕타임스>는 이란 정권이 붕괴할 경우 정치적 혼란 속에서 이미 비축된 우라늄 확보도 미국에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바에즈는 트럼프 대통령에 최선의 선택은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 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겁에 질린 이란 정부가 상황이 허락하는 한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다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게 되면 트럼프는 핵을 가진 이란을 받아들이거나 이 나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또 다른 공격에 동참해 그가 피하겠다고 약속했던 재앙적 중동 개입 수렁에 빠지는 걸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 "미 개입 땐 이란 핵개발 유인 더 키울 것"

이스라엘은 지난 13일 이란의 핵위협을 들며 공격을 개시했지만, 미국 정보 평가에 따르면 시급한 위협의 증거가 발견되진 않았다는 보도도 나온다. 17일 CNN은 사안에 정통한 4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 정보 기관은 이란이 적극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구하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를 생산해 필요한 곳에 배치할 때까지 최대 3년이 걸릴 것으로 평가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미 정보당국이 현재까지 이스라엘 공습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불과 몇 달 정도 지연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란의 임박한 핵위협의 평가가 모호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도 가입하지 않은 채 사실상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에 대한 문제 제기도 나온다. 이스라엘은 핵무기 보유 여부를 공식 확인하지 않지만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이스라엘이 약 9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란의 경우 지난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자국의 NPT 핵사찰 및 검증 불이행에 대한 결의안을 채택하고 곧바로 이스라엘 공격을 받은 뒤 NPT 탈퇴를 위협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를 보면 미 싱크탱크 디펜스프라이어리티스의 중동 부문 책임자 로즈메리 캘라닉은 이스라엘 공격이 이란에 잠재적 핵무기 개발을 위한 유인을 제공했다고 지적하고 미국이 개입할 경우 이 유인이 "급격히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력 충돌 엿새째에 접어든 18일에도 양쪽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테러리스트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에 강력히 대응해야 한다. 시오니스트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AP>는 18일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이란 수도 테헤란을 공습했고 오전 5시께 테헤란에서 큰 폭발음이 들렸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란 쪽에서도 이스라엘에 소규모 미사일을 발사했지만 사상자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17일부터 이란의 미사일 공격 규모가 크게 줄었는데 이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발사 능력이 손상된 탓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동시에 이란이 몇 주~몇 달에 걸친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8일(현지시간) 오전 이스라엘 텔아비브 상공에서 이스라엘 방공 시스템이 이란 미사일 요격을 위해 가동됐다. ⓒAF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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