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한국연구재단 뇌·첨단의공학단장.
뇌신경계는 생명체가 가진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시스템 가운데 하나다. 그 중에서도 '뇌'는 신경계의 중심이자 생명현상의 최상위 조절 기관으로, 인간의 고차원적 사고, 인지, 감정, 철학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독보적 생체 기관이다. 이러한 점에서 뇌신경과학은 단순한 의생명 연구를 넘어, 인류 자신을 이해하려는 궁극적인 탐구 영역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말, 스페인의 과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Santiago Ramon y Cajal)이 세계 최초로 신경세포의 구조를 시각적으로 제시하면서 현대 뇌과학의 문이 열렸다. 이후 신경의 구조와 전달, 시냅스 기능, 감각 시스템(시각·청각·촉각·후각), 기억과 학습, 신경가소성, 생체시계, 공간 인지 등 인간 뇌의 작동 원리에 대한 연구가 비약적으로 진전되었고, 이는 20명 이상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최근 10여 년 간 뇌과학은 생명과학·의과학의 기술 진보와 함께 디지털 및 인공지능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또 한 번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다. 대표적인 글로벌 프로젝트로는 2013년 시작된 미국의 '브레인 이니셔티브'(BRAIN Initiative), 유럽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Human Brain Project)가 있으며, 각각 브레인 이니셔티브 2.0, EBRAINS로 진화하며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다.
브레인 이니셔티브는 2023년 인간 뇌세포 아틀라스를 구축하였고, 2024년에는 초파리의 전뇌 커넥톰을 완성하여 신경 연결의 총체적 해석 기반을 제시했다. 또 만성 통증 환자에서의 뇌 생체지표를 규명하고, 기능 신경자극을 활용한 치료 기술 연구도 확산되고 있다. 멀티오믹스 기술의 발전은 유전체, 전사체, 단백체 수준에서 신경세포를 정밀하게 해석할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이를 3차원 공간오믹스로 구현하는 기술도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예쁜꼬마선충을 넘어 초파리, 설치류, 궁극적으로 인간 뇌에까지 연결지도를 확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된다.
유럽의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는 고해상도 뇌지도(Human Brain Atlas) 구축을 바탕으로 디지털 뇌 모델링, 버추얼 브레인 기반 시뮬레이션 플랫폼, 뇌질환 모델링 및 AI 연계 기술로 발전하였다. 뇌의 회로 원리를 모사한 신경형 컴퓨팅 기술은 인공지능 및 로보틱스 기술과 융합되며 새로운 형태의 지능 시스템 구현에 기여하고 있다.
뇌공학 분야에서도 주목할 만한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일론 머스크는 2016년 '뉴럴링크(Neuralink)'를 설립해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기술을 본격화했으며, 이는 1970년대 자크 비달 교수가 처음 개념화한 이래 오랜 시간 공상 영역으로 여겨지던 기술을 현실하고 있는 중이다. 뉴럴링크는 2021년 원숭이 대상 BCI 실험에 성공하였고, 2024년 초에는 인간 대상 BCI 이식 수술을 최초로 시행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 또한 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침습형 BCI 칩을 뇌에 이식하여 로봇팔 제어 및 언어 해독 실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이 분야에서의 기술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한편, 퇴행성 뇌질환의 대표격인 치매 분야에서도 큰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2021년 '아두카누맙(Aducanumab)'이 FDA의 가속승인을 받으며 첫 아밀로이드 표적치료제로 등장했고, 2023년에는 보다 효과와 안정성이 개선된 '레카네맙(Lecanemab)'이 정식 승인되었다. 이어 후속 약물의 파이프라인도 다수 개발 중이다. 파킨슨병 치료에 있어서는, 환자 자신의 피부세포에서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를 만든 뒤 도파민 뉴런으로 분화시켜 뇌에 이식한 세계 최초의 임상 적용이 하버드-MGH 연구진(NEJM, 2020)에 의해 보고되었으며, 해당 환자의 운동 기능이 일부 개선되었다는 점에서 줄기세포 기반 신경 재생 치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추어, 우리나라도 제도적·재정적 기반을 갖추어 대응하며 뇌연구 R&D에 집중하고 있다. 1998년 제정된 '뇌연구촉진법'에 따라, 현재 '제4차 뇌연구 촉진 기본계획(2023∼2027)'이 시행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뇌과학 선도융합기술 개발사업(K-브레인 프로젝트)'이 추진되고 있으며, 2023년부터 2032년까지 총 4000억 원 이상의 규모로 국가 연구개발(R&D) 자금이 투입된다. 이 사업은 뇌과학의 원천기술 확보와 함께 디지털·인공지능·의료·로봇 등 관련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실질적 국민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고, 기술사업화 기반을 마련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대한민국의 뇌연구 생태계는 국내 유수의 여러 연구기관과 그곳의 열정적인 연구자를 중심으로 꾸준히 확장 중이며, 민간·산·학·병원 연계형 뇌과학 융합 연구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연구자들의 창의성과 집념,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정책적 통찰과 유연한 지원체계일 것이다.
뇌과학은 인간을 향한 거대한 거울이며, 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미래 사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뇌를 연구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본질을 이해하고 확장해 나간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가 이 진보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 중심의 미래를 함께 설계해 나가기를 기대한다.
<김성현 한국연구재단 뇌·첨단의공학단장(경희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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